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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도박 불법정보 24시간 차단”…정부, 심의 속도전 강화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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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마약 거래와 불법 도박 등 민생과 직결된 불법정보 대응 체계가 속도전에 들어간다. 정부가 심의 절차를 전면 재설계해, 마약과 도박을 비롯한 주요 불법정보에 대해 24시간 내 심의와 시정요구를 마치는 상시 대응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플랫폼을 통한 유통 속도가 빨라진 만큼, 사후 규제도 실시간에 가깝게 끌어올려 피해 확산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업계는 규제 강도보다 심의 효율과 절차 투명성이 향후 온라인 생태계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부터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마약, 도박 등 불법정보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되면 24시간 이내에 심의와 시정요구 절차를 마무리하는 체계를 운영한다. 지금까지 통신 분야 심의는 대면회의를 원칙으로 진행해 속도와 처리 물량에 제약이 있었다. 디지털성범죄물에 대해서만 서면회의 방식으로 하루 1회 정기회의를 열어 대응해 왔는데, 이런 예외 규정을 전면 확대해 상시 서면의결 체제로 전환하는 셈이다.

핵심은 서면의결 대상 확대다.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는 기존에 성폭력처벌법에 따른 불법촬영물 등 디지털성범죄물 중심으로만 서면 심의를 진행해 왔다. 앞으로는 도박과 사행성 정보, 마약류 관련 정보, 해외 저작권 침해 정보, 전기통신금융사기 정보, 자살 유발 정보, 장기 매매 정보, 개인정보 매매 정보, 총포와 화약류 제조법 안내 정보 등 주요 불법정보 전반을 서면의결 대상으로 포함한다. 디지털성범죄물에 한정됐던 신속 심의 범위를 온라인 범죄 전반으로 넓혀, 고위험 불법정보는 대부분 빠른 처리 트랙에 태우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이번 조정은 기존 대면회의 방식이 가진 속도와 유연성 한계를 겨냥했다. 온라인 플랫폼과 메신저를 통해 마약 구매나 도박 사이트 링크가 시간 단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주 단위·일 단위 회의로는 피해 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정부는 서면심의 비중을 높이면 심의위원 일정과 회의실 등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24시간 내 처리라는 목표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정보 접수가 집중되는 시간대에도 밀리지 않는 대응 여력이 생기면, 마약 유통망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의 수익 구조를 실질적으로 흔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시장 측면에서는 플랫폼 사업자와 통신사, 콘텐츠 사업자의 책임이 한층 무거워진다. 시정요구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사업자가 불법정보를 방치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든다. 신고 접수부터 차단 요구까지의 간극이 줄어들면, 불법 광고나 링크를 반복적으로 노출해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통하기 어렵게 된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내부 모니터링과 자동 필터링 알고리즘, 신고 처리 시스템을 심의 속도에 맞춰 재정비할 필요가 커졌다.

 

이번 개편은 정보 유통 구조 변화에 따른 공표 절차 조정도 포함한다.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는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종이신문에 공표할 때 게재 페이지를 제한하던 기존 규정을 없애기로 했다. 국민의 주요 뉴스 소비가 종이신문에서 포털과 온라인 뉴스로 이동한 현실을 반영해, 신문 지면 위치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졌다는 판단이다. 이전까지는 일반신문의 경우 2면, 3면, 사회면, 경제면에, 스포츠신문은 2면, 3면, 사회면에만 공표문을 실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사업자가 시정명령 공표를 위한 게재면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정부는 공표 의무라는 핵심 틀은 유지하면서도, 게재 위치 규제를 없애 비용과 편집 유연성을 높였다고 설명한다. 신문 지면 단가와 편집 계획에 따라 사업자가 최적의 위치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공표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던 갈등과 비용 부담도 일부 완화될 수 있다. 다만 공표 자체가 갖는 명예·브랜드 리스크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사업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강한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온라인 불법정보에 대한 신속 심의와 플랫폼 책임 강화가 정책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은 디지털서비스법을 통해 대형 플랫폼에 불법 콘텐츠 신속 제거와 투명성 보고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도 아동 성착취물과 마약 유통 정보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사와 차단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의 서면심의 확대와 24시간 처리 목표는 이런 글로벌 흐름과 궤가 맞닿아 있다. 특히 마약과 도박, 금융사기에 대한 집중 대응은 온라인 기반 범죄 수익 차단이라는 측면에서 국제 공조와도 연계될 여지가 크다.

 

다만 심의 속도 향상이 절차의 공정성과 표현의 자유 보장과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에 대한 논의는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서면의결 비중이 커질수록 심의 과정의 세부 판단이 외부에 충분히 설명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와 시민사회는 심의 기준과 결과 공개를 확대하고, 이의신청 절차를 명확히 하는 등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정부 역시 심의위원회 운영 효율성을 높이면서, 심의 내용과 통계에 대한 공개 범위를 넓히는 보완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디지털 환경에서 불법정보 차단 기술과 규제 체계는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AI 기반 콘텐츠 필터링과 키워드 탐지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심의기관과 플랫폼이 협력해 사전 차단률을 높일 여지도 생겼다. 동시에 암호화 메신저, 다크웹, 해외 서버를 악용하는 방식도 늘고 있어, 단일 제도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은 기술적 대응과 법제 개선, 국제 공조를 결합해 입체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마약과 도박, 금융사기 등 고위험 불법정보에 대한 속도 중심 대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심의 구조 개편과 공표 기준 완화가 실제로 불법정보 유통을 줄이고, 플랫폼 자율 규제와 기술 투자를 유도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산업계는 새 심의 체계가 온라인 서비스 혁신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신뢰받는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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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불법정보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