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 숨는 영아폐렴"…WHO, 빠른 호흡수 주목해야
영아기 폐렴이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없이도 치명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생후 24개월 미만 영아는 면역 체계와 호흡기 구조가 미성숙해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이 빠르게 폐렴으로 번지지만, 고열·심한 기침 같은 전형적인 신호가 뚜렷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세계보건기구 WHO와 각국 소아감염학회는 호흡수와 전신 상태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조기 진단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업계에서는 최신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를 활용해 가정에서도 호흡 패턴을 정량적으로 모니터링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16개월 된 영아가 폐렴으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사례가 현지 매체를 통해 알려지며 영아 폐렴의 위험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이는 어린이집 등원 이후 잦은 감기와 바이러스 감염을 겪었지만, 부모는 또래 적응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으로 여겼다. 사망 하루 전에도 다소 피곤해 보인 것 외에는 기침, 호흡 곤란, 고열 등 중증을 의심할 만한 징후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밤사이 가슴에서 평소와 다른 호흡음이 들렸지만, 이튿날 새벽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발견됐다. 사후 검사 결과 폐렴이 진행 중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폐렴은 세균, 바이러스, 드물게는 곰팡이 감염에 의해 폐포와 세기관지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성인에서는 흉부 통증, 농성 가래, 고열, 심한 기침, 호흡 곤란 등 다발성 증상이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반면 영아는 스스로 증상을 호소할 수 없고, 기도 직경이 좁아 조금만 붓거나 분비물이 늘어나도 산소 교환에 차질이 생긴다. 체온 조절 능력도 미숙해 고열 대신 미열 또는 평소와 비슷한 체온을 유지한 채 저산소증이 진행될 수 있다. 소아감염학계는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영아 폐렴은 보호자가 놓치기 쉬운 비특이적 신호로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세계보건기구는 호흡수 측정이 영유아 폐렴 선별의 가장 기본 도구라고 제시한다. WHO 기준에 따르면 생후 2개월에서 11개월 영아가 분당 50회 이상, 1세에서 5세 미만 아동이 분당 40회 이상 숨을 쉬면 폐렴 가능성을 우선 의심해야 한다. 여기에는 수유량 감소, 활동성 저하, 창백하거나 푸르게 변하는 입술과 손발, 콧구멍이 퍼덕이는 비익 호흡, 갈비뼈 사이가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흉벽 함몰 등이 동반될 때 위험 신호로 평가한다. 다만 이러한 기준은 현장에서의 1차 선별 도구라는 점에서, 실제 임상에서는 산소포화도 측정과 흉부 엑스레이, 혈액검사 등을 통해 중증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보호자가 일상적인 감기 증상이라도 아이의 행동 변화와 호흡 양상을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평소보다 숨을 빠르게 몰아쉬거나, 수유 중 숨이 차서 자주 멈추고, 이유 없이 보채거나 축 늘어진 상태가 지속되면 주말이나 야간이라도 소아과 진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선천성 심질환, 만성 폐질환, 조산으로 인한 폐 성숙 지연, 면역 결핍 질환을 가진 영아는 경증 감염에서도 폐렴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아 더욱 낮은 문턱의 의료 접근이 필요하다고 소아과계는 설명한다.
최근에는 가정용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영아 호흡 패턴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가슴이나 복부에 부착하는 웨어러블 센서, 매트리스 아래에 두는 압력 센서, 스마트 카메라 기반 호흡 감지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기는 분당 호흡수, 수면 자세 변화, 심박수 이상 패턴을 자동으로 분석해 부모의 스마트폰에 알림을 보내는 구조다. 일부 솔루션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도입해 평소 데이터와 비교해 급격한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다만 의료기기 규제 기관은 영유아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허위 경보, 데이터 오판 등 위험성을 엄격하게 검증하는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
영아 폐렴 예방 측면에서는 기초 예방접종이 가장 중요한 방어 수단으로 꼽힌다. 폐렴구균, 인플루엔자, 백일해 등을 포함한 국가예방접종은 폐렴 합병증과 중환자실 입원률을 유의미하게 줄여온 것으로 보고된다. 더불어 가정 내 흡연 차단, 실내 공기질 관리, 적절한 수유와 영양 공급, 호흡기 감염 유행 시 군집 환경 노출을 최소화하는 생활습관도 감염 위험을 낮추는 요소로 평가된다. 보건당국과 소아과 학계는 계절성 호흡기 바이러스가 급증하는 시기에 영아가 어린이집과 병원을 오가며 교차 감염에 노출되는 구조를 줄이는 것이 정책 차원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서는 원격 모니터링 기반 소아 호흡기 관리 서비스가 시험 도입되는 추세다. 일부 국가의 의료기관은 만성 호흡기 질환을 가진 영유아를 대상으로 가정용 산소포화도·호흡수 측정기를 지급하고, 모바일 앱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소아 전문 간호사가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비대면으로도 호흡 악화를 조기 포착해 응급실 방문 전 단계에서 대응하려는 목적이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전송 오류, 의료 책임 범위 등 제도적 쟁점이 여전히 논의 중이라 대규모 상용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소아 호흡기 전문의들은 부모가 의료정보를 검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은 변화라도 평소와 다르다고 느낄 때 적극적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의료진이 보호자에게 영아 호흡수 측정법과 위험 신호를 구체적으로 교육하고, 디지털 모니터링 기기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안내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와 의료계는 영아 폐렴이 조기 진단과 예방 전략만 제대로 갖춰지면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는 질환인 만큼, 기술과 제도, 보호자 인식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소아 호흡기 안전을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개발과 규제 정비의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