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입법 취지 훼손"…이동한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 2심도 벌금 90만원
정치자금법 위반을 둘러싼 공방과 법원의 판단이 다시 맞붙었다. 지난해 대전 중구청장 재선거에 출마했던 이동한 대전과학산업진흥원장이 항소심에서도 벌금형을 유지하면서, 정치권과 선거 캠프를 둘러싼 자금 운용 관행에 다시 경고등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대전고등법원 제3형사부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동한 원장의 항소심에서 검사와 피고인 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과 같은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양형 기준과 사안의 경중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보며 형량을 유지했다.

이동한 원장은 지난해 4월 치러진 대전 중구청장 재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선거 준비 과정이 한창이던 지난해 2월부터 4월 사이 정치자금법에서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선거캠프 관계자 A씨로부터 7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렸다. 검찰은 이 무이자 차용을 통해 이동한 원장이 78만6천여원 상당의 금융 이익을 사실상 기부받은 것으로 보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동한 원장은 같은 해 6월 A씨에게 7천만원 전액을 반환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자금 반환과 무관하게 행위 자체가 정치자금법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정치자금법 입법 취지를 훼손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취득한 금융이익 규모가 크지 않고, 뒤늦게나마 기부받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반환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같은 논리를 이어갔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과 검사가 주장하는 양형 조건이 이미 원심에서 충분히 고려됐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판결 선고 후 양형 조건에서 별다른 사정 변경을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양형 조건을 다시 살펴봐도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거나 가벼워 부당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무이자 차용이 사실상 기부와 같은 효과를 낳는 만큼 위법성은 인정하되, 이익 규모와 사후 반환 경위를 감안해 형량을 유지한 셈이다.
이 사건에는 이동한 원장뿐 아니라 선거캠프 관계자들도 함께 연루됐다. A씨는 정치자금법이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선거운동원에게 현금과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를 주도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고, 항소심 재판부도 이날 A씨의 항소를 기각해 원심 형량을 유지했다.
캠프 내 다른 관계자 4명에 대해서도 1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들은 각각 정치자금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식의 자금 제공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70만∼350만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서도 원심이 모든 양형 요소를 충분히 검토했다며 추가 감경이나 가중의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정치자금과 선거운동비용은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이 정한 절차와 한도를 엄격히 따라야 한다. 특히 무이자 차용, 현금 제공, 음식 제공 등 비공식 지원 방식이 반복적으로 문제 되면서, 법원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위법성을 희석하는 주장에 선을 긋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대전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방선거와 재선거 과정의 자금 운용을 한층 더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검찰과 선거관리위원회도 유사 사안에 대해 보다 세밀한 점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큰 관행을 정비하라는 사법부의 메시지가 재차 확인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