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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파장·밝기 분리 제어” UNIST, 초소형 메타표면 소자…양자광원 혁신 신호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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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파장과 세기를 서로 간섭 없이 제어하는 모래알 크기의 초소형 광소자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양자광원과 차세대 광신호 처리 기술 경쟁 구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 연구팀이 선보인 메타표면 칩은 제2고조파 생성 과정에서 파장과 세기를 완전히 분리해 조절하는 구조를 구현해, 기존 대형 광학 부품으로는 구현이 어려웠던 집적형 양자 광원과 초소형 광변조기의 설계 자유도를 크게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양자통신과 정밀 바이오 센싱 분야에서 소형·저전력 광소자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번 결과가 관련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UNIST 전기전자공학과 이종원 교수 연구팀은 빛의 세기와 파장을 각각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의 메타표면 소자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고 16일 밝혔다. 메타표면은 빛의 파장보다 훨씬 작은 나노 구조물을 평면에 배열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빛의 진행 방향, 위상, 세기, 파장 등을 바꾸는 인공 구조체다. 기존에는 상용 광변조에 부피가 큰 결정 매질이나 굴절률 가변 소재를 사용해왔지만, 메타표면은 나노 패터닝만으로 동일 기능을 구현해 액티브 광소자의 경량화와 집적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광집적 회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연구팀이 이번에 제어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제2고조파 생성 현상이다. 제2고조파 생성은 특정 비선형 광학 매질에 기본 파장의 빛을 입력했을 때, 그 에너지가 두 배로 증폭돼 파장이 절반인 새로운 빛이 나오는 비선형 광학 효과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적외선 영역의 펄스 레이저를 넣으면 가시광이나 근적외선 등 다른 파장을 가진 빛으로 변환해 출력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미량의 생체 분자를 감지하는 고감도 센서, 높은 보안성이 필요한 양자 암호 통신용 광원, 파장 변환 레이저 등 다양한 정밀 광학 장비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비선형 메타표면 구조에서는 제2고조파의 출력 파장과 세기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특정 응용 분야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정밀하게 맞추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메타표면 내부에서 빛이 경험하는 물리 과정을 생성 단계와 방출 단계로 분리하는 새로운 설계 전략을 도입했다. 구체적으로는 입력 빛이 소자 내부에서 국소적으로 강하게 모여 제2고조파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로컬 모드가 담당하도록 설계하고, 이렇게 생성된 제2고조파가 칩 표면을 따라 확산되며 밖으로 방출되는 과정은 논로컬 모드가 책임지도록 구조를 나눴다. 연구팀은 로컬 모드와 논로컬 모드가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이 구조를 로컬-투-논로컬 방식으로 정의하고, 두 모드를 각각 다른 외부 제어 변수에 연동해 파장과 세기를 분리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메타표면 소자는 두 개의 독립된 조절 채널을 갖게 된다. 먼저 칩에 인가하는 전압 크기를 조절하면, 메타표면 나노 구조 주변의 전기장 분포가 바뀌면서 로컬 모드에서의 빛 집중 정도가 변한다. 이 과정은 제2고조파 생성 효율, 즉 출력 세기에만 거의 영향을 주기 때문에, 파장은 그대로 둔 채 세기만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반대로 입사하는 레이저 빛의 각도를 정밀하게 바꾸면, 논로컬 모드를 따라 전파되는 제2고조파의 위상 조건과 간섭 패턴이 달라져 출력되는 빛의 파장이 이동하게 된다. 이때는 세기 손실을 최소화한 채 파장만 조정하는 것이 가능해, 한 칩에서 파장과 세기를 완전히 독립된 설계 변수로 다룰 수 있는 구조가 구현된 셈이다.

 

이종원 교수는 기존 비선형 메타표면 연구들은 국소적으로 빛을 강하게 가두는 로컬 모드 혹은 소자 전 영역에 걸쳐 에너지가 퍼지는 논로컬 모드 가운데 한 방식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 가지 모드에만 의존할 경우, 고효율을 얻으려면 세기와 파장 조절 자유도를 희생해야 하고, 반대로 조절성을 높이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딜레마가 있었다. 이 교수는 두 모드를 결합한 로컬-투-논로컬 설계는 이 상충 관계를 완화해 효율과 제어 능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파장과 세기를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제2고조파 메타표면은 여러 응용 분야에서 활용 폭이 넓다. 양자 정보통신에서는 얽힘 광자를 만들 때 두 광자의 파장 스펙트럼을 정밀하게 맞춰야 하며, 이를 위해 광원 파장과 출력을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동형 광원이 요구된다. 이번 메타표면 구조는 소형 칩 형태로 양자 얽힘 광원의 파장 스펙트럼을 실시간 조정할 수 있어, 양자키분배 장치나 양자 중계기 내부 모듈의 집적도를 높이고 시스템 구성을 단순화할 수 있다. 또한, 특정 분자의 고유 흡수 대역에 정확히 맞춘 파장을 필요로 하는 바이오 센서나 라만 분광 시스템에서도, 센서 대상에 따라 파장은 계속 바꾸되 출력 세기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수요가 있어 메타표면 기반 파장 변환 소자의 상용화 가능성이 주목된다.

 

기존 광신호 처리 장치와 비교했을 때도 경쟁 포인트는 명확하다. 현재 고성능 파장 변환이나 강도 변조에는 주로 벌크 결정, 광섬유 비선형 소자, 전기광학 변조기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장치는 부피가 크고, 외부 공진기나 정밀 정렬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모바일이나 웨어러블 디바이스, 의료용 핸드헬드 진단기기 같은 초소형 플랫폼에 탑재하기 어렵다. 반면 메타표면 광소자는 반도체 공정과 유사한 나노 패터닝 기술로 웨이퍼 단위 제작이 가능해, 실리콘 포토닉스 칩이나 CMOS 이미저 위에 직접 집적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메타표면 기반 비선형 광소자가 상용 공정에 안착할 경우, 초소형 라이다, 온칩 스펙트로미터, 광컴퓨팅용 연산 소자 등으로 응용 영역이 확장될 것으로 본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도 비선형 메타표면과 메타광학 분야는 미국, 유럽, 중국을 중심으로 기술 확보 경쟁이 치열한 영역이다. 미국과 유럽 연구기관은 실리카나 질화갈륨 기반 메타표면을 이용한 고효율 제2고조파 생성, 편광·위상 동시 제어 기술을 앞세워 초고속 광통신과 양자광학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도 실리콘 나이트라이드, 리튬 나이오베이트 기반 집적형 비선형 칩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어, 글로벌 메타표면 비선형 광학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특허 경쟁이 가속되는 분위기다. UNIST 연구팀의 로컬-투-논로컬 설계는 기존 연구에서 거의 시도되지 않은 제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국제 학계와 산업계에서 후속 연구와 기술 이전 협력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책·제도 측면에서는 아직 메타표면 기반 광소자를 직접 겨냥한 규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응용 분야에 따라 상당한 규제 검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양자통신 인프라용 광원 모듈에 적용될 경우 국가 정보통신망 보안 체계와 연계해 표준화와 인증 절차가 요구될 수 있다. 바이오 센싱이나 의료 진단 장비에 들어갈 경우에는 의료기기 인허가, 전자파 적합성, 안전성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최근 양자기술, 정밀의료, 차세대 반도체를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메타표면 기반 능동 광소자 기술 또한 중장기 로드맵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종원 교수는 새 메타표면 칩이 양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어하고, 양자 통신의 핵심인 얽힘 광자의 파장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능동형 양자 광원 기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초소형 소자 하나로 파장과 세기 조절 기능을 모두 통합할 수 있어, 지금까지 별도 모듈로 분리됐던 스펙트럼 엔진과 출력 제어기를 단일 칩으로 통합하는 방향의 시스템 혁신도 가능해질 수 있다. 업계와 학계는 UNIST 연구팀의 결과가 메타표면을 이용한 비선형 광학 설계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 출발점이 될지, 그리고 이런 초소형 광소자가 실제 양자통신 네트워크와 정밀 바이오 진단 장비에 언제쯤 본격적으로 채택될지 주시하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11월 29일 자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정보통신기획평가원과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산업계에서는 후속 연구를 통해 양산 공정 호환성과 장기 신뢰성 검증이 이뤄질 경우, 메타표면 기반 능동 광소자 시장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기술과 산업, 제도가 맞물리는 속도에 따라 차세대 광정보 처리와 양자통신 생태계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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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이종원교수#메타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