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지표 공개 안됐다”…중국, 완커 유동성 위기 속 경기 둔화 우려 확산
현지시각 기준 1일, 중국(China) 부동산 경기와 실물경제를 가늠할 핵심 지표들이 잇달아 시장의 우려를 자극했다. 대형 민간 기관이 발표해온 11월 민간 주택판매 통계가 예고된 시점에 공개되지 않았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기준선인 50을 밑도는 수치를 기록했다. 완커 유동성 위기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통계 공백과 경기 지표 부진이 맞물리며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정보제공업체 중국부동산정보그룹(CRIC)과 중국지수연구원은 11월 ‘전국 100대 부동산기업 판매 총액’ 통계를 발표할 것으로 시장에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해당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두 기관은 그동안 매월 말 정부 공식 통계보다 2∼3주 앞서 신축 주택 판매 흐름을 보여주는 민간 지표를 제시해왔고, 이 데이터는 중국 부동산경기의 선행지표로 널리 인용돼 왔다. 민간 판매 지표가 제때 나오지 않은 것은 드문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시장은 이번 미발표 시점을 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때 매출 기준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였던 완커는 최근 유동성 압력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신호를 연이어 노출하고 있어서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완커가 채권자들에게 오는 15일 만기가 도래하는 20억 위안(약 4천억 원) 규모 회사채 상환을 1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완커는 지난주에도 국내 채권 상환 의무를 사상 처음으로 미루겠다는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부동산시장은 이미 헝다그룹과 비구이위안 등 대형 개발업체의 연쇄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겪으며 구조적 침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2분기 이후 주택 판매 부진이 다시 심화되는 가운데, 민간의 11월 판매 통계마저 공백을 보이자 시장에서는 업계 전반의 수요 위축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크리스티 헝 선임 애널리스트는 민간 판매 지표 미발표가 업계 상황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10월 민간 집계에서 이미 큰 폭의 감소가 확인된 만큼 11월 수치가 추가 하락을 기록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CRIC에 따르면 10월 ‘전국 100대 부동산기업 판매 총액’은 전년 동월 대비 41.9% 급감해 18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률을 나타냈다. 헝 애널리스트는 1년 전 정부가 추진한 부동산 부양책 시행에 따른 기저효과까지 감안하면 11월 성적도 부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중국 부동산시장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UBS그룹은 향후 최소 2년 동안 중국 주택 가격이 하락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UBS는 중국 주요 도시의 기축 주택 가격이 이미 고점 대비 3분의 1 이상 떨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하면서, 구조적 수요 둔화와 공급 조정이 가격 압력을 장기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평가는 부동산 부문이 중국 성장의 핵심 엔진에서 지속적인 디플레 압력 요인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블룸버그는 민간 지표를 집계하는 CRIC와 중국지수연구원에 11월 통계 미발표 이유와 향후 일정에 대해 문의했지만, 두 기관은 별도의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민간 통계 공백이 부동산 시장의 실질 상황을 가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국내외 투자자의 위험 회피 성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동산 부진과 함께 실물경제 지표에서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중국 민간기관 루이팅거우(RatingDog)는 11월 제조업 PMI가 49.9를 기록해 4개월 만에 기준선 50 아래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경기 확장, 그 이하면 경기 수축 국면으로 해석된다. 49.9라는 수치는 소폭이지만 제조업 활동이 다시 위축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루이팅거우가 발표한 11월 PMI는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완화 기류에 따른 일부 수출 개선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침체 등 내수 부진이 제조업 전반의 회복을 억누르고 있음을 시사하는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건설·부동산 관련 중간재 수요가 약화하면서 철강, 시멘트, 가전 등 연관 산업 전반의 신규 주문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전날 내놓은 11월 공식 제조업 PMI도 49.2로 집계돼 8개월 연속 50을 밑돌았다. 정부와 민간 지표 모두에서 제조업 수축 흐름이 재확인된 셈이다. 세계 2위 경제권인 중국의 제조업 둔화는 원자재 수요와 글로벌 공급망에 연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변국과 주요 교역 상대국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중국 내수와 투자 심리는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양상이다. 부동산경기 악화가 가계 자산가치 하락과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고, 제조업 수축이 고용과 설비투자 축소를 부추기면서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민간 부동산 지표 발표 지연이 투자자 불확실성을 더욱 키워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금융사와 주요 언론은 중국의 성장 전략 재조정 필요성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뉴욕 소재 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에 의존해온 기존 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평가하면서, 소비 진작과 서비스업 육성, 사회안전망 확대 등 구조 개혁 없이는 중장기 성장률 방어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구조조정과 제조업 경쟁력 유지가 향후 중국 경제의 최대 난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부채 조정이 질서 있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금융 시스템 불안이 증폭될 수 있고, 동시에 제조업이 고부가가치 분야로의 전환에 실패하면 성장 잠재력이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정책 대응과 구조개혁 속도가 글로벌 경기 흐름과 금융시장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