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포트 길들이기”로 미세플라스틱 줄여야 한다
전기포트 소재와 사용 습관이 미세플라스틱 노출 수준을 좌우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새 전기포트를 일정 횟수 이상 반복 가열해 이른바 길들이기 과정을 거치면 물속 미세플라스틱이 크게 줄어든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전기포트는 일상생활에서 상시 사용하는 소형 가전인 만큼, 재질 선택과 초기 사용 단계의 관리가 생활환경 보건의 새로운 변수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 결과가 향후 생활용품 안전 기준 보완과 친환경 소재 전환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유리 재질 전기포트 11종을 대상으로 최대 200회까지 물을 끓이고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물속 미세플라스틱을 계량 분석했다고 14일 밝혔다. 미세플라스틱은 지름 5밀리미터 이하의 고체 플라스틱 조각을 의미하며, 크기가 작을수록 체내 침투 가능성이 높아 암이나 치매 등 만성 질환과 연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연구 결과, 모든 재질에서 공통적으로 사용 횟수가 늘어날수록 미세플라스틱 검출량이 크게 줄어드는 경향이 확인됐다. 초기 사용 단계에서 가장 많이 검출되지만, 약 10회 정도 물을 끓인 뒤 버리는 과정을 반복하면 발생량이 절반 수준까지 낮아졌다. 30회 사용 시점에는 초기 대비 약 4분의 1로 감소했고, 100회 이상 사용했을 때는 초기의 10퍼센트 미만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재 표면에 남아 있던 제조 공정 잔류물과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초기 사용 과정에서 상당 부분 씻겨 나간 결과로 해석된다.
200회 이상 장기간 사용한 경우에도 완전한 무검출 상태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대부분 제품에서 물 1리터당 10개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돼, 통상적인 먹는 물에서 보고되는 수준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농도라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원이 참고한 기존 조사에서 먹는 물의 미세플라스틱 검출량은 리터당 0.3개에서 315개 범위로 보고돼 있다. 장기간 사용 전기포트에서의 검출량은 이 범위의 하단에 가까운 수준에 머문 셈이다.
재질별 차이도 분명했다. 플라스틱 전기포트에서 평균 미세플라스틱 발생량이 가장 높게 나왔다. 물 1리터 기준 평균 검출 개수는 플라스틱 제품이 120.7개, 스테인리스가 103.7개, 유리가 69.2개였다. 스테인리스와 유리 제품은 가열부와 내벽이 금속 또는 유리 재질이지만, 손잡이, 뚜껑, 거름망 등 물과 접촉하는 부위에 일부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완전한 무플라스틱 구조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특히 플라스틱 전기포트에서는 폴리에틸렌 입자가 주로 검출됐다. 폴리에틸렌은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범용 플라스틱이지만, 이번 분석에서 50마이크로미터 이하 초미세 크기의 입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크기가 작을수록 소화기관이나 혈액, 장기 조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물리적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건강 영향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아직 인체 영향 연구는 진행 중이지만, 축적 노출을 줄이기 위한 생활습관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연구원은 소비자들이 새 전기포트를 구입할 경우 미세플라스틱 노출을 줄이기 위한 실천 지침도 제시했다. 우선 최소 10회 이상 물을 최대 수위까지 채운 뒤 끓이고 버리는 길들이기 과정을 거칠 것을 권고했다. 초기 고농도 구간을 짧게 통과해 장기간 사용 단계의 낮은 검출 수준으로 빠르게 진입하자는 취지다. 또한 물을 끓인 직후 곧바로 따르지 말고 잠시 두어 부유물이 가라앉은 뒤 윗물만 따라 사용하는 방식도 입자성 오염물 섭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제품 선택 단계에서는 내열 유리나 스테인리스 재질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물이 직접 닿는 내벽, 바닥, 거름망, 뚜껑 안쪽 등의 부품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한 구조인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 포인트로 꼽힌다. 국내외 생활용품 시장에서 친환경, 무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번 조사 결과는 제조사들에게도 설계 단계에서의 소재 대체와 부품 구조 재검토를 요구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생활용품과 미세플라스틱의 관계는 글로벌 차원에서도 규제와 연구가 동시에 확대되는 분야다. 유럽연합은 세척제, 화장품, 인조잔디 등 직접적인 미세플라스틱 사용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생활용품 전반의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에서도 수돗물, 생수, 식품 포장재를 중심으로 모니터링이 진행돼 왔지만, 전기포트처럼 간접적인 노출원을 겨냥한 공공기관 수준의 실험 공개는 많지 않았다.
이번 결과는 전기포트 안전 기준이나 환경표지 인증 제도에서도 미세플라스틱 방출량을 별도 항목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전기포트는 전기 안전, 내열성, 중금속 용출 등을 중심으로 관리되고 있어, 플라스틱 미세 입자에 대한 정량 기준은 미비한 상태다. 소비자 인식이 높아질수록 미세플라스틱 시험성적서, 저방출 설계, 친환경 소재 인증 등이 새로운 제품 경쟁력 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다.
박주성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원장은 전기포트 사용 습관만으로도 일상 노출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기포트처럼 매일 반복 사용하는 필수 가전은 재질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초기에 충분히 세척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민 생활과 밀접한 제품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와 정보 공개를 이어가 건강한 도시 환경 조성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생활환경에서의 미세플라스틱 문제는 단일 제품이 아닌 누적 노출이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업계와 정책 당국이 설계, 소재, 기준을 동시에 손보는 한편, 소비자들의 작은 사용 습관 변화가 결합될 때 실제 체감 노출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는 전기포트를 비롯한 생활가전에서 미세플라스틱 방출 저감 기술과 소재 혁신이 향후 브랜드 신뢰도와 건강 이미지를 좌우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