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의원 지역구 예산 줄줄이 증액"…여야, 5년 만의 합의 처리에 쪽지예산 논란
여야 합의로 처리된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국회가 다시 쪽지예산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 총액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여야 원내지도부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핵심 인사 지역구에는 신규 사업과 증액 사업이 상당 부분 반영된 사실이 3일 드러났다. 주요 사업 예산을 놓고 정면 충돌했던 것과 달리, 정작 자기 지역구 예산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를 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예산안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에서 사자암 불교전통문화관 건립 예산 2억원을 증액했다. 문화·관광 인프라 확충 명목이지만, 여당과의 협상 주축인 원내대표 지역 사업이라는 점에서 이해충돌 소지가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의 지역구인 충남 천안에서는 도로·산단 예산이 늘었다. 천안에코밸리산단진입도로에 18억원, 천안 동면에서 충북 진천을 잇는 국도 건설에 50억원이 증액됐다. 지역 개발 필요성이 거론돼 온 사업이지만, 국회 막판 증액 과정에서 결정됐다는 점이 쟁점이 되고 있다.
예결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의 지역구 전북 익산에서는 다수의 생활 SOC와 문화사업 예산이 추가됐다. 용안면 동지산리 가축분뇨 공공 처리시설 설치에 14억원, 익산역 확장 및 선상 주차장 조성에 10억원, 군경묘지 정비 5억5천만원, 익산박물관 특별전 4억1천800만원 등이 반영됐다. 예산 배분을 총괄하는 예결위원장 지역에 예산이 몰렸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뒤따른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 지역구인 경기 과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운영 등 예산이 71억6천만원, 과천청사 중장기 개선방안 연구용역 예산이 3억원 증액됐다. 정부청사와 국가 문화시설이 밀집한 특성을 감안한 조정이란 설명이 나오는 반면, 예결위 여당 간사 역할을 고려할 때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의 지역구인 충남에서는 인공지능 관련 사업이 새로운 특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충남권 AX 대전환 사업기획비 10억원, 지역주도형 AI 대전환 사업 예산 140억원 등 AI 관련 예산 150억원이 당초 0원에서 대폭 증액됐다. 디지털 전환 전략에 부합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특정 인사의 지역에 맞춰 신규 국비가 집중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지역구로 둔 대전 유성구갑에서는 교통·교육 사업 예산이 늘었다. 호남고속도로 서대전 원내동에서 회덕 전민동 구간 확장을 위한 기본 설계 비용 23억4천100만원, 대전 청소년 미래 우주인재교육 사업 9억5천만원 등 약 41억원이 증액됐다. 과학도시 이미지에 걸맞은 인프라라는 평가와 함께, 당 사무총장 지역구 예산이 과도하게 늘었다는 비판이 교차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경북 김천에서는 교통·환경 예산이 크게 늘었다. 양천에서 대항을 잇는 국도 대체 우회도로 착공에 10억원, 직지사 대웅전 주변 정비에 2억2천500만원, 노후정수장 정비에 9억5천900만원, 문경에서 김천을 잇는 철도 건설에 30억원 등이 증액됐다. 여야 협상을 이끈 원내대표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의 지역구인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에서는 수질·도로·농업용수 관련 예산이 추가됐다. 평창 도암호 유역 비점오염저감시설 확충에 81억8천300만원, 평창 노동에서 홍천 자운을 잇는 국도 건설에 5억원, 홍천 자운지구 다목적 농촌 용수개발에 3억원이 증액됐다. 지역 환경·농업 기반 개선이라는 명분에도, 여당 협상 핵심 인사의 지역에 대규모 국비가 투입됐다는 지적이 따라붙는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의 지역구인 부산 강서구에서는 국가기관 인프라와 하천 정비 사업이 강화됐다. 국회부산도서관 소방 안전시설전 개선 예산 24억3천만원, 부산 낙동강 하굿둑 상류 대저수문 등 개선사업 예산 30억원 등이 늘었다. 당 정책 방향을 총괄하는 정책위의장 지역구에 공공시설 예산이 집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박형수 예결위 간사가 지역구로 둔 경북 의성에서는 국도 5호선 보행자통행로 시설 개선 예산 10억원이 증액됐다. 교통안전 사업이라는 점에서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평가와 함께, 예결위 간사 지역 사업이 협상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얻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지역구인 충남 보령·서천에서는 환경·지역개발 예산이 늘어났다. 보령시 관창일반산업단지 노후 폐수관로 정비에 1억8천만원, 서천 주항지구 사업비 5억원 등이 증액됐다. 지역 숙원 사업이라는 설명에도, 당 대표급 인사 주변 지역 챙기기라는 비판이 맞붙는다.
국민의힘 정희용 사무총장이 지역구로 둔 경북 고령·성주·칠곡에서는 공원·관광·하천 정비 사업이 추가됐다. 칠곡군 북삼 인평공원 조성 예산 10억원, 성주군 가야산국립공원 법전리주차장 조성 예산 15억원, 낙동강 왜관제방 확장 예산 5억원 등이 증액됐다. 국민의힘 강명구 조직부총장의 지역구인 경북 구미을에서도 구미 수요확대형 배터리 테스트베드 구축 예산 30억원, 구미에서 군위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사업 타당성 조사 예산 25억2천400만원이 늘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야가 총액 조정과 주요 정책 항목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동안, 실세 의원 지역구 사업은 조용히 늘어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일부 의원실은 지역 균형발전과 환경·안전·미래 산업 기반을 위한 불가피한 조정이었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쪽지예산 논란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 요구에 직면할 전망이다. 국회는 내년 회기에서 예산 심사 과정의 투명성과 이해충돌 방지 장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놓고 본격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