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웨어러블은 중국이 우위”…중국, 스마트 안경 공세로 미중 기술 경쟁 새 국면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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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9일, 미국(USA) 경제 매체 CNBC는 중국(China)에서 인공지능(AI) 스마트 안경을 비롯한 AI 웨어러블 기기가 대거 쏟아지며 관련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동향은 미국과 중국 간 첨단 기술 경쟁 구도가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기기 주도 국면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망과 맞물려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스마트 안경 분야는 처음에 미국 메타플랫폼이 시장을 열었지만, 현재 중국 내에서만 70곳이 넘는 업체가 경쟁 제품을 내놓으며 시장 구도가 다극화되는 양상이다. CNBC는 메타가 선도하던 영역에 중국 기업들이 본격 진입하면서 가격 경쟁과 제품 다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AI 웨어러블 시장 급성장…스마트 안경 업체만 70여곳
중국 AI 웨어러블 시장 급성장…스마트 안경 업체만 70여곳

중국 대표 기술 기업 알리바바(Alibaba)는 지난달 말 자국 시장에 AI 스마트 안경 ‘쿼크 AI’ 표준형 S1을 출시하고 판매에 들어갔다. 기본 가격은 3천799위안으로 책정됐으며, 알리바바가 자체 개발한 AI 챗봇 ‘큐원’과 디스플레이 기능을 탑재했다. 알리바바는 같은 제품군의 저가형 모델 ‘G1’도 함께 선보였고, 이 모델의 시작 가격은 1천899위안 수준이다.

 

이에 앞서 스마트 안경 시장을 이끌어온 메타플랫폼은 지난 9월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첫 스마트 안경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를 공개하고 판매에 나섰다. 메타 레이밴 디스플레이의 가격은 799달러부터 시작해, 알리바바 쿼크 AI 시리즈보다 높은 가격대에 형성돼 있다고 CNBC는 전했다. 이 같은 가격 차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대량 생산 능력이 글로벌 스마트 안경 시장의 가격 구조를 흔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 내에서 스마트 안경을 생산하는 업체는 70곳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일부 기업은 이미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글로벌 경쟁을 확대하고 있다. 스마트 안경 제조사 인모(Inmo)와 로키드(Rokid)는 자사 제품을 해외에서 판매하며 고객층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BC는 중국 시장에서 다양한 AI 웨어러블 기기가 대량 공급되고 있어 “중국의 AI 웨어러블 기기 시장은 이미 호황”이라고 평가했다.

 

배경에는 중국의 장기간 제조업 축적이 있다. 보도는 중국이 오랜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하드웨어 역량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과의 첨단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중국 AI 스타트업 01.AI의 리카이푸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쟁력이 “제조업 국가라는 근본적 뿌리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리 CEO는 현재 글로벌 AI 경쟁이 소프트웨어, AI 모델, 에이전트, 애플리케이션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조만간 경쟁의 중심 축이 디바이스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AI 기술을 탑재한 하드웨어 기기가 확산되면 제조 역량이 뛰어난 국가가 새로운 경쟁 국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AI 칩과 클라우드 인프라 중심이던 경쟁이 스마트 안경, 휴대형 AI 기기 등 소비자 단말기 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과 맞닿는다.

 

중국 업체들은 스마트폰을 대체할 차세대 기기로 거론되는 스마트 안경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AI 기기를 잇따라 출시하며 제품 포트폴리오를 넓혀가고 있다. 알리바바는 업무용 메신저 플랫폼 ‘딩톡’을 통해 회의·업무 환경에서 활용하는 AI 디바이스도 공개했다. 신용카드 크기의 이 기기는 대형 회의실 등에서 최대 8m 떨어진 위치의 발표 내용을 녹음한 뒤, 이를 요약·분석해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교육 분야에서도 AI 기반 기기가 등장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중국의 한 교육 스타트업은 영어 실력이 부족한 부모를 주요 고객층으로 겨냥한 AI 번역 기기를 출시했다. 이 기기는 자녀의 영어 학습을 돕도록 설계됐으며, 부모가 영어로 의사소통하거나 학습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가정, 학교, 직장을 포괄하는 다양한 생활·업무 영역에서 AI 기기 보급이 진행되는 셈이다.

 

컨설팅업체 그린케른(Greenkern)의 테크 컨설턴트 톰 판 딜렌은 중국 내 AI 기기 보급 상황과 관련해, 중국 밖에서는 여전히 AI 기기의 미래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AI 기기가 넘쳐나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 시장이 AI 기술을 실제 기기와 서비스에 빠르게 접목하며 상용화 속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국과 글로벌 기업에도 제품 개발 및 가격 전략 조정 압박을 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CNBC는 중국의 하드웨어 우위가 곧바로 글로벌 AI 경쟁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보도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 등이 중국의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하드웨어 경쟁력과는 별개로 데이터 보호와 규제 환경이 국제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스마트 안경과 음성 기록용 디바이스는 영상·음성·위치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할 수 있어 각국 규제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개인정보 보호 규제 강화 기조 속에서 중국산 AI 웨어러블이 어느 정도까지 해외 시장을 파고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강점이지만, 데이터 저장 위치와 접근 권한, 정부의 개입 가능성 등에 대한 의구심이 완화되지 않으면 선진국 시장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국이 제조 강점을 앞세워 AI 웨어러블과 스마트 안경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가운데, 미국과 서방권은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축으로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AI 경쟁의 무게 중심이 실제 기기와 사용자 접점으로 이동하는 조짐을 보이는 만큼, 각국의 규제 정책과 기업들의 전략 변화가 향후 시장 판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국제사회는 중국발 AI 웨어러블 공세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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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알리바바#메타플랫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