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연료 농축은 한국 전력안보 필수"…박윤주, 미 조야에 비확산 우려 선그어
한미 원자력 협력 구도를 둘러싼 논쟁과 미국 외교안보 네트워크가 맞붙었다. 한국의 핵연료 농축 필요성과 핵 비확산 원칙을 두고, 양국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는 물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외교부는 3일 현지시간 미국을 방문 중인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연이어 만나 한미 정상회담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 공동 설명자료 이행 방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고 밝혔다. 조인트 팩트시트는 최근 한미 정상 간 합의 내용을 구체화한 문서로, 원자력·첨단 기술 등 전략 분야 협력 방향을 담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박 차관은 1일 랜들 슈라이버 인도·태평양 안보연구소 의장과, 2일 데릭 모건 헤리티지재단 선임 부회장을 각각 면담했다. 두 차례 회동에서 그는 한미 민간 원자력 협력 방안을 놓고 미국 조야의 인식을 점검하고, 후속 협력 구상을 공유했다.
박 차관은 대화에서 한국이 핵 비확산 분야 모범 국가로서 비확산 규범을 충실히 준수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거듭 설명했다. 그는 전체 전력의 상당 부분을 원자력 발전에 의지하는 한국의 현실을 언급하며, 안정적인 전력수급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가 필수적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는 핵확산과는 무관하다"며, 한국의 대응은 비핵화와 비확산 체제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싱크탱크 측은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관계자들은 한국이 비핵화와 핵확산금지조약 NPT 체제를 충실히 준수하는 모범 동맹국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한국의 비확산 규범 준수 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미 원자력 협력이 미국 내에서 정치적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신뢰도와 규범 준수 성과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박 차관은 조인트 팩트시트 채택 의미도 짚었다. 그는 한미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 비전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의 지평을 전통적인 안보와 경제 협력에 그치지 않고 첨단 기술협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공동 설명자료에 담긴 합의가 현장에서 신속히 이행될 수 있도록 미국 조야의 지원과 건설적 제언을 요청했다.
모건 선임 부회장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초당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위상이 주요 대미 투자국이자 세계 3대 조선 강국, 민간 원자력 분야 주요 협력국으로 더욱 공고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헤리티지재단이 한미 간 관련 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슈라이버 의장도 조인트 팩트시트 채택을 긍정적으로 보며, 문서에 포괄적으로 담긴 주요 전략 분야 협력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태평양 전략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미가 첨단 기술과 안보를 결합한 전략 동맹 모델을 구축하는 작업에 싱크탱크 네트워크가 가담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박 차관은 회동에서 추가 현안도 폭넓게 제기했다. 그는 모건 선임 부회장에게 한미 간 조선 분야 협력 강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문제, 한국 노동자의 미국 비자 발급 문제 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요청했다. 모건 선임 부회장은 해당 사안들에 관심을 갖고 협조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 산업과 전략자산, 인력 이동까지 한미 동맹 의제가 다층적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차관은 지난달 30일 미국에 입국한 뒤 1일에는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하고, 2일에는 앨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차관을 면담했다.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조인트 팩트시트 내용을 중심축으로 삼아, 미 행정부와 의회, 싱크탱크를 두루 접촉하며 전략 동맹 구체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외교부는 한미 원자력 협력과 첨단 기술 협의가 정례화되면, 에너지 안보와 비확산, 방위산업, 노동비자 등 연계 현안의 포괄 논의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향후 워킹그룹과 고위급 협의를 통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조치를 세밀하게 조율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