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걸어야 비로소 보인다”…수원에서 찾은 고요한 사색의 길
겨울을 앞둔 수원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화성 행궁과 시장을 둘러보는 짧은 코스가 전부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차분한 자연 속을 오래 걷고 머무는 일정이 일상이 됐다. 찬 공기와 낮게 기운 햇살 사이로 도시의 또 다른 표정이 드러난다.
요즘 수원을 찾는 이들은 지도를 펴기 전에 먼저 호수와 숲을 떠올린다. SNS에는 잔잔한 물빛과 앙상한 나뭇가지, 비어 있는 벤치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 연이어 올라온다. “겨울이라서 더 조용해 좋다”는 한 줄의 캡션이 풍경의 분위기를 대신 전해준다.

장안구 송죽동 만석공원은 그런 겨울 수원을 상징하는 장소다. 조선 시대 수원 화성 축조와 함께 농업용 저수지로 쓰이던 만석거를 품고 있어, 이름부터 쌀 1만 석의 기억을 안고 있다. 지금은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난 산책로가 공원을 한 바퀴 감싼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계절, 물 위로 길게 드리운 정자 영화정의 실루엣은 오히려 더 또렷하다. 발걸음을 늦추면 물결과 나뭇가지가 서로 비치는 풍경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자리한 수원미술관에서는 전시를 관람하며 몸을 녹일 수 있어, 자연과 예술을 오가는 코스로 사랑받는다.
겨울 수원에서 숲의 결을 느끼고 싶다면 일월수목원을 향해 가는 이들이 많다. 장안구 천천동에 자리한 이곳은 크고 화려한 시설보다 식물 그 자체에 집중하는 수목원이다. 잎이 진 자리엔 나무의 형태가 드러나고, 상록수와 낙엽수의 대비가 또렷해진다. 안내판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평소 지나치던 수종의 이름과 생태가 눈에 남는다. 탁 트인 지점에서는 도심의 건물들이 멀리 겹쳐 보이는데, 그 사이를 가르는 공기의 온도와 냄새가 확연히 다르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아이와 함께 자연 수업을 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며 겨울에도 이곳을 찾는다.
수원의 겨울 풍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팔달구 매향동 방화수류정이다. 수원화성 동북 모서리를 지키는 누각으로,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용연과 맞닿아 있다. 높지 않은 계단을 오르면 누각 아래로 성곽과 연못이 한눈에 펼쳐진다. 나무가 수척해지는 계절, 오히려 성벽의 선과 기와지붕의 곡선이 또렷해져 건축미가 잘 살아난다. 사람들은 이곳 난간에 기대 잠시 말을 멈춘다. 바람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만이 겨울 오후를 채운다.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을 걷다 보면, 도시 한가운데에서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진다고들 고백한다.
영통구 영통동 영흥수목원은 비교적 조용한 쉼터로 꼽힌다. 체계적으로 관리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구획된 식물 군락이 차례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겨울엔 화려한 개화 대신 줄기와 잎, 열매의 모양이 주인공이 된다. 사진을 찍기보다는 호흡을 고르고 걷는 사람이 많고, 벤치에 앉아 한참을 책장만 넘기는 이들도 눈에 띈다. 수목원 곳곳에 배치된 나무와 구조물이 바람을 적당히 막아줘, 찬 공기 속에서도 오래 머물기 좋다.
이런 변화는 숫자보다 표정에서 먼저 읽힌다. 급하게 코스를 채우기보다, 한 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관광지가 아니라 산책하러 왔다”는 말은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이미 느슨해졌다는 신호처럼 들린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정적 여행의 확산’이라 부른다. 속도를 낮추고, 눈앞의 풍경을 천천히 받아들이려는 시도다. 심리 상담 현장에서도 “멀리 떠나지 못해도,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숲을 찾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고백이 자주 나온다. 도시에 남아 있으면서도 잠시 도시 밖에 있는 듯한 감각을 찾는 것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여름엔 몰랐던 풍경이 겨울에 보였다”, “잎이 떨어지니 물소리가 더 잘 들린다” 같은 글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화려한 계절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소리를 듣고, 구조를 보고, 공간의 숨결을 느끼게 됐다고 적는다. 그러다 보니 겨울 산책은 누구에게나 조용한 성찰의 시간이 된다.
수원의 공원과 수목원, 누각을 잇는 겨울 동선은 크지 않지만, 걷는 이의 마음엔 오래 남는다. 자연과 역사는 제각기 다른 결로 말을 건네지만, 그 메시지는 비슷하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눈앞의 풍경을 한 번 더 바라보라는 것.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