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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더빙으로 재탄생한 K콘텐츠…이스트소프트, LG·삼성 타고 확산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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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반 더빙 기술이 K콘텐츠 수출 방식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스트소프트가 AI 더빙으로 현지화한 방송·게임·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K콘텐츠를 LG와 삼성의 무료 스트리밍 채널을 통해 북미와 유럽, 아시아에 동시 공급하기 시작하면서다. 업계에서는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를 매개로 한 이 모델이 K콘텐츠 유통 구조와 방송용 AI 기술 상용화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스트소프트는 AI 더빙으로 재가공한 K콘텐츠를 LG 채널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 등 글로벌 시장에 송출하기 시작했다고 26일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추진하는 K FAST, 한국형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 확산 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K FAST는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 환경에 최적화된 형태로 K콘텐츠를 재편집하고 다국어화해 글로벌 시청자에게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스트소프트는 최근 EBS 한국기행 30편과 더 파이널스, 카스 온라인, 서든어택 등 e스포츠 관련 영상에 AI 더빙을 입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LG 채널을 통해 선보였다. 여행 콘텐츠 채널 트래블 온과 게임 콘텐츠 채널 게임 온을 이미 운영 중이며, 이달 중 음식 콘텐츠 전용 푸드 온 채널도 추가 편성할 예정이다. 내년 1월에는 삼성 TV 플러스에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채널 시리즈 K를 개설해 드라마와 예능 중심 K콘텐츠 송출을 본격화한다.

 

AI 더빙 기술은 원본 영상의 음성을 자동으로 텍스트로 변환한 뒤, 번역과 음성 합성을 거쳐 현지 언어로 새 음성을 입히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이스트소프트의 경우 자사 AI 더빙 솔루션 페르소에이아이를 통해 다국어 음성 합성, 화자별 음색 재현, 영상 길이에 맞춘 자동 타이밍 조정 기능 등을 통합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 성우가 참여하는 전통적 더빙 방식과 비교해 대량 콘텐츠를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할 수 있고, 언어 추가와 수정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사업은 실제 방송 송출 환경에서 AI 더빙 품질을 검증하는 시험대 역할을 한다. LG 채널과 삼성 TV 플러스는 각각 수백 개의 무료 채널을 운영하는 글로벌 FAST 플랫폼으로, 음성 자연스러움과 입 모양 싱크, 배경음과의 조화 등 방송 수준의 완성도가 요구된다. 이스트소프트는 약 200시간 분량의 콘텐츠를 송출하는 역할을 맡아, 다양한 장르와 포맷에서 기술을 실전 검증하는 중이다.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는 유료 가입 없이 광고 시청을 전제로 실시간 채널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 스트리밍의 중간 지대에 위치한 새로운 방송·미디어 모델로 평가된다. LG 채널은 미국에서만 400개 이상 무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삼성 TV 플러스는 전 세계 24개국에서 서비스된다. 이스트소프트는 이 같은 플랫폼 확산을 감안할 때 K FAST 사업을 통해 제시한 AI 기반 K콘텐츠 수출 모델이 글로벌 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FAST와 결합한 현지화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형 스튜디오와 방송사가 자체 라이브러리를 FAST 채널로 묶어 공급하며, 자막과 더빙 자동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스트소프트처럼 AI 기술 기업이 콘텐츠 제작사와 스트리밍 사업자, 글로벌 TV 제조사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직 통합형 모델을 시도하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K FAST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를 협력사로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구조의 연장선이다.

 

AI 더빙 상용화에는 기술뿐 아니라 규제와 저작권 이슈도 수반된다. 음성 합성에 원저작자의 음색을 사용하는 경우 초상권과 인접권 문제, 번역 품질에 따른 콘텐츠 왜곡 우려, 국가별 방송 심의 기준 차이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K FAST 사업은 정부 지원 아래 시범 성격을 띠고 있어, 향후 상업적 확장 단계에서 구체적인 가이드 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광고 기반 무료 서비스 특성상 시청자 데이터 활용 범위와 개인정보 보호 규정 준수도 지속적인 점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이스트소프트는 K FAST에서 확보한 실사용 레퍼런스를 토대로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콘텐츠 마켓 밉컴에 참가해 해당 레퍼런스를 앞세워 100여 개 기업과 미팅을 진행했고, 일부는 실제 계약 체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페르소에이아이의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강화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더빙과 같은 현지화 기술이 K콘텐츠 수출의 필수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자막 중심 소비에서 음성 현지화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 몰입도와 시청 시간 확대, 광고 단가 고도화가 동시에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스트소프트 관계자는 K FAST를 K콘텐츠를 AI 기반으로 재가공하고 유통하는 새로운 수출 모델이라고 정의하며, AI 더빙이 향후 글로벌 K콘텐츠 확산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계는 이러한 시도가 실제 수익 모델과 장기 계약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규제와 저작권 논의를 어떻게 통과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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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소프트#kfast#perso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