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가속기 50만대 출하 준비”…중국 캠브리콘, 미국 규제 속 반도체 굴기 가속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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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4일, 중국(China)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 캠브리콘(Cambricon)이 2026년을 앞두고 AI 반도체 생산을 올해의 3배 이상으로 확대해 약 50만대 규모의 AI 가속기 시스템 출하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 움직임은 미국(USA)의 대중국 수출 규제 속에서 AI 기술 자립을 추진해 온 중국 정부 기조와 맞물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새로운 변수를 더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업계 소식통들은 캠브리콘이 내년 출하를 목표로 하는 AI 가속기 시스템에 자사 최신 AI 칩인 시위안590과 시위안690 약 30만개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지시각 기준 4일 오전 기준으로 전해진 이 계획은 올해 대비 3배 이상 수준의 공격적 증산에 해당한다는 평가다.

중국 ‘캠브리콘’, 내년 AI 가속기 50만대 계획…최신칩 30만개 투입
중국 ‘캠브리콘’, 내년 AI 가속기 50만대 계획…최신칩 30만개 투입

소식통들에 따르면 캠브리콘은 이번 증산 과정에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중신궈지(SMIC)의 최신 7나노미터 공정 ‘N+2’에 주로 의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캠브리콘은 미국의 엔비디아(NVIDIA)와 마찬가지로 칩과 시스템 설계에 집중하고 실제 제조는 파운드리에 맡기는 팹리스 모델을 채택하고 있어, SMIC의 생산 역량이 성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블룸버그는 캠브리콘의 대규모 생산 확대 계획을 두고 “미국과의 기술 경쟁 속에서 AI 기술 내재화를 추진해 온 중국 정부 전략과 궤를 같이하는 사례”라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위상 급부상을 상징하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또 다른 대표적 AI 칩 기업 화웨이(Huawei)도 내년 고급형 AI 칩 생산량을 현재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전해져, 중국 내 AI 반도체 증설 경쟁에 불이 붙는 양상이다.

 

중국 AI 반도체 섹터에 대한 자본시장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엔비디아의 중국 담당 총괄 출신 장젠중이 설립한 AI 칩 스타트업 무어스레드(Moore Threads)는 5일 상하이(Shanghai) 증시에 상장을 앞두고 있어, 중국 내 AI 칩 생태계 전반에 투자 수요가 유입되는 흐름이 관측된다.

 

다만 캠브리콘과 SMIC는 이 같은 생산 계획과 관련한 블룸버그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캠브리콘은 자사 위챗(WeChat) 계정에 올린 성명에서 “당사 제품, 고객, 생산량 예측치와 관련해 현재 미디어에서 유통되는 정보는 모두 정확하지 않다”고만 밝히며, 구체적인 수치는 선을 그었다. 회사가 공식 수치를 부인하면서도 생산 확대 기조 자체를 뒤집지는 않은 셈이다.

 

블룸버그는 캠브리콘 급성장의 배경에 미국 정부의 대중국 수출 규제를 지목했다. 미국은 2022년부터 엔비디아 등 자국 기업의 고성능 AI 칩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행위를 제한해 왔고, 이 조치가 중국 내 대체 수요를 촉발해 캠브리콘 등 자국 업체에 직접적인 수혜를 안겼다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견제가 중국 내 AI 칩 국산화와 자립 드라이브를 더 강하게 자극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 H200 등 중국이 아직 자체 생산하지 못한 수준의 첨단 AI 칩에 대해 대중국 수출 허용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대중국 AI 칩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관련 기술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3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반도체 수출 통제 문제를 논의한 뒤 기자들에게 H200의 중국 수출 가능성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고 언급하며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미국이 수출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AI 기술 내재화를 반복해 강조해 온 중국 당국이 자국 AI 기업들에 H200 같은 최신 미국산 칩 사용을 폭넓게 허용할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규제 완화가 이뤄져도 기술 자립을 우선시하는 정책 기조 탓에 중국 기업들이 다시 미국산 칩 의존도로 회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판단은 캠브리콘과 같은 토종 업체의 성장 여지가 당분간 유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캠브리콘은 미중 전략 경쟁의 대표적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4배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고, 2021년 상장 직후와 비교한 시가총액은 9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국의 대중 제재가 중국 내 AI 반도체 생태계 확대를 촉진하면서 투자자 기대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된 모습이다.

 

캠브리콘 최대 고객은 틱톡(TikTok) 운영사로 알려진 중국 기술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다. 바이트댄스가 캠브리콘 전체 주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웃도는 것으로 전해져, 중국 플랫폼 빅테크의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가 토종 칩 수요를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캠브리콘은 바이트댄스뿐 아니라 알리바바(Alibaba) 등 주요 중국 AI 기업들을 상대로 향후 수년을 내다본 신규 주문 확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캠브리콘의 공격적 사업 확장에는 구조적 제약도 존재한다. 블룸버그는 파운드리 파트너 SMIC의 생산 여력이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MIC가 시위안590과 시위안690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현재 수율을 20% 수준까지밖에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수율 20%는 실리콘 다이 5개를 찍어내면 이 가운데 1개만 정상 제품이고 나머지 4개는 불량으로 분류된다는 뜻으로, 원가 부담과 공급 능력 제한을 동시에 키우는 구조다.

 

제조 경쟁력 격차도 뚜렷하다. 엔비디아 칩 생산을 담당하는 대만(Taiwan)의 TSMC는 최신 2나노미터 공정에서 60%를 웃도는 수율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져, 중국 SMIC와의 기술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산성 차이는 동일 웨이퍼에서 확보 가능한 양품 칩 수와 원가 경쟁력에 직결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글로벌 AI 칩 시장 점유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AI 가속기 시스템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급도 SMIC와 중국 AI 칩 생태계가 직면한 또 다른 과제다. 중국 업체들의 HBM 기술력이 아직 충분한 단계에 이르지 못해, 실제 공급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의 HBM 제품 의존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의존 구조가 향후 지정학적 긴장 고조나 추가적인 수출 규제 발생 시 중국 AI 칩 공급망의 잠재적 병목 요인으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 기술 디커플링이 심화되는 가운데, 캠브리콘의 증산 계획과 SMIC의 7나노 공정 활용 확대는 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더욱 구조화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엔비디아 H200 등 첨단 AI 칩의 대중 수출 재개를 검토하더라도, 중국의 AI 기술 내재화 전략과 토종 반도체 생태계 육성 기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국제사회는 이번 조치들이 향후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과 미중 기술 경쟁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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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콘#smic#엔비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