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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세균이 식중독 부른다”…가정 싱크대, 숨은 감염원 부각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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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내 주방 위생이 감염성 질환 관리의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그릇을 싱크대에 물과 함께 오래 담가두거나, 음식물이 남은 식기를 장시간 방치하는 일상적 습관이 장내 세균과 식중독 병원체 증식을 촉진해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다. 미생물학과 공중보건 연구 결과는 주방 싱크대를 단순한 설거지 공간이 아니라, 관리 여부에 따라 식중독과 설사성 질환의 주요 감염원으로 변할 수 있는 고위험 환경으로 지목한다. 생활 속 미생물 관리가 감염병 예방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는 흐름과 맞물려, 주방 위생 기준을 과학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국 과학 매체 IFL사이언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그릇에 음식물이 묻은 채 설거지를 미루고 물에 담가두는 습관은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세균이 급속도로 번식하는 환경을 만든다. 미생물학자 제이슨 테트로는 부엌 싱크대를 대장균, 식중독 병원체, 피부 박테리아 등 다양한 미생물이 뒤섞인 공간으로 규정하며, 특히 식기류를 따뜻한 물에 오래 담가둘수록 유해 미생물이 성장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온도와 수분, 유기물(음식 찌꺼기)이 동시에 존재하는 환경이 세균 증식 속도를 높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2019년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대학교 연구진은 영국 전역 46가구의 주방 표면을 조사한 결과를 통해 이러한 우려를 수치로 뒷받침했다. 조사에 따르면 주방 공간 가운데 싱크대와 수도꼭지 손잡이에서 가장 많은 양의 세균이 검출됐다. 연구진은 싱크대가 생닭 등 날음식과 자주 접촉하고, 손에 묻은 오염물질이 반복적으로 닿는 데다 물 사용으로 인해 항상 습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세균이 생존하고 번식하기 쉬운 물리·환경적 조건이 갖춰진다고 설명했다. 손잡이와 배수구 주변은 사용 빈도가 높으면서도 세척이 상대적으로 소홀한 지점으로, 세균의 집적과 재오염의 매개가 되기 쉽다.

 

실제 조사에서는 엔테로박터 클로아카, 폐렴간균, 대장균, 녹농균, 고초균, 포도상구균 등 다양한 세균이 확인됐다. 이들 중 일부는 체내 침입 시 발열과 구토, 설사 등 전형적인 식중독 증상을 유발하는 병원성 미생물로 알려져 있다. 대장균과 엔테로박터 계열 세균은 장내 감염 및 요로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녹농균과 폐렴간균은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호흡기·전신 감염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고초균과 포도상구균 계열 세균 역시 독소를 생성해 식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주방 환경에서 검출된 세균이 조리기구나 손을 통해 음식으로 재유입될 경우, 소량의 오염만으로도 취약 계층에서 증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물에 담그지 않고 더러운 접시를 싱크대 옆에 쌓아두는 행위도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네바다대학교 공중보건 전문가 브라이언 박사는 상온에 남은 음식 찌꺼기가 벌레를 끌어들여, 주방 전체에 박테리아를 확산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건조한 표면에서는 세균 증식 속도가 떨어질 수 있으나, 상당수 세균은 포자를 형성하거나 휴면 상태로 생존했다가 수분과 영양분이 다시 공급되면 급속히 증식할 수 있다. 주방에 모인 파리, 바퀴벌레 등 위생 해충 역시 다양한 병원체를 몸에 묻혀 이동시키며, 접시·조리도구·작업대 등으로 감염원을 넓게 확산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생활 위생을 감염병 관리의 중요한 축으로 보는 글로벌 보건 기조와 맞닿아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각국 보건 당국은 이미 손 씻기, 식재료 세척, 조리도구 위생 관리를 식중독과 장내 감염 예방의 기본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IoT 기반 스마트 싱크대나 항균 코팅 도마, 자외선 살균 기능을 갖춘 주방용품 등 바이오·IT 융합 기술도 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기술 의존도와 관계없이 생활 습관 교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감염 위험을 충분히 낮추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가정 환경에서 식중독과 기타 유해 세균 감염 위험을 줄이려면, 사용한 식기류를 가능하면 당일 안에 세척하고, 특히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음식물이 묻은 그릇은 장시간 방치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권고한다. 설거지 후에는 싱크대 표면과 수도꼭지 손잡이까지 세척·소독 범위에 포함해야 하며, 사용한 스펀지와 수세미는 온전한 건조 과정을 거치도록 배치하고, 일정 주기마다 교체하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생활 공간 미생물 관리에 대한 과학적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위생 교육과 관련 제품·서비스 개발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산업계는 주방 위생 관리 인식 변화가 실제 제품과 서비스 수요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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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세균#식중독#설거지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