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걷고 절벽을 바라본다”…겨울 단양에서 즐기는 짜릿함과 고요함의 공존
여행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멀리 떠나는 대신, 한 도시 안에서 스릴과 쉼을 함께 찾는 사람이 늘었다. 겨울이면 충북 단양이 그런 여행지로 거론된다. 하늘과 맞닿은 전망대, 고즈넉한 산사, 뜨끈한 먹거리가 있는 전통시장까지, 차분한 계절 속에서 취향대로 머무르기 좋은 곳이다.
요즘 SNS에는 유리 바닥 위에 서서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단양의 대표 명소 만천하스카이워크에서 촬영한 인증샷이다. 남한강 절벽 위로 길게 돌출된 원형 데크에 서면, 투명 유리 아래로 80~90m 아래 수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발밑 풍경이 뚫린 듯 아찔한 높이가 처음엔 다리를 떨리게 하지만, 눈을 들면 단양 시내와 멀리 소백산 연화봉까지 한눈에 펼쳐지는 겨울 풍경이 마음을 놓이게 한다.

만천하스카이워크 주변에는 짚와이어와 알파인코스터 같은 액티비티도 자리 잡았다.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가르며 내려오는 코스는 계절 특유의 차가운 공기를 색다른 즐거움으로 바꿔 준다. 여행자들은 “손이 시려도 한 번 더 타고 싶다”, “도심에선 느끼기 어려운 해방감이 있다”고 표현하며 눈 내린 강과 산을 스쳐 지나가는 스릴을 곱씹는다. 그만큼 겨울 단양은 정적인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 여행지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백산 자락에 자리한 구인사가 또 다른 얼굴의 단양을 보여 준다.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인 이곳은 1945년 문을 열었고, 1966년 현대식 콘크리트 구조로 다시 지어졌다. 기와와 목조가 어우러진 전통 사찰과 달리, 웅장한 규모와 직선적인 외관이 인상적이다. 대법당과 총무원 등 50여 채의 건물이 층층이 배치돼 하나의 대가람을 이루고, 입구를 지키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 사천왕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겨울의 구인사는 더욱 묵직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소백산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 절집 사이로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가 도시에서 지친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천태종이 염불 중심에서 벗어나 생활 속 자비를 강조하는 실천 불교를 지향하는 만큼, 이곳을 찾는 이들도 소원을 비는 것보다 당장의 마음을 다독이고 싶어 한다. 한 방문객은 “소원보다는 오늘을 잘 버티게 해 달라고 속으로 되뇌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남한강 풍경과 사찰만으로 여행이 아쉽다면, 단양읍 도전리의 단양구경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상가건물형 전통시장인 이곳은 겨울에도 실내가 잘 정돈돼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무엇보다 지역 특산물인 단양 마늘을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가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마늘 순대, 마늘 닭강정 등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메뉴들이 겨울의 허기를 달랜다.
시장 골목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풍경을 보다 보면, 차가운 강바람에 얼었던 손끝이 자연스럽게 녹는다. 매월 1일과 6일 장날이면 상인들의 목소리와 사람들 발걸음이 더해져 활기가 배가된다. 여행자들은 “큰 관광지가 아니어도 시장만 둘러봐도 단양이 어떤 곳인지 느껴진다”고 말하며, 종이봉투에 담긴 마늘과 간식을 양손에 들고 시장을 빠져나온다.
조용한 자연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다면 단양팔경 중 하나인 사인암으로 향하게 된다. 이곳은 병풍처럼 둘러선 기암괴석으로 이름난 곳이다. 거대한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수십 미터 높이로 서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 말을 잊게 만든다. 겨울에는 바위 사이를 흐르던 물줄기가 얼어붙어 더욱 신비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흰 얼음과 회색 바위, 주변 산의 겨울빛이 어우러져 수묵화를 닮은 풍경이 완성된다.
사인암 주변 산책로는 걷기 편하게 조성돼 있어, 두꺼운 패딩 지퍼를 조금 여유 있게 잠그고 천천히 거닐기 좋다. 걸으며 들리는 소리는 발밑 눈 밟는 소리와 옅은 물소리가 거의 전부다. 어느 여행객은 “사진을 찍으러 왔다가, 결국 가장 오래 한 건 그냥 서서 바라보는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겨울의 사인암은 눈길뿐 아니라 생각도 오래 붙잡는다.
이런 변화는 숫자보다 풍경에서 먼저 읽힌다. 멀리 해외를 찾기보다, 차로 몇 시간 거리의 국내 여행지에서 나만의 속도로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낮에는 만천하스카이워크에서 심장을 뛰게 하고, 오후에는 구인사와 사인암에서 마음을 가라앉힌 뒤, 저녁엔 시장에서 따뜻한 한 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의 여행 동선이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겨울 단양의 매력은 거창한 이벤트보다, 한 도시 안에서 고요와 짜릿함을 모두 품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남한강을 내려다본 두려움, 산사에서 마주한 고요, 시장에서 나눈 짧은 대화가 겹겹이 쌓이면서 여행의 온도가 만들어진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