“시장 골목과 계곡 물길 따라”…거창에서 만나는 가을의 잔잔한 위로
가을이면 거창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란 선입견이 옅어지고, 이제는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평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이 옮겨지고 있다. 사소한 풍경이지만, 그 안엔 소소한 위로와 삶의 리듬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즘 SNS에는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계곡 산책로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인증 사진이 가득하다. 경남 거창의 중심, 거창전통시장은 1972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서부 경남 대표 시장으로, 지역 농축산물과 생활 잡화, 시장표 먹거리가 골목 구석구석에서 반긴다. 비가림 시설로 날씨 걱정도 덜고, 시장 특유의 활기와 정겨움이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특히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손에 장바구니를 든 이들로 북적이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가는 곳마다 자연이 품은 계절도 깊게 스민다. 북상면 월성리에 위치한 월성계곡은 맑은 물이 바위 사이로 흘러 고요한 정적을 선사한다. 붉은 단풍이 산자락을 물들이고, 잔잔한 물소리와 스산한 바람, 노랗게 발끝에 쌓이는 낙엽까지, 이곳에서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호젓함을 누릴 수 있다. 들려오는 현지인의 목소리도 인상적이다. 한 방문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정돈된다”고 표현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지역 전통시장과 자연 명소를 찾는 가족·개인 여행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번잡한 대형 관광지만이 아니라, 거창스포츠파크나 카페포도밭옆처럼 느린 속도의 여유를 품은 공간을 찾는 발걸음이 늘었다. 넓은 잔디밭을 거닐며 가을 햇살을 만끽하거나, 베이커리 카페에서 갓 구운 식빵과 커피의 향을 음미하는 이들이 낯설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작은 리셋’이라고 부른다. 여행 칼럼니스트 이지연 씨는 “풍경과 사람, 음식이 어울어진 전통 시장이나 자연을 배경 삼은 카페는 일상에 한 번쯤 필요한 잠시의 멈춤을 안겨준다”고 느꼈다. 그만큼 거창이라는 지역도 ‘쉬어가는 곳’, 쉬면서 나를 돌봐주는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가정마다 나들이를 다녀온 소회도 남다르다. 아이들과 함께 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거창월성우주창의과학관에서 사진을 남긴 엄마는 “아이에게 과학의 꿈을 심으려 했지만, 오히려 내 마음속에 남은 건 맑은 하늘 아래 천천히 걷던 그 시간이더라”라고 고백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시장 장보기는 어릴 때 할머니 손잡고 다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계곡 산책이 생각보다 훨씬 조용해서, 연휴에도 북적이지 않아 좋았다”는 식의 공감이 쌓여간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거창의 가을 풍경은 그저 여행지가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걷고 머무를 수 있는 쉼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