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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성분 뺀 장줄기세포 배양기술…KAIST, 재생의학 패러다임 전환 예고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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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유래 성분 없이도 인간 장 줄기세포를 안정적으로 키우는 합성 배양기술이 개발되면서 재생의학과 줄기세포 치료제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지 관심이 모인다. 장 질환 환자 본인 세포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는 거부반응이 적어 잠재력이 크지만, 지금까지는 쥐 세포나 동물 유래 기질에 의존한 배양 방식이 안전성과 규제 측면에서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업계에서는 동물 성분을 제거한 무이종 배양 플랫폼이 상용화될 경우, 세포치료제 제조 공정의 표준이 바뀌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임성갑 교수 연구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태걸 박사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손미영 박사팀과 공동으로 무이종 환경에서 장 줄기세포의 이동과 재생능력을 크게 끌어올리는 고분자 기반 배양 플랫폼 PLUS를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PLUS는 Polymer-coated Ultra-stable Surface의 약자로, 동물 유래 성분을 쓰지 않고도 인간 장 줄기세포를 대량 배양할 수 있는 합성 표면 기술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26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장 줄기세포는 장 상피의 손상을 복구하는 핵심 세포로, 환자 유래 세포를 활용할 경우 자가 이식 형태의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난치성 장질환 치료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 널리 사용되는 배양 방식은 쥐에서 유래한 섬유아세포나 매트리젤과 같은 동물 기질에 의존한다. 이런 이종 성분은 잠재적인 바이러스 오염, 알 수 없는 단백질 혼입 위험을 안고 있어 임상 등급 제조 환경인 GMP 기준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번에 개발된 PLUS 표면은 기상증착 방식으로 합성고분자를 균일하게 코팅해 제작했다. 기상증착은 고분자 전구체를 기체 상태로 분사한 뒤 기판 위에서 박막 형태로 중합시키는 기술로, 표면에너지와 화학조성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공정을 통해 장 줄기세포가 잘 달라붙으면서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최적의 표면 특성을 구현했다. 그 결과 기존 동물 유래 코팅 표면과 비교해 세포 부착력과 증식 효율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PLUS의 또 다른 특징은 장기 보관 안정성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PLUS 표면은 상온에서 3년 동안 보관한 후에도 초기와 동일한 수준의 장 줄기세포 배양 성능을 유지했다. 일반적인 단백질 기반 코팅이나 생체유래 기질이 수개월 내 성능 저하를 보이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제조 후 장기간 재고로 비축해도 품질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대량 생산과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연구팀은 단순한 세포 생존율을 넘어 기능적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단백체 분석을 수행했다. 단백체 분석은 세포나 조직 내 존재하는 모든 단백질의 종류와 양 변화를 동시에 측정하는 기법으로, 환경 변화에 따른 세포 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PLUS에서 배양된 장 줄기세포를 분석한 결과, 세포 골격 재구성과 관련된 단백질의 발현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포 골격은 세포 내부에서 구조를 지탱하고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미세섬유 네트워크를 뜻한다.  

 

특히 세포 골격 단백질 결합, 액틴 결합 단백질의 발현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액틴은 세포 형태 유지와 이동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구조 단백질로, 이 단백질이 결합하는 단백질들의 발현이 늘어나면 세포 내부 구조가 더 탄탄하게 재편된다. 연구팀은 이 같은 단백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PLUS 환경에서 배양된 장 줄기세포가 기판 위에서 보다 빠르고 활발하게 이동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을 확보한 것으로 해석했다.  

 

세포 수준 관찰도 뒤따랐다. 연구팀은 홀로토모그래피 현미경을 활용해 장 줄기세포의 이동을 실시간 추적했다. 홀로토모그래피 현미경은 세포를 염색하지 않고도 3차원 굴절률 정보를 이용해 내부 구조와 움직임을 관찰하는 영상기술이다. 관찰 결과 PLUS 표면 위의 장 줄기세포는 기존 배양 표면과 비교해 이동 속도가 약 2배 빨랐다. 세포 간 상호작용과 조직 재구성이 필요한 재생 과정에서 이동 속도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손상 조직 모델 실험에서도 우수성이 입증됐다. 연구팀이 인위적으로 손상시킨 장 조직 모델에서 PLUS 배양 장 줄기세포의 재생 성능을 시험한 결과, 약 일주일 만에 손상 부위의 절반 이상이 복구됐다. 기존 동물 유래 표면에서 배양한 세포와 비교해 빠르고 광범위한 재생 양상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가 PLUS가 단순히 세포를 많이 늘리는 수준을 넘어, 실제 조직 복원 능력까지 끌어올린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PLUS 배양 플랫폼은 인간 만능줄기세포에서 유도한 장 줄기세포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인간 만능줄기세포는 이론적으로 신체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로, 대량 생산과 표준화가 가능해 세포치료제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진은 PLUS가 인간 만능줄기세포 유래 장 줄기세포의 안전한 대량 배양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물 성분이 배제된 합성 표면이기 때문에 식약처나 FDA 등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무이종·무병원체 기준을 충족하는 임상용 제품 개발에도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무이종 줄기세포 배양 기술 확보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의 바이오기업들은 합성기질, 재조합 단백질 기반 코팅 등을 활용해 동물 유래 매트리젤 대체재를 앞다퉈 개발 중이다. 다만 단백질 기반 대체재는 제조 비용이 높고, 장기 보관 안정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분자 기반 PLUS는 상대적으로 저비용 대량 생산과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 기술 상용화 단계에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에서는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사가 늘고 있지만, 임상용 세포 생산 공정을 둘러싼 규제와 안전성 이슈가 상용화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특히 이종 성분을 사용하는 배양 공정은 임상시험 허가와 품목 허가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논쟁을 낳았다. 무이종 환경에서 재현성이 높은 세포를 생산할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향후 임상시험용 세포 제조 기준과 공정 표준에 변화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임성갑 KAIST 교수는 이번 성과에 대해 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 적용을 막아온 이종 성분 의존 문제를 해소하고, 줄기세포의 이동과 재생능력을 극대화하는 합성 배양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PLUS 기술이 재생의학 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계는 PLUS가 실제 임상용 세포 생산 라인에 적용돼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후속 검증과 기술이전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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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plus배양플랫폼#장줄기세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