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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 세균 폭탄 경고에…의료계, 생활감염 관리 각성 촉구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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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환경이 생활 속 감염 관리의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영국 임상미생물학 전문가가 잠옷을 제때 갈아입지 않을 경우 세균과 바이러스 증식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침실 위생 관리가 호흡기와 장관 감염 예방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개인 방역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업계와 의료계는 침구·침실 위생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수요가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영국 레스터대 임상미생물학 부교수 프림로즈 프리스톤은 현지 매체 데일리메일을 통해 “가능하다면 잠옷은 매일 갈아입는 것이 가장 좋다”며 “잠들기 직전 샤워를 하고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다면 최대 3~4회 정도까지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평균적인 성인은 밤사이 약 0.284리터의 땀을 흘리는데, 이 땀이 잠옷 섬유에 스며들면서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쉬운 습한 환경이 형성된다는 설명이다.

프리스톤 부교수에 따르면 잠옷 표면의 미생물은 피부 각질과 피지, 땀을 영양분으로 삼아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만들어 체취와 불쾌한 냄새를 유발한다. 여기에 잠옷 차림으로 식사를 하면 음식물 입자가 옷감에 남아 세균 활동을 더 촉진할 수 있다. 잠옷을 입은 상태에서 배출되는 방귀 역시 미량의 분변성 분비물이 섬유에 남을 수 있어, 단순한 냄새 문제를 넘어 장관 감염 전파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 결과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런던 위생열대의학대 연구진은 잠옷과 침구류가 사람 간 감염 확산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특히 분변-경구 경로로 전파되는 노로바이러스와 같은 배설물 관련 감염성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흡기 비말만이 아니라 섬유 표면에 묻은 분변성 입자와 오염체가 2차 접촉을 통해 손과 입, 점막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침구류와 잠옷이 단순 생활용품이 아니라, 병원 환경에서 관리하는 ‘고위험 접촉 표면’과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병원 내 환경감염 관리 지침에서는 침대 시트, 가운, 커튼 등을 고위험 오염 물질로 분류하고 세탁 온도, 세제, 소독제를 엄격히 규정한다. 프리스톤 부교수도 “잠옷을 최소 60도 이상에서 세탁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며 “소재 특성 등으로 고온 세탁이 어렵다면 세탁용 소독제를 별도로 사용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수면 중 땀 배출량과 체온 변화가 커지는 특정 집단에서는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야간 발한이 잦은 호르몬 질환자, 고령자, 영유아, 면역저하 환자의 경우 미생물 증식 속도가 빨라지고, 동시에 피부 장벽이 약해 감염성 피부질환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요실금이나 설사를 동반한 환자는 미량의 배설물이 침구와 의류에 반복적으로 묻을 수 있어, 가정 내 노로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의 잠복 경로가 되기도 한다.

 

IT와 바이오 업계에서는 이런 생활감염 관리 니즈를 디지털 헬스케어와 연계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워치와 수면 트래커를 통해 수면 중 체온, 습도, 땀 배출량을 추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침구 교체 시점이나 세탁 주기, 실내 환기 알림을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연구 단계에서 제안되고 있다. 섬유 기업들은 항균 섬유, 은 이온 코팅, 바이러스 비활성화 기능을 가진 소재를 개발해 침구와 홈웨어에 적용하는 등 ‘마이크로바이옴 친화 섬유’ 경쟁에 나서고 있다.

 

다만 항균 코팅과 소독제 사용에 따른 내성균 출현과 피부 자극 우려도 제기된다. 지나친 살균 지향이 인체 상재균 생태계를 교란해 알레르기나 아토피성 피부염을 악화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위생 관리를 강화하되, 과도한 화학 소독제 의존은 피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WHO와 각국 감염관리 지침에서도 일상 환경에서는 손 위생, 정기적인 세탁과 환기, 고위험 상황에서의 표면 소독을 ‘기본 세트’로 제시한다.

 

국내 감염내과 전문의들은 겨울철 노로바이러스와 로타바이러스 유행기를 앞두고 가정 내 섬유 위생 관리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대학병원 감염관리 전문의는 “수면 중 땀과 분비물, 일상생활에서 묻는 음식물 찌꺼기 등을 고려하면, 잠옷은 속옷과 비슷한 수준의 교체 주기를 갖는 것이 안전해 보인다”며 “특히 어린이와 노인이 함께 사는 가정에서는 잠옷, 수건, 침구의 세탁 온도와 분리 세탁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생활공간 위생 데이터가 향후 헬스케어 플랫폼에 연동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침실의 온습도, 공기질, 섬유 교체 주기가 만성 피부질환, 천식, 반복 감염과 어떤 상관관계를 보이는지에 대한 코호트 연구가 진행 중이며, 결과에 따라 데이터 기반의 ‘홈 위생 관리 솔루션’ 시장이 형성될 여지도 있다. 산업계는 이번 경고를 계기로 수면공간을 감염관리 관점에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의료계는 생활습관 교육과 디지털 도구를 결합한 예방 중심 모델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산업계는 결국 이런 기술과 인식 변화가 실제 소비자의 세탁 습관과 제품 선택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감염률 감소라는 가시적 성과로 확인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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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림로즈프리스톤#레스터대#노로바이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