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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 40퍼센트 시대” 온다…제약업계, K바이오 성장동력 꺼질라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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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가격을 대폭 낮추는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에 충격파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전체 의약품 시장의 절반 넘게 차지하는 제네릭을 중심으로 가격을 일괄 인하하는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제약사의 수익 기반이 흔들리며 신약 연구개발과 고용, 원료의약품 공급망까지 연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K바이오가 글로벌 기술 수출 호조를 바탕으로 도약을 노리는 시점에, 정부의 약가 조정 기조가 성장 궤도 자체를 바꿀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정부가 제네릭 가격을 오리지널 의약품의 40퍼센트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업계 긴장감이 높아졌다. 현재 국내 제네릭 약가는 오리지널의 53점55퍼센트에서 산정돼 왔는데, 약가 인하안이 현행보다 약 25퍼센트포인트 낮은 40퍼센트로 귀결될 경우 연간 최대 3조6천억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비대위의 추산이다. 지난해 전체 약품비 26조8천억원 가운데 제네릭 비중 53퍼센트를 반영해 인하율을 적용한 결과다.  

정부는 약가 산정률을 주요국 수준으로 조정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신규 제네릭의 약가를 오리지널 대비 40퍼센트대에서 책정하고, 기존 등재 품목 가운데 인하 대상 약에 대해서도 3년에 걸쳐 순차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 별도의 조정 없이 최초 산정가인 53점55퍼센트 수준을 유지해 온 제네릭이 1차 타깃으로 거론된다. 안정적 수급이 필요한 필수의약품은 예외로 두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실제 현장에서는 상당수 품목이 인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약가 인하 폭이 숫자로 제시되면서 제약사의 손익 구조도 사실상 재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내 매출 상위 100개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점8퍼센트, 순이익률은 3퍼센트에 그친다. 고환율과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수 비중이 높은 제약 산업 특성상, 추가적인 가격 인하는 곧장 영업이익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윤웅섭 일동제약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2012년 평균 14퍼센트 일괄 약가 인하 당시와 지금의 경영 환경은 전혀 다르다”며 “현재와 같은 고비용 구조에서 제네릭 약가를 추가로 인하하면 제약 산업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위 제약사와 중소제약사를 막론하고 매출과 현금 흐름 대부분이 제네릭에서 나오는데, 이 기반이 흔들리면 신약 개발과 설비 투자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제네릭은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가 만료된 뒤 동일한 성분과 효능으로 개발되는 복제약으로, 국내 시장에서는 매출과 현금 창출 측면에서 일종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 왔다.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과 해외 임상, 공장 자동화·품질관리 시스템 강화 등 대규모 선투자가 필요한 영역에 제네릭 수익이 재투입되는 구조다. 업계는 “제네릭 수익 축소는 곧 신약 연구개발 예산 축소로 직결된다”고 우려한다.  

 

비대위가 인용한 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 수익이 1퍼센트 감소할 경우 R&D 활동은 평균 1점5퍼센트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익 감소가 누적되면 신약 후보물질 발굴, 임상시험 확대, 첨단 바이오 생산시설 증설 같은 중장기 프로젝트가 가장 먼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윤 위원장은 “정부가 제시한 ‘블록버스터 신약 3개 창출’ 비전도 결국 산업 내에서 재원이 돌고 투자 여력이 생길 때 현실성이 있는 목표”라며 “약가 인하로 성장 동력을 스스로 차단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기적으로도 업계는 이번 약가 개편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 만료에 따른 매출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외부 기술 도입을 확대하는 가운데,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은 올해 20조원을 웃돌며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다국적 제약사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혁신 기술과 파트너를 찾는 수요가 커졌고, K바이오는 축적된 임상 데이터와 바이오 베터·바이오 시밀러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협력 네트워크를 넓혀가던 참이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진출의 고속도로에 막 올라선 시점에, 내부의 현금창출원에 제동이 걸리는 셈”이라고 진단한다.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단기적인 수익 감소를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칠 구조적 영향이다. 중소 제약사는 이미 채산성 한계에 다다랐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 중소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가 40퍼센트대로 떨어지면 상당수 품목에서 영업이익을 내기 어려운 구간에 진입한다”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품목부터 생산을 중단하거나 공급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어, 시장에서 품절과 공급 불안이 잦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공급 중단 또는 부족을 겪은 의약품은 275개 품목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38점6퍼센트는 ‘채산성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낮은 약가에 맞추기 위해 원가를 최대한 줄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외 원료의존도가 더 높아지고, 국내 원료의약품 생산기반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충분하지 않은데, 약가 인하로 저가 해외 원료로 더 쏠리면 장기적으로 공급망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 문제도 민감한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대위는 제약산업 전체 종사자 12만명 가운데 10퍼센트가 넘는 1만4천800명 수준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추정치를 제시했다. 류형선 비대위 부위원장 겸 다산제약 대표는 “제약산업은 제조설비와 인력 비중이 높아 고정비가 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매출이 줄면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 조정 압박이 바로 커진다”며 “약가 인하는 필연적으로 고용 조정 논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도 지나친 약가 인하가 장기적으로 환자 치료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약가 인하가 국산 의약품 공급 기반을 약화시키고 의료현장에서의 선택지를 좁힐 수 있다”며 “정책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특히 필수의약품을 중심으로 공급 불안과 품절이 반복될 경우, 대체 약제 확보가 어려운 환자군에서 치료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국제 비교에 부합하는 약가 체계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5대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이라는 국가 전략 목표와, 단기적 재정 절감을 위한 약가 인하 정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신약 개발과 첨단 바이오 인프라에 투입할 재원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는 별도 약가 보상 체계나, R&D 투자에 대한 세제·재정 인센티브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제약업계와 의료계, 정부 간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K바이오의 성장 경로가 이번 약가 개편을 계기로 크게 꺾일 수 있다는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산업계는 당장의 비용 절감 효과보다 중장기적인 혁신 역량과 공급망 안정성이 훨씬 더 큰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가 협의 구조를 재정비해 세부 정책 설계를 손질할지 주시하고 있다. 결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재정 건전성과 혁신 투자, 일자리와 공급망 안정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정교한 정책 조율이 필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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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약가비대위#제네릭#정부약가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