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지역 근무 조건으로 전액 지원”…지역의사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둘러싼 갈등과 여야의 이해가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맞붙었다. 의료 인력 확충과 디지털 의료 도입이라는 과제가 부각되면서 지역의사제 도입, 비대면진료 제도화 등 굵직한 법안이 한꺼번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어 대학입시에서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합격한 의대생에게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전액 지원하는 대신, 의사 면허 취득 후 10년간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지역의사법을 의결했다. 여야는 지역·필수의료 강화라는 공통 목표를 앞세워 법안 처리에 합의했다.

지역의사제는 복무형과 계약형으로 구분된다. 복무형 지역의사는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입학한 의대생이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는 제도다. 계약형 지역의사는 기존 전문의 가운데 국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고 특정 지역에서 5∼10년 종사하기로 한 의사를 뜻한다.
복무형 지역의사는 입학금과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 학비 전액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는다. 그러나 제적이나 자퇴를 하거나, 의과대학 졸업 후 3년 이내에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경우, 또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지원받은 학비를 반환하도록 규정했다.
10년 의무 복무 기간에는 군 복무 기간이 포함되지 않는다. 또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복무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의료기관에서 수련을 받는 기간은 의무 복무 기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지역의사제 도입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법은 의무 복무를 강제하기 위한 제재 규정도 담았다.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지역 의사가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시정명령에도 불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면허 자격을 정지할 수 있도록 했다. 면허 정지를 3회 이상 받거나 복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면허 취소도 가능하도록 규정했고, 면허가 취소된 경우 남은 복무 기간 동안은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지역의사 양성 규모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논의를 거쳐 확정된다. 정부는 내년 초 2027학년도 이후 의과대학 정원 윤곽이 나오는 시점에 맞춰 세부 규모를 정할 계획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의사제 도입 의미를 강조했다. 정 장관은 “지역의사제의 법적 근거 마련은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지역의사들이 그 지역 의료의 주춧돌이 되도록 국가가 전폭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의료 전달 체계 변화와 직결된 의료법 개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대면진료 제도화가 처음 국회에 제기된 2010년 18대 국회 이후 15년 만에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개정 의료법은 국무회의 상정과 의결을 거친 뒤 공포되고, 공포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된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대면진료 우선,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 재진 환자 중심이라는 원칙을 명시했다. 또 비대면진료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담 기관 운영을 금지해 의료 접근성 확대와 의료의 질 관리 사이 균형을 꾀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법안은 비대면진료 중개 매체에 대한 인증제도도 도입했다. 가입자 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경우 등에는 정부 인증을 의무화해 플랫폼 난립과 안전성 논란을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더불어 공공 플랫폼 역할을 맡을 비대면진료 지원시스템을 구축·운영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두었다.
환자 안전성 강화를 위한 장치도 포함됐다. 비대면진료를 통해서는 마약류 등 특정 의약품을 처방할 수 없도록 금지했고, 환자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의약품 종류와 처방일수를 추가로 제한하도록 했다. 약 배송은 섬과 벽지 거주자, 장기요양 수급자, 등록 장애인, 1∼2급 감염병 확진자, 희귀질환자 등으로 대상을 한정하고,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지역 내에서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관리된다.
정 장관은 비대면진료 제도화 방향에 대해 “의료의 질과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대안이 마련된 만큼 법 시행 이후에도 국민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비대면진료를 이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의 근로 여건 개선을 위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개정안도 이날 본회의를 통과했다. 만성적인 과로와 과중한 당직으로 논란이 제기돼 온 전공의 수련 환경을 제도적으로 손질한 것이다.
개정안은 전공의의 연속 수련 시간 상한을 기존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였다. 또 전공의의 휴게, 휴일, 연장 및 야간 근로와 관련된 근무 조건을 근로기준법에 따르도록 명시해 전공의의 노동권 보장을 강화했다.
응급의료 환경에 대한 보호도 강화됐다. 국회는 응급의료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켜 응급의료 방해 금지 대상에 기존 진료뿐 아니라 상담 행위를 포함했다. 아울러 응급의료 종사자 폭행에 대한 처벌이 적용되는 장소를 응급실에서 응급의료를 실시하는 응급실 외 장소까지로 넓혀, 현장 의료진 보호 장치를 확대했다.
이와 함께 산업 구조조정과 취약계층 보호를 겨냥한 법안도 줄줄이 의결됐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석유화학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담았다. 글로벌 수요 변화 속에서 국내 석유화학기업의 전환과 재편을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친족 관계에 있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가족 내 장기 은폐 가능성이 높은 범죄 특성을 고려해 처벌 공백을 줄이려는 조치다.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도 이날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개정으로 법령상 용어였던 경력 단절 여성은 경력 보유 여성으로 바뀐다. 경력 공백보다는 보유한 경력과 역량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정책 인식을 전환하려는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이날 국회는 지역의사제 도입, 비대면진료 제도화, 전공의 근로시간 단축 등 의료 현안과 함께 산업 재편, 성폭력 처벌 강화, 양성평등 정책까지 폭넓은 민생 법안을 처리했다. 국회는 남은 회기에서도 의료 인력 확충 방안과 지역 의료체계 개편 문제를 놓고 추가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