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CDMO 특별법 통과”…K바이오, 미 생물보안법 변수에 ‘호재’

조현우 기자
입력

미국에서 생물보안법이 연내 국방수권법에 포함돼 발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가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의약품 위탁개발생산 시장에서 중국 CDMO 기업의 비중이 컸던 만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국내 CDMO 기업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CDMO 산업만을 대상으로 한 첫 독립 법률인 CDMO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도적 기반도 갖춰졌다. 다만 세액공제 범위와 인프라 정의가 기존 조세체계에 묶여 있어 실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려면 추가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생물보안법은 최근 미국 연방의회 최종 국방수권법 타협안에 포함됐다. 지난 10일 미국 하원은 국방수권법 타협안을 찬성 312표, 반대 112표로 가결했으며, 상원 통과와 대통령 서명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는 연내 발효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우려 생명공학 기업과 이들과 거래하는 기업에 대해 연방정부의 계약 체결과 재정 지원을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중국 CDMO 대형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과 유전체 분석 기업 BGI, MGI, 컴플리트지노믹스 등 주요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이미 우려 기업 목록에 오른 상태다. 미국의 제약사와 연구기관이 이들 기업과의 거래를 줄이거나 중단할 경우, 대체 공급처로 한국 CDMO 기업이 부상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국내 증권가에서도 공급망 이동 조짐을 포착하고 있다. 이달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미국 내 중국계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주 금액이 지난해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생물보안 우려를 이유로 중국 CDMO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할 경우, 이미 글로벌 빅파마와 거래 경험이 있는 한국 CDMO 기업에 더 많은 프로젝트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제도 측면에서는 CDMO 산업만을 직접 겨냥한 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됐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 등의 규제지원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CDMO 특별법은 국내 바이오의약품 CDMO 산업을 위한 최초의 독립 법률이다. 그동안 CDMO 관련 규제는 약사법, 첨단재생의료법 등 복수의 법률에 흩어져 있어 인허가와 수출 과정에서 중복 규제가 발생하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CDMO 특별법 제정을 통해 바이오의약품 수출제조업 등록제를 신설하고, 통관 절차 간소화 등 실질적인 규제 개선이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CDMO 제조소에 대한 제조·품질관리기준, 즉 GMP 적합인증의 법적 근거도 명시해 인허가 단계의 기술 자문과 수출 규제 대응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틀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CDMO 산업 특성을 반영한 전용 규제 체계를 구축하고 행정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번 법은 CDMO 제조소를 단순 수탁 생산시설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공정개발과 품질관리, 글로벌 인허가 대응이 결합된 복합 인프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공장 단위의 GMP 요건 충족 여부를 중심으로 관리가 이뤄졌다면, 앞으로는 공정개발부터 임상시료 생산, 밸리데이션, 규제 대응까지 CDMO 고유 기능 전반이 규제와 지원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장기 파트너십을 위해 요구되는 통합 역량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셈이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CDMO 특별법이 도입됐음에도 조세 체계와 투자 인센티브 측면에서 구조적인 한계가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선언적 규제 지원에 머무를 경우 미국과 유럽, 싱가포르 등과의 초격차 경쟁에서 밀릴 수 있어, 생물보안법에 따른 단기 반사이익이 장기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할 위험도 거론된다.

 

박용기 삼성바이오로직스 대외협력팀장은 11일 열린 한국제약바이오헬스케어연합회 제2차 포럼에서 CDMO 특별법이 R&D 세액공제 확대와 GMP 시설 투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세 지원 체계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액공제는 순수 생산 설비, 즉 GMP 공장에서 실제로 제품을 생산하는 장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돼 CDMO 산업 전체를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CDMO 사업 구조상 공정개발부서, 품질시험, 밸리데이션, 규제 대응, 임상시료 생산 등 비생산부문이 핵심 인프라임에도, 현행 분류 체계에서는 이들 시설이 연구시설 또는 부대시설로 처리돼 세액공제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실제로 글로벌 CDMO는 개발과 생산, 품질, 규제전략을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통합해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공장 기계에만 혜택이 집중되는 반쪽 지원 구조라는 지적이다.

 

박 팀장은 이러한 격차가 조세특례제한법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CDMO 특별법이 실질적 정책 효과를 내려면 단순 규제완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별도의 세제 특례와 투자 인센티브를 수반하는 전용 정책 패키지로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GMP 생산설비 지원에 치우친 현 구조로는 글로벌 대형 CDMO와의 경쟁, 대규모 외국인 투자 유치, 초격차 생산 역량 확보에 한계가 뚜렷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는 향후 정책과정에서 CDMO 필수 인프라를 법률과 시행령에 명확히 정의하고, 이들 인프라에 대해 별도의 세제 특례를 적용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세액공제율 상한에 대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해 R&D와 인력, 품질, 규제 역량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바이오의약품 생산 거점을 둘러싼 재편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생물보안과 공급망 안보를 명분으로 중국 기반 CDMO와 유전체 기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한편, 자국과 우방국 내 생산기지 유치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유럽 역시 전략물자 자급률 제고를 목표로 바이오 생산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싱가포르와 아일랜드 등은 세제 혜택과 규제 친화적 환경을 앞세워 글로벌 CDMO를 끌어들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CDMO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바이오의약품 수출제조업 등록, GMP 적합인증 제도화 등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인허가와 통관 지원만으로는 선도 기업과의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조세특례제한법 개편, 인력 양성, 인프라 투자 지원을 아우르는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DMO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선언한 수준을 넘어, 실제 투자와 일자리, 수출 확대를 견인할 수 있는 실행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미국 생물보안법 통과와 한국 CDMO 특별법 시행이 맞물리는 향후 2∼3년이 K바이오 CDMO의 글로벌 위상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 중심 공급망이 재편되는 공백을 국내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메우느냐에 따라 시장 점유율과 기술 위상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동시에 법과 제도가 산업 구조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기대됐던 반사이익이 타 국가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CDMO 특별법을 계기로 규제와 세제, 인력, 데이터 인프라를 아우르는 통합 지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계는 이번 법 제정과 미국발 공급망 재편이 실제 투자와 수주 확대, 글로벌 생산 허브 도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현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삼성바이오로직스#cdmo특별법#생물보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