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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청정 제주산 축산물”…싱가포르 첫 수출로 K푸드 수출지형 넓힌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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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생산된 한우와 돼지고기가 싱가포르 위생·검역 장벽을 통과하며 동남아 프리미엄 단백질 시장에 첫 진출했다. 단순 수출 실적을 넘어, 국제 기준을 충족하는 방역·검역·유통 체계가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국내 축산물 산업의 구조 전환 신호로 해석된다. K푸드로 대표되던 가공식품 중심 수출 포트폴리오에 고부가가치 신선 단백질이 추가되면서, 향후 국내 스마트 축산, 콜드체인, 식품 안전 관리 시스템 전반에 파급력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출을 계기로 싱가포르를 테스트베드로 삼아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 거점을 확대하는 전략이 본격화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림축산식품부, 제주특별자치도는 12월 1일 오후 2시 제주항에서 제주산 한우·돼지고기의 싱가포르 첫 수출 선적식을 공동 개최했다. 지난달 2일 열린 한국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수출을 공식 합의한 이후 약 한 달 만에 첫 선적이 이뤄진 것이다. 초도 수출 물량은 한우와 돼지고기를 합해 4.5톤, 약 2억 8000만 원 규모로 집계됐다. 수출 작업장으로는 제주축협과 서귀포시축협, 제주양돈농협, 대한에프엔비, 몬트락 등 도축·가공 시설 6곳이 지정됐다.  

선적식에는 송성옥 광주지방식약청장, 박정훈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 오영훈 제주도지사 등 관계 부처와 지자체, 수출업체, 생산자단체 인사 15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싱가포르 수출 추진 경과와 성과를 공유하고, 수출 유공자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수출 차량 앞 제막 퍼포먼스에서는 제주산 축산물을 세계 시장으로 본격 확장하겠다는 비전이 제시되며, 향후 수출 확대 전략의 출발점이 강조됐다.  

 

이번 수출 성사는 안전성과 위생 수준이 높게 요구되는 싱가포르 시장에서 제주산 축산물의 위생·검역 체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싱가포르는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 관리 기준이 엄격한 국가로, 축산물 수입 전 생산지 방역 시스템과 도축·가공 공정의 안전관리 체계를 면밀히 검증한다. 우리 정부와 제주축산업계는 수년간 축산물 안전관리 체계 고도화, 생산·가공 단계별 추적 관리, 검역 체계 정비 등을 진행하며 수출 기반을 다져왔다.  

 

식약처와 농식품부는 2016년부터 싱가포르 당국과 수출 협상에 착수해, 국내 축산물 안전관리와 검역 체계에 대한 동등성 인정 확보에 나섰다. 동등성 인정은 상대국과 위생·검역 수준이 동등하다고 평가받아 상호 인정하는 제도로, 수출 승인 절차를 단축하고 정례 실사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국내 축산물이 고위험 전염병 관리, 잔류 물질·항생제 관리, 도축장·가공장 위생 수준 등에서 국제 표준을 맞추기 위한 구조 개편을 촉진했고, 그 과정에서 디지털 위생기록 관리, 공정별 모니터링 시스템, 콜드체인 데이터 관리 등 첨단 식품 안전 관리 기술 도입도 병행됐다.  

 

특히 제주도는 구제역 청정지역 지위를 확보하며 방역 안전성을 입증했다. 농식품부는 2025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동물보건기구 총회에서 제주 지역의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제주도는 2023년 7월부터 구제역 청정지역 인증을 위한 전담팀을 구성해 중앙부처와 방역 전략을 수립했고, 백신 접종과 방역 관리 수준을 강화해 올해 5월 구제역 백신접종 청정지역 인증을 획득했다. 이 과정에서 축산농가 단위의 방역 프로토콜 표준화, 가축 이동 경로 관리, 농장별 질병 발생 정보 공유 시스템 등 데이터 기반 방역 관리 체계가 실제 운영에 안착한 것이 수출 협상 과정의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수출 승인 과정에서 싱가포르 당국의 현지 실사 대응 역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제주도와 수출업체, 농협중앙회, 생산자단체 등은 2024년 12월부터 중앙부처와 함께 싱가포르 당국의 현지 실사를 준비해 왔으며, 지난 8월 진행된 현지 실사에서 위생·검역 시스템 전반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그 결과, 수출 조건에 우리 정부가 제출하는 수출업체 명단에 대해 싱가포르 당국이 별도 현지 점검 없이 목록 승인하는 방식이 포함됐다. 이는 정부의 위생·검역 관리 체계가 충분히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평가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식약처는 업계를 대상으로 사전 설명회를 열어 싱가포르 수출 승인 조건과 위생·검역 기준을 안내했다. 동시에 제주도와 함께 수출 작업장에 대한 현장 점검을 3회 실시하며 시설별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했다. 도축·가공 공정의 온도 관리, 교차오염 방지, 세척·살균 공정 표준화, 작업자 위생 교육 등 세부 항목이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내 축산 가공 현장에 디지털 온도 모니터링, 실시간 공정 기록 시스템 등 IT 기반 품질관리 솔루션 도입이 촉진되면서 향후 다른 국가 수출 시에도 공통으로 활용 가능한 데이터 기반 인증 인프라가 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싱가포르는 고소득 국가인 동시에 축산물 공급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인구 대비 냉장·냉동 육류 소비 비중이 높고, 고급 외식 시장과 한류 영향으로 K푸드에 대한 인지도가 빠르게 확산된 지역이다. 육류 시장은 연평균 5.5퍼센트 성장률을 기록하며 확대되는 추세로, 프리미엄급 한우와 위생·안전성을 앞세운 돼지고기 수요가 함께 늘어날 여지가 있다. 이번 제주산 축산물 수출을 통해 국내 생산·가공·유통 체계의 국제 경쟁력이 검증되면, 향후 싱가포르를 교두보로 인근 동남아 국가들로 진출 범위를 넓히는 전략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경쟁 구도 측면에서 싱가포르 육류 시장은 이미 호주, 미국, 유럽, 브라질 등 다수 국가가 점유율을 놓고 경쟁 중이다. 이들 국가는 일찍부터 구제역과 광우병 등 주요 가축 질병 관리와 함께, 고도화된 콜드체인과 브랜드 전략을 지속적으로 구축해 왔다. 제주산 축산물이 뒤늦게 진입하는 만큼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격차를 줄이기 어렵고, 차별화된 품질과 스토리텔링, K푸드와 연계한 메뉴 개발, 한식 전문 외식 브랜드와의 협업 등 복합 전략이 요구된다. 다만 싱가포르는 새로운 식품과 문화를 수용하는 속도가 빠른 시장이라는 점에서, 한류 콘텐츠와 연계한 마케팅이 제대로 작동할 경우 단기간에 인지도를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정책·제도 측면에서는 한국과 싱가포르가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계기 정상회담에서 위생·검역 조건을 최종 타결한 것이 큰 전환점이 됐다. 고기류 수입 시 필수적인 검역 증명서 양식, 가공 과정에서 허용되는 첨가물과 처리 방법, 포장·표시 기준, 유통기한 관리 등 세부 규정에 대해 양국이 합의하면서, 향후 수출 기업은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 내에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향후 다른 국가와의 수출 협상에서도 표준 모델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현장에서는 싱가포르 진출을 계기로 생산과 유통 과정에 더 많은 기술 투자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마트 축사 도입을 통해 가축 건강과 성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도축·가공 정보와 연계해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팜 투 테이블’ 데이터 체계가 구축될 경우, 고부가가치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QR 코드 기반 이력 추적, 수출 물류 전 과정 온도·습도 모니터링, 블록체인 기반 위변조 방지 등 IT 기반 솔루션이 해외 바이어와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송성옥 광주식약청장은 행사에서 수입 기준이 까다로운 싱가포르로의 수출 성공을 두고 대한민국 축산물 안전관리 체계의 글로벌 위상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평가했다. 그는 식약처가 향후에도 관계부처 및 업계와 협력해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실효성 있는 수출 규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박정훈 농식품부 식량정책실장은 K푸드 열풍과 함께 싱가포르 시민이 우리 축산물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현지 홍보와 판촉 행사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며, 검역 협상을 통한 신규 시장 개척 노력도 병행한다고 강조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는 국내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싱가포르에 한우와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지역이 됐다며, 제주 축산농가와 관련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에 이어 싱가포르까지 수출선이 다각화되면서 제주 축산물 경쟁력이 다시 확인된 만큼, 동남아 전역으로 판로를 넓히기 위한 현지 유통망 구축과 마케팅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성과가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지, 데이터와 기술, 제도 기반을 토대로 안정적인 수출 생태계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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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싱가포르#제주산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