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폭음이 간을 망친다”…알코올성 지방간, 간암까지 번질 수 있다
연말 송년회와 회식이 이어지면서 고위험 음주에 따른 간 손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도한 음주로 간 세포 내 지방이 5퍼센트 이상 쌓이는 알코올성 지방간은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지만, 방치하면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 유행기 잠시 감소했던 음주율이 일상 회복 이후 반등한 가운데, 의료계는 연말 폭음 문화가 간 질환 부담을 키우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알코올성 간 질환의 조기 진단과 대사질환 관리가 향후 간 질환 예방 전략의 핵심 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알코올성 지방간은 지속적인 음주로 인해 간 세포 안에 중성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된 상태를 뜻한다. 간 조직에서 지방이 5퍼센트 이상 차지하면 지방간으로 분류되며, 이 가운데 음주가 원인이 된 경우를 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본다. 단순 지방 축적 단계에서는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질환이 진행되면 피로감, 오른쪽 윗배의 묵직한 불편감, 식욕 저하, 소화불량, 체중 감소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진단은 혈액검사와 영상 검사가 병행된다. 혈액검사에서 간세포 손상을 반영하는 AST, ALT 수치 상승 여부를 확인하고, 복부 초음파나 CT 촬영을 통해 간 내 지방 침착 정도를 평가한다. 초음파에서 간이 전체적으로 밝게 보이거나, CT에서 정상 간보다 밀도가 낮게 측정되면 지방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필요 시 자기공명영상 기반 지방 정량 검사 등 정밀 영상기법이 활용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 동안 한 달에 1회 이상 술을 마신 사람의 비율은 57.1퍼센트로 절반을 넘어섰다.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자는 소주 50밀리리터 기준 7잔 이상, 여성은 5잔 이상을 주 2회 이상 마시는 고위험 음주 비율도 12퍼센트에 달했다. 수치상으로는 전체 인구 10명 중 1명 이상이 간 질환 위험이 큰 음주 패턴을 보이는 셈이다. 연말에 음주량이 더 늘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부담은 더 클 수 있다.
전호수 이대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술 자체가 강력한 발암 요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술은 1군 발암물질이다라고 말하며 고위험 음주가 알코올성 지방간을 넘어 간염, 간경화, 간암 등 다양한 간 질환과 전신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코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로 대사되는데, 이 물질이 간세포 독성을 일으키고 염증과 섬유화를 촉진해 장기적인 손상을 남긴다.
알코올성 간염 단계에서는 금주만으로도 회복 여지가 크다. 보통 음주를 완전히 중단하면 4주에서 6주 사이에 간수치가 정상 범위로 되돌아오는 사례가 많다고 의료계는 설명한다. 그러나 지방간과 간염이 반복되고, 섬유화가 진행돼 알코올성 간경변증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단계에서는 술을 끊더라도 이미 손상된 간 조직이 정상 구조로 회복되기 어렵고, 간 기능 저하와 합병증 관리가 치료의 중심이 된다.
간경변증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는 복수, 황달, 정맥류 출혈, 간성 뇌증 같은 합병증이 나타난다. 특히 복수와 황달은 이미 간 기능이 크게 떨어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의료진은 폭음이나 만성 음주 습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인 건강검진으로 간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간 기능 검사, 초음파, 필요 시 탄성도 측정을 통한 섬유화 평가를 같이 시행하면 진행 정도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알코올은 간 외에도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 식도와 후두를 포함한 상부 소화관 암, 대장암 등 여러 암의 위험을 높이며, 심근병증과 부정맥,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 발생률도 끌어올린다. 만성 음주는 기억력 저하와 치매, 우울증 등 신경정신질환과도 연관돼 있다. 요산 대사를 교란해 통풍을 악화시키는 등 대사질환 부담도 키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조기부터 손상이 누적되는 장기가 간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주목받는 개념은 대사 관련 알코올성 지방간 질환이다. 비만,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같은 대사 이상을 가진 사람이 음주까지 병행할 경우, 지방간과 염증이 더 빠르게 진행하고 간경변이나 간암으로의 이행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다. 서구형 식습관과 운동 부족,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젊은 층에서도 체중 증가와 함께 알코올성 지방간이 진단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환자군에서는 단순 금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체중 감량을 위한 식이 조절,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혈당과 지질 수치 관리 같은 대사 개선 전략을 병행해야 간 지방과 염증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필요 시 인슐린 저항성 개선제나 지질 강하제 등이 투약되고, 영양 상담과 행동 변화 프로그램도 연계된다.
간경변으로 이미 진행된 환자는 약물치료와 함께 저단백 고열량 식단 대신, 적정 단백질을 유지하면서 염분과 수분 섭취를 조절하는 영양 관리가 필수다. 식도정맥류 출혈 예방을 위한 내시경 시술, 이뇨제와 알부민을 이용한 복수 조절, 감염 예방 등 합병증 관리가 치료의 핵심이 된다. 말기 간경변증 단계에서는 간 기능을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워 간이식이 유일한 근치적 치료 옵션으로 고려된다.
전호수 교수는 안전한 음주나 괜찮은 음주라는 개념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람마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양을 마셔도 누군가는 단 한 잔으로 간 손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부득이하게 술을 마셔야 한다면 한 번에 남자는 4잔, 여자는 2잔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고, 하루 음주 후에는 최소 3일 이상 금주하며 간이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연초를 앞두고 금주나 절주를 새해 목표로 정하고, 이를 주변에 공개해 스스로 약속을 지키도록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료진은 피로감이 평소보다 심해지거나 황달,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등 이상 신호가 느껴질 경우 즉시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한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 역시 음주 문화 개선과 간 질환 조기 검진 체계 강화가 향후 보건의료 부담을 줄이는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연말 폭음 관행을 줄이고, 개인과 사회 차원의 예방 중심 관리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간 건강을 지키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