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뇌사 장기기증으로 새 삶을”…67세 기증자, 생명 나눔 의미 확산

조수빈 기자
입력

뇌사 장기기증이 고령화 시대 의료 현장과 생명 윤리 논의를 동시에 바꾸고 있다. 평소 이웃을 먼저 챙기던 60대 여성이 삶의 마지막 순간 장기기증을 선택해 3명에게 새 생명을 건넸다. 의료계에서는 고령 기증자의 사례가 늘어날수록 장기 부족 문제 해소와 함께 생명 나눔 문화 확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이번 사례가 국내 장기이식 시스템과 기증 인식 제고에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0월 20일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 67세 기증자 오영선 씨가 뇌사 장기기증을 통해 3명의 생명을 살리고 숨을 거뒀다고 16일 밝혔다. 오 씨는 10월 12일 자택에서 쓰러진 채 가족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의료진의 정밀 검사와 관찰을 거쳐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후 유가족이 장기기증에 동의함에 따라 간과 양측 신장이 이식 대기자에게 전달됐고, 각 장기는 이식 적합성 검사를 거쳐 수혜자에게 수술이 진행됐다.  

뇌사 장기기증은 뇌 기능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소실돼 법적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가 인공호흡기 등 장비를 통해 심장 박동을 유지하는 사이, 의학적으로 사용 가능한 장기를 적출해 이식하는 방식을 뜻한다. 장기이식이 가능한 시간은 뇌사 판정 후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 안팎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기증 동의, 수혜자 선정, 이송과 수술 준비 등 절차가 긴밀한 협업 속에 진행된다. 특히 간과 신장은 국내에서 이식 수요가 가장 많은 장기에 속해, 고령 기증자라 하더라도 상태가 양호할 경우 의학적 평가를 거쳐 이식에 활용된다.  

 

가족들은 오 씨가 평소 어려운 이웃을 보면 먼저 손을 내미는 성격이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남을 돕는 선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부산에서 2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난 오 씨는 성실하고 밝은 성격으로 주변을 도왔고, 노래와 뜨개질을 즐기며 손수 음식을 만들어 이웃에게 나누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오랜 시간 일상에서 이어온 나눔이 삶의 끝에서도 생명 나눔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동생 오영애 씨는 언니가 어려운 사람을 돕기를 좋아했다며,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까지 남을 위해 살다 떠난 언니의 선택이 언니에게도 행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나라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모두 하며 지내길 바란다는 애틋한 메시지도 남겼다. 유가족의 이런 태도는 국내 장기기증 인식 전환 과정에서 가족 동의가 얼마나 중요한 변수인지 다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이번 기증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삼열 원장은 기증자와 유가족의 결단 덕분에 소중한 생명이 이어졌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 남을 돕기 위해 살아온 기증자의 삶과 유가족의 선택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식 대기 환자 지원과 기증자 추모 사업 등에서 기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장기이식 대기자가 기증자보다 훨씬 많아 상당수 환자가 이식 기회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다. 특히 만성 신부전, 간경변 등으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고령층이 많지만, 실제 기증은 젊은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의료계에서는 60대 이상 장기기증이 꾸준히 이뤄져야 장기 부족 문제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 기증의 경우에도 장기 상태가 양호하다면 충분한 검사와 평가를 거쳐 안전한 이식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혈관 상태, 장기 기능, 기저 질환 등을 정밀 분석해 이식 적합성을 판단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병원 이식팀이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협업한다. 특히 간과 신장은 조직 재생 능력이 일정 수준 보장되고, 이식 후 환자 관리 체계도 축적돼 있어 고령 기증 장기라도 수혜자에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치료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해외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뇌사 장기기증이 장기이식 시스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제도의 정비와 기증 인식 개선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가족 동의 부담, 종교적 이유, 장기기증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충분한 기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특히 뇌사 판정과 장기 적출 과정이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객관적 정보가 적어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개별 기증 사례가 사회적으로 꾸준히 알려지고, 공공기관과 의료기관이 절차와 안전성, 윤리 기준을 투명하게 설명할수록 기증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기증자와 유가족을 위한 심리 지원, 추모 프로그램, 제도적 예우 등이 강화될 때 장기기증이 개인의 숭고한 선택을 넘어 사회적 연대로 확장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례는 한 사람의 선택이 세 명의 생명을 구한 동시에, 장기기증 제도와 생명 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다시 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정밀의료와 이식 기술이 발전할수록 장기이식의 치료 효과는 높아지겠지만, 실제 환자를 살리는 힘은 결국 기증자와 가족의 결단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생명 나눔을 선택한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커질수록, 장기이식 체계 역시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조수빈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한국장기조직기증원#오영선#장기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