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공작 정치" "용서받지 못할 일"…국민의힘, 당원게시판 사태 놓고 내홍 격화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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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당원게시판을 둘러싼 갈등과 친한동훈계의 반발이 국민의힘 내부 분열을 키우고 있다. 당무감사 결과 발표를 계기로 한동훈 전 대표와 장동혁 대표 체제 지도부가 정면으로 맞서면서 내홍이 한층 격화되는 양상이다. 윤리위 징계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계파 갈등이 다시 정국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최근 감사 결과를 통해 한 전 대표 가족이 국민의힘 익명 당원 게시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을 지속해서 올린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한 전 대표는 31일 페이스북 글에서 이 발표를 정면 부인하며 당무감사위의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한 전 대표는 "어제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은 게시물 명의자를 조작해 발표했다.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동명이인들의 게시물을 한 전 대표와 가족들 명의의 게시글인 것처럼 문건을 작성해 개인 블로그에 올린 행위는 명백히 고의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이라며 법적 조치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싸워야 할 때 이렇게 조작까지 하면서 민주당을 도와주는 의도가 의심스럽다"고도 적었다.

 

다만 한 전 대표는 전날 입장을 통해 당게 활동 일부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그는 "제 가족들이 익명이 보장된 당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인 사설과 칼럼을 올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제가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해 제대로 가야 한다는 칼럼을 올린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라며 사과 요구에 선을 그었다. 당내에서는 사실 인정과 책임 인식 사이의 간극을 두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친한동훈계 인사들은 당무감사위와 장동혁 대표를 향해 거친 표현까지 동원하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배현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무감사위원장이란 중요 보직자가 눈치도 없이 당의 중차대한 투쟁의 순간마다 끼어들어 자기 정치의 퍼포먼스를 하는 바람에 당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의 이혜훈 지명 수작, 김병기와 그 처의 벼룩의 간 빼먹기, 강선우의 공천헌금 녹취 등 당이 집중해 싸워야 할 순간마다 하필. 쯧쯧 멍청하기가…"라고 적어 당무감사위를 정조준했다.

 

박정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당무감사 결과를 겨냥했다. 그는 "제1야당이라는 공당의 당무감사 결과가 이렇듯 허술하고 엉터리일 줄은 미처 몰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 "이럴 바엔 그저 너무 미워서 총으로라도 쏴 ○○겠다는 그분의 말로 발표를 대신하는 게 솔직했을 듯싶다"고 적어 거친 표현 논란까지 예고했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과 박상수 전 대변인도 잇따라 장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장 대표가 공작 정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박 전 대변인은 "음모론에 빠지던 자들이 날조한 내용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고 썼다. 친한동훈계 전현직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당무감사위와 지도부를 겨냥하면서 계파 간 충돌이 노골화되는 모습이다.

 

반면 장동혁 대표 체제 지도부와 그 주변에서는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류가 뚜렷하다. 강명구 조직부총장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이재명 정부와 싸우기도 바쁜데 언제까지 분열과 갈등을 가져갈 거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전 대표가) 인정할 건 인정하시고, 해명할 건 해명하시고, 사과할 게 있으면 빨리 사과하고 털고 가시면 된다"고 말했다. 당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정리와 사과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YTN 라디오에서 당게 글의 성격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그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익명 뒤에 숨어서 수위가 넘는 발언들로 내부를 분열하려고 했다면 그 대상이 누구였다 해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같이 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와 향후 진로를 함께하기 어렵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장 대표 지도부에 비판적이던 인사들까지도 이번 사안 만큼은 한 전 대표를 겨냥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김용태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한 전 대표가 과거 이 문제가 처음 거론됐을 때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넘어갔으면 됐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적 조치 등을 중언부언 말씀하시는 태도는 적절치 않고 낯부끄러운 행동"이라고 평가하며 한 전 대표의 대응 방식을 싸늘하게 비판했다.

 

당내 사법 절차는 윤리위로 공이 넘어간 상태다. 당무감사위가 한 전 대표 징계 여부를 윤리위에 회부하면서, 향후 수위와 시점은 당 윤리 시스템의 판단에 좌우될 전망이다. 현재 공석인 윤리위원장이 임명되면 당게 사태 관련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전 대표 징계 절차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제기된다.

 

당 대표와 한 전 대표 간 관계 설정도 향후 정국의 뇌관으로 꼽힌다. 장 대표는 지난 28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당원게시판 사태를 매듭짓는 방식의 화해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형식적 외연 확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사실상 한 전 대표와의 봉합 시나리오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셈으로, 윤리위 결정과 맞물려 계파 갈등 심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뒤따른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 견제라는 야당 역할 수행과 내부 갈등 수습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다. 윤리위원장 인선과 한 전 대표 징계 수위에 따라 당내 역학 구도가 크게 재편될 수 있는 만큼,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관련 논란과 책임 공방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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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국민의힘#장동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