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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엔 플랫폼 합류”…피넛 SOOP행 e스포츠 생태계 바꿀까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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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가 선수 은퇴 이후 행보까지 데이터화된 콘텐츠 산업으로 흡수되고 있다. 플랫폼 SOOP이 운영하는 2025 SLL 윈터 리그에 구 락스 타이거즈 출신 정글러 피넛 한왕호가 합류하면서, 전통적인 팀 단위 프로 리그 중심 구조가 스트리밍·커뮤니티 연계 리그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류를 선수 커리어 관리와 e스포츠 플랫폼 경쟁의 분기점 중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

 

SOOP은 5일 오는 15일 개막하는 2025 SLL 윈터에 한왕호가 출전한다고 밝혔다. 한왕호는 지난달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을 끝으로 현역 프로 생활을 마무리하고 군 입대를 앞둔 상태다. 팀 단위 정규 리그와 별개로, 스트리밍 기반 리그에 참여하며 마지막 공식 무대를 택한 셈이다.

이번 SLL에서는 스맵 송경호, 쿠로 이서행, 프레이 김종인 등 락스 타이거즈 전성기를 이끌었던 핵심 멤버가 한자리에 모인다. 락스 타이거즈는 현재 LCK 소속 한화생명 e스포츠의 전신으로, 2015년과 2016년 월즈에서 당시 SK텔레콤 T1과 맞붙어 준우승과 4강을 기록하며 T1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팀이다. 특히 2016년 LCK 서머에서 T1을 꺾고 우승하면서 ‘구 락스’라는 이름을 e스포츠 팬덤의 하나의 상징으로 남겼다.

 

SOOP이 SLL에 구 락스 멤버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단순한 추억 소환을 넘어, 플랫폼 중심 e스포츠 생태계 구축 전략으로 읽힌다. 구단 소속 정규 리그는 강도 높은 연습과 짧은 커리어, 높은 이직·은퇴율이 특징이다. 반면 스트리밍·커뮤니티 기반 리그는 콘텐츠 제작과 팬 소통, 데이터 분석을 결합해 선수의 활동 수명을 늘리고,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다.

 

SOOP은 이미 스타크래프트 리그 ASL을 통해 전·현직 프로게이머가 장기간 활동할 수 있는 모델을 검증해 왔다고 설명한다. 정규 리그 은퇴 이후에도 개인 방송과 이벤트 리그, 장기 리그를 통해 선수 브랜드를 유지하게 하고, 팬층이 이탈하지 않도록 플랫폼 내에서 순환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 한왕호의 합류는 이 모델을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글로벌 e스포츠 종목으로 확장하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기술적으로도 스트리밍 플랫폼 기반 리그는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분석, 하이라이트 자동 생성, 추천 알고리즘과 결합되며 IT 서비스 산업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경기 중 분당 골드 획득량, 시야 장악률, 교전 기여도 같은 지표를 실시간으로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기능은 머신러닝 기반 시청 경험 개인화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다. 향후에는 선수 퍼포먼스를 분석해 개인 맞춤 코칭이나 아마추어 리그 매칭에 활용하는 등 데이터 비즈니스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이번 SLL에는 구 락스 멤버 외에도 T1 출신 탑 라이너 칸 김동하와 정글러 클리드 김태민, 광동 프릭스 출신 최기명, 국내외 리그를 경험한 써밋 박우태와 하이브리드 이우진 등 상위권 실력자들이 대거 출전한다. 과거 월드 챔피언십과 LCK 상위권 무대를 밟았던 선수들이 한 리그에 모이면서, e스포츠 리그의 무게 중심이 기존 프로팀 중심 구조에서 플랫폼 주도형 리그로 일부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SLL이 도입한 식스맨 제도는 플랫폼형 리그의 실험성을 보여주는 장치다. 팀 내 투표로 지정된 식스맨 슬롯을 통해 일부 현역 프로게이머도 제한적으로 출전할 수 있어, 정규 리그와 플랫폼 리그 사이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예상된다. 특정 경기에서 현역 선수와 은퇴 선수가 맞붙는 예측 불가 매치업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이는 시청 데이터와 하이라이트 콘텐츠 생산 측면에서도 높은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e스포츠는 이미 ‘방송 + 게임 + 데이터’가 결합된 융합 산업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스트리밍 플랫폼과 팀, 리그가 협업해 전·현직 프로가 참가하는 쇼매치와 장기 리그를 제작하고, 이를 통해 광고, 후원, 구독, 굿즈 판매 등 다각도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SOOP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이 이 흐름에 맞춰 장기 리그와 방송 인프라를 결합한 모델을 적극 실험하는 모습이다.

 

다만 플랫폼 중심 구조가 강화될수록 선수 노동 환경과 수익 배분, 데이터 활용 범위를 둘러싼 논의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경기 기록, 시청 시간, 채팅 로그 등 방대한 데이터가 플랫폼에 축적되는 만큼, 누가 이 데이터를 알고리즘 개선과 신규 서비스 개발에 활용할 권리를 가지는지에 대한 투명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선수 개인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전략 데이터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사전 동의와 보상 체계 논의도 뒤따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e스포츠를 전제로 한 별도 법률이나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전통 스포츠 분야에서 논의되는 경기 데이터 권리, 선수 초상권, 중계권 배분 문제와 유사한 쟁점이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플랫폼이 리그 운영과 방송, 데이터 수집을 모두 수행하는 구조에서는 이해상충과 공정성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율 규범이나 업계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요구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구 락스 재결합과 같은 상징적인 장면이 단기적으로는 팬 감성과 시청률을 자극하는 이벤트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선수 커리어 관리와 플랫폼 중심 e스포츠 생태계 전환의 흐름 속에 위치한다고 해석한다. 산업계는 피넛을 비롯한 전·현직 스타 선수들이 SOOP과 같은 플랫폼에서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커리어를 이어갈지,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e스포츠 산업 구조 변화를 촉진할지 주시하고 있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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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넛#soop#s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