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빛 곶감이 크리스마스를 물들인다”…논산 겨울축제, 가족의 저녁을 바꾸다
요즘 겨울밤에 곶감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그저 차례상 위에 오르는 한 과일쯤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고 가족 나들이의 이유가 되는 일상이 됐다. 사소한 계절 먹거리였던 곶감이, 사람들의 연말을 모아주는 따뜻한 신호처럼 바뀌고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체육공원에서는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간 ‘논산양촌곶감축제’가 열린다. 논산시와 논산문화관광재단이 함께 준비한 이번 축제는 논산 들녘에서 자라난 양촌곶감에 크리스마스 특유의 포근한 분위기를 더해, 겨울철 가족 단위 체류형 관광축제로 자리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슬로건은 곶감 같은 달콤한 인생으로 정해졌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20여 양촌곶감 농가가 참여하는 홍보판매장이다. 방문객은 다양한 대표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골라볼 수 있고, 곶감을 키운 농민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눈다. 단순 구매를 넘어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를 듣고 묻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여기에 논산 농특산물 판매장이 더해져, 논산 5품으로 불리는 주요 특산물을 비롯한 지역 농산물까지 함께 소개된다. 겨울 축제장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논산 농업의 폭과 깊이를 체감하게 되는 셈이다.
논산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역홍보관도 문을 연다. 논산시 각 실과소와 기관, 단체가 참여해 관광지와 문화자원, 주요 정책과 생활 정보 등을 두루 알린다. 축제장에 잠시 들렀다가, 논산 전역을 여행 코스로 넓혀 떠나는 계기를 만들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산학교류관에서는 건양대학교 홍보관이 운영돼 교육기관과 지역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며, 청년층과 지역사회가 연결되는 창구 같은 역할을 맡는다.
올해 축제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공간은 양촌곶감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크리스마스 관련 소품과 장식품을 판매하는 한편, 재활용 물품 교환행사가 함께 진행된다.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다른 이의 물건과 바꾸는 동안, 물건의 사연이 자연스레 오가고 작은 대화가 이어진다. 크리스마스 감성과 나눔, 순환의 가치를 한데 묶어낸 이 마켓은, 겨울밤 축제장을 지역 공동체의 교류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축제의 정서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풍성하게 채운다. 야간에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공식행사로 마련되고, 퍼포먼스와 축하공연이 무대를 채운다. 메인 무대에선 크리스마스 캐럴 쇼가 펼쳐져 관객들이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부르며 한목소리로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캐럴이 양촌리 체육공원 밤하늘에 퍼지면, 사람들은 무대 앞으로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겨울 공기 사이로 온기가 더해지는 장면이 완성된다.
낮 시간대에는 주민이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오전에는 양촌면 주민예술동아리가 준비한 공연이 이어진다. 노래와 연주, 댄스 등 각기 다른 장르의 무대가 순서대로 올라오고, 객석에서는 서로를 응원하는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오후에는 지역 예술인이 참여한 공연이 마련돼 전문 연주와 무대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관객들은 “이런 공연을 집 근처에서 보게 될 줄 몰랐다”고 느끼며 지역 문화의 저력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을 겨냥한 포토존도 세심하게 준비됐다. 곶감 장식으로 꾸민 대형 크리스마스 양촌곶감 트리는 축제장의 대표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주황빛 곶감이 층층이 매달린 트리 앞에서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차례대로 서서 사진을 찍고, 이 사진들이 SNS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논산 양촌리의 겨울 풍경이 온라인 공간에 누적된다.
양촌 곶감 덕장 포토존은 전통 덕장을 재현해 햇볕과 바람 속에서 말려지던 곶감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덕장 사이를 거닐며 주황빛이 농익어 가는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보면, 선조들의 지혜와 손길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문다. 농산물 브랜드를 활용한 육군병장 캐릭터 포토존도 더해져 아이들에게는 장난치고 놀 수 있는 유쾌한 공간이 된다.
가족 단위 방문객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하는 건 체험 프로그램이다. 크리스마스 곶감 트리 만들기 체험에서는 작은 곶감과 장식 재료를 이용해 나만의 미니 트리를 만든다. 아이들은 곶감을 하나씩 달아보며 “먹는 것”이 “꾸미는 것”으로 변하는 과정을 배운다. 부모는 곁에서 모양을 함께 고르며 오랜만에 집중해서 손을 움직이고, 자연스럽게 대화도 길어진다. 완성된 미니 트리는 집으로 가져가 겨울 내내 장식이 되고, 양촌리에서 보낸 하루의 기억을 조용히 떠올리게 한다.
크리스마스 카드 쓰기 체험존에서는 손편지가 다시 돌아온다. 준비된 엽서와 펜을 집어 든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평소 말로 꺼내기 어색했던 마음이 한 줄 한 줄 카드 위에 내려앉는다. 화려한 인쇄물 대신 손글씨로 적힌 문장은, 연말이 주는 특유의 정서를 더 깊게 만든다. “이 카드만큼은 직접 쓰고 싶었다”는 고백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이제 감이 오나?’라는 이름의 미션 체험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색과 향, 식감, 모양 같은 오감을 활용한 미션을 수행하며 곶감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은 놀이처럼 미션을 해결하며 곶감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어른들은 “생각보다 품질과 특징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미션을 하나씩 깨나갈 때마다 가족의 웃음이 터져 나오고, 곶감이 천천히 익어가듯이 경험도 차곡차곡 쌓인다.
곶감 놀이공원에서는 캐럴 음악과 놀이기구가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고 연신 환호를 쏟아낸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보호자들은 따뜻한 음료를 손에 쥔 채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체험과 놀이, 휴식이 한데 섞여 축제장을 작은 마을처럼 느끼게 하고, 방문객의 머무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겨울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먹거리도 풍성하게 준비됐다. 양촌 주민이 운영하는 향토음식점에서는 지역의 전통 음식을 선보이며 논산의 식문화를 설명해준다. 논산 5품 디저트 카페에는 논산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디저트가 마련돼 아이와 어른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만나게 된다. “달콤하지만 무겁지 않은 간식”을 찾는 이들을 겨냥한 구성이다.
곶감 레스토랑에서는 곶감을 활용한 겨울 메뉴를 선보이며, 곶감이 단순한 후식이 아니라 한 끼 식사 속 재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장작불 향이 솔솔 번지는 바비큐 존에서는 구워지는 고기 냄새가 발길을 잡아 끌고, 푸드트럭에서는 친숙한 길거리 음식이 줄지어 서 방문객의 선택 폭을 넓힌다. 먹거리가 마련된 공간은 따뜻한 온기와 함께 사람들의 대화와 웃음이 모이는 또 하나의 무대로 기능한다.
이런 변화는 지역의 기대에서도 읽힌다. 논산시는 ‘논산양촌곶감축제’를 통해 지역 농가에는 안정적인 판로와 홍보의 기회를, 예술인과 주민들에게는 재능을 나누는 무대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체험, 공연, 포토존, 먹거리를 결합한 체류형 축제 구성을 통해 관광객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축제장을 거점 삼아 논산 전역으로 발길을 넓히는 관광 자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담았다.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축제는 익숙한 곶감 한 알에 새로운 기억을 더하는 장치가 된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물러나 주황빛 조명 아래 서로의 얼굴을 다시 마주 보는 시간, 손편지 한 장과 작은 곶감 트리 하나가 겨울을 기억하는 방식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양촌리 체육공원에 켜지는 주황빛 곶감의 풍경은 달콤한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위로로 남을지 모른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