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비비에 가방 대금, 김기현 계좌서 빠져나가"…특검, 국회의원실·자택 동시 압수수색
여권 핵심을 둘러싼 특검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과 방어 논리가 맞붙었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로저비비에 가방 수수 의혹을 둘러싸고 특검이 집권여당 전 대표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에 대해 강제수사에 나서며 정치권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있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과 서울 성동구 자택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수사팀은 김 의원과 배우자 이모 씨의 청탁금지법 위반 연루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각종 문서와 컴퓨터 파일을 확보하려 했고, 같은 날 오전 국회사무처 의회방호담당관실도 압수수색해 차량 출입 기록을 가져갔다. 압수수색은 오전 8시 30분께 시작돼 약 4시간 30분 후인 오후 2시께 마무리됐다.

이날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에는 김 의원이 배우자 이씨의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공범으로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특히 2023년 3월 16일부터 20일까지 김 의원 사무실을 방문한 차량 출입 기록을 집중적으로 확인 중이다. 특검팀은 2023년 3월 16일을 이씨가 선물용 로저비비에 가방을 구매한 시점으로 특정한 상태다.
국회 사무실 압수수색 이후 김 의원 측은 특검 수사가 공허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변호인인 윤용근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특검팀 수사과장의 도장이 찍힌 문서를 제시하며 "특검이 직원들 컴퓨터까지 압수수색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고 확인 도장까지 찍고 갔다"고 전했다. 문서에는 피의자 김기현 등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을 수색한 결과 증거물과 몰수 물건이 없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특검팀은 김 의원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김 의원과 배우자 이씨의 휴대전화 각 1대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통화내역, 메시지, 메신저 기록 등을 분석해 선물 준비 경위와 청탁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방침으로 전해진다.
이씨는 2023년 3월 8일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김기현 의원이 당선된 뒤, 같은 달 김건희 여사에게 시가 260만 원 상당의 로저비비에 클러치백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민중기 특검팀은 지난달 6일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로저비비에 가방과 함께 이씨가 작성한 감사 편지를 확보했다.
특검팀은 수사 초기부터 김 여사가 이른바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와 공모해 통일교 신도 2천400여 명을 국민의힘에 집단 입당시켜 김 의원의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지원했고, 그 대가로 통일교 측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특검은 이씨가 당 대표 경선 지원에 대한 답례 성격으로 김 여사에게 고가의 로저비비에 클러치백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애초 특검팀은 선물 제공자 이씨만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로 입건했다. 그러나 이후 가방 결제 대금이 김 의원 명의 계좌에서 지급된 정황을 포착하고 최근 김 의원도 함께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이 지점을 공범 구조의 핵심 고리로 보고 계좌 사용 경위, 자금 출처, 사용 승인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따지는 분위기다.
김 의원 측은 특검의 공범 적시와 계좌 사용 의혹에 강하게 반발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김 의원의 세비 통장을 배우자인 이씨가 관리했을 뿐"이라며 "김 의원은 선물 구입과 전달 과정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 의원은 배우자가 김 여사에게 선물을 건넨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신임 여당 대표의 배우자로서 대통령 부인에게 사회적 예의 차원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설명했고, 부정한 청탁 의도는 없었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특검팀은 지난 5일 이미 이씨를 한 차례 소환해 조사했다. 당시 조사에서 선물 준비 동기, 가방 구입 자금 출처, 대통령실과의 사전 교감 여부 등에 대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날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와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분석한 뒤 김 의원을 직접 불러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는 특검이 김기현 의원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수사가 여권 핵심부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평가와 함께, 야권이 대대적인 공세를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동시에 나온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전직 대통령 부부와 여당 전 대표를 겨냥한 특검 수사가 정치적 의도를 띠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주변에선 특검 수사 향방에 따라 청탁금지법 적용 범위와 정치권 로비 관행에 대한 후폭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검팀이 김 의원 소환 조사를 마친 뒤에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 방식과 시기, 전성배 씨 및 통일교 관계자 조사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날 국회는 특검의 김기현 의원실 압수수색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 속에서 거센 정치적 파고에 휘말렸다. 정치권은 로저비비에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한 특검 수사를 놓고 당분간 정면 충돌 양상을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