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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스타게이트 가동"…오픈AI, 삼성·SK와 초거대AI 인프라 준비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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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인공지능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경쟁이 한국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오픈AI가 삼성그룹과 SK그룹을 핵심 파트너로 묶는 이른바 한국형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추진 사실을 공개하면서, 반도체와 통신 인프라를 동시에 보유한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AI 인프라 패권 경쟁의 전면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선 이번 움직임을 초거대 AI 연산 자원 확보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김경훈 오픈AI 코리아 총괄 대표는 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부임 후 첫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에서도 AI 생태계 발전을 위해 주요 파트너인 삼성그룹, SK그룹과 함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번 주 스타게이트 본사 팀이 방한해 두 회사를 만나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스타게이트는 오픈AI가 글로벌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와 연산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 규모나 투자 비율은 정해지지 않은 초기 플랜 단계지만, 오픈AI가 직접 투입하는 자본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오픈AI는 아직 전체 인력이 400명도 안 되는 스타트업”이라며 “전 세계에서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오라클, 소프트뱅크 등 대형 기업들과 협력해 왔고 한국에서도 동일한 구조로 간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과의 협업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해양 인프라를 결합하는 복합 구조로 짜였다. 지난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 협력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한 데 이어, 삼성전자는 스타게이트용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고성능 저전력 메모리 공급을 맡는다. 삼성SDS는 데이터센터 설계와 구축, 운영을 담당하고,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은 해상 설치형 플로팅 데이터센터 개발에 참여한다.

 

포항 인근 해역을 거론해 온 해상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포항 지역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며 “해상 데이터센터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로 세부 설계를 위한 기술적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해상 데이터센터는 육상 부지 제약과 전력·냉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차세대 인프라로 꼽히며, 초대형 AI 학습을 위한 전력 집약형 설비를 바다 위에 띄우는 개념이다.

 

한국에 건립될 데이터센터의 활용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폭넓게 열어 두고 있다. 김 대표는 “실제로 지어진 후에야 구체적 활용을 정할 수 있다”며 “현재와 미래에 요구되는 컴퓨팅 리소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목적을 미리 한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인프라가 부족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SK그룹과의 협력은 메모리 공급과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에 방점이 찍혀 있다. SK하이닉스는 오픈AI에 고대역폭메모리 HBM을 공급하는 의향서를 맺고 월 최대 90만 장 규모의 HBM 생산 역량을 확보하기로 했다. 오픈AI 측이 제시한 잠재 수요는 현재 전 세계 생산능력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초거대 모델 학습에 필요한 메모리 인프라 수요가 얼마나 가파르게 커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통신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서남권 지역에 오픈AI 전용 AI 데이터센터를 함께 구축해 한국형 스타게이트를 실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센터는 초고속 네트워크와 대규모 GPU 서버, HBM 기반 메모리 시스템을 결합한 초대형 연산 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는 “현재 SK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지만 상당히 초기 단계”라며 “프로젝트 목표와 결과에 대해 구체적인 설계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표 단축과 부지 확보는 프로젝트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며 “어떤 지역이 전력, 통신, 인허가 측면에서 가장 적합한지 정부, 지자체와 함께 협의하면서 부지를 선정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SK와의 협의뿐 아니라 정부와도 긴밀히 협력하며 사업성과 국가 발전에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고 있다”며 “구체적인 발표 시점은 말하기 어렵지만 최대한 빠른 시점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픈AI는 한국 법인 설립 당시부터 한국을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와 혁신적 기업, 빠른 디지털 도입 속도를 갖춘 AI 혁신의 최적지’로 규정했다. 반도체 제조 능력과 클라우드, 통신망을 동시에 갖춘 이른바 풀스택 AI 생태계 국가라는 평가다. 특히 미국과 유럽, 중국이 각각 자국 중심의 AI 인프라 클러스터를 키우는 가운데, 한국이 글로벌 초거대 AI 연산 거점 중 하나로 부상할 여지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초거대 AI 모델 학습용 데이터센터와 HBM 수급 경쟁이 심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의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데이터센터 증설과 전력 계약을 통해 연산 자원을 선점하고 있고, 일본과 대만 역시 국가 차원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국내에서는 삼성과 SK가 메모리와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앞세워 오픈AI와 손을 잡은 만큼, 향후 일본 소프트뱅크나 대만 TSMC와의 인프라 경쟁 구도가 뚜렷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에는 전력 수급, 온실가스 배출, 해상 환경 영향 등 규제와 환경 이슈가 동시에 얽혀 있다. 특히 해상 설치형 데이터센터의 경우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평가와 안전 규정 수립이 필수여서, 정부 인허가 체계와 환경 규제가 프로젝트 속도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 인프라가 국가 전략시설 성격을 띠는 만큼, 사이버 보안과 데이터 보호 체계에 대한 법제 강화 논의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한국형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단순한 데이터센터 증설을 넘어 국가 AI 경쟁력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 초거대 AI 학습 인프라를 확보하면 글로벌 서비스를 위한 백엔드 역할뿐 아니라,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연산 자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삼성과 SK, 오픈AI의 협력이 실제 설비 완공과 안정적 운영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정책과 규제가 속도를 맞출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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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삼성그룹#sk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