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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GLP-1 비만치료제 나온다…한미약품, 위고비·마운자로에 도전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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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글로벌 비만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가운데, 국내 제약사들이 잇따라 개발 성과를 내며 국산 비만약 시대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한미약품이 국내 최초 GLP-1 기반 비만 신약의 허가를 추진하면서,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장악한 시장에 국산 약물이 본격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이번 움직임을 GLP-1 비만 치료제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GLP-1 계열 주사제 한미 에페글레나타이드 오토인젝터주에 대해 당뇨병이 없는 성인 비만 환자용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최근 신청했다. 한국 제약사가 개발한 GLP-1 비만치료제가 비만 단독 적응증으로 허가 심사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설계됐으나, 한미약품이 비만 치료 시장의 성장세에 맞춰 개발 전략을 전환했다. 체질량지수 25 이상을 비만으로 보는 한국 기준에 맞춰 체중 감량 효과와 안전성을 최적화한 것을 내세우며 한국인 맞춤형 GLP-1 약물이라는 콘셉트를 강조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성인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수행했다. 투약 40주 시점 평균 체중 감소율은 9.75%로, 위약 투여군의 0.95 감소와 비교해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개별 환자에서는 최대 30 수준의 체중 감소도 관찰됐다. 체중의 5 이상을 줄인 비율은 에페글레나타이드군이 79.42, 위약군이 14.49로, GLP-1 계열 특유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한미약품은 기존 GLP-1 계열 약물과 비교해 위장관 부작용 등에서 양호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확보했다고 부연했다.

 

GLP-1 약물은 인크레틴 호르몬의 일종인 GLP-1 수용체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추며 포만감을 강화하는 기전으로 작동한다. 당초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체중 감소 효과가 부각되면서 고도비만 치료용으로 적응증이 확대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주 1회 투여 세마글루타이드와 GIP 수용체까지 동시에 표적하는 티르제파타이드가 대표 약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번 한미약품의 비만 적응증 도전은 글로벌 빅파마 중심이던 GLP-1 시장에 국산 신약이 직접 맞붙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내년에 국내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다는 전략이다. 국산 생산 기반을 활용해 안정 공급을 보장하고, 의료진과 환자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시장에서는 국산 GLP-1 비만치료제가 합류하면 가격과 처방 패턴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마운자로가 국내 출시된 이후 위고비의 약가가 인하된 선례를 감안하면, 새로운 경쟁 약제가 늘어날 때마다 추가적인 가격 조정 압력이 커질 수 있어서다. 다만 고비용 고효과 약제라는 GLP-1 계열의 특성상 보험 급여 확대와 재정 부담 사이에서 정책 당국의 판단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산 제품 등장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 사이의 영업 경쟁도 심화될 전망이다. 위고비는 이미 종근당이 노보 노디스크와 함께 국내 공동 판매를 맡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약품의 비만 신약이 시장에 진입하면, 국산 개발사와 글로벌 제휴사를 포함한 국내 제약사 간 판촉 전략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단일 품목에 그치지 않고 적응증 확장과 디지털 헬스 융합 전략을 병행한다는 구상이다. 당뇨병 치료 적응증 확보를 추진하는 한편, 디지털융합의약품과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패키지 등을 결합한 통합 체중 관리 솔루션으로 시장을 넓히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동시에 차세대 비만 파이프라인도 강화하고 있다. 삼중작용제 HM15275는 GLP-1 외에 추가 호르몬 축을 함께 자극해 비만 수술 수준의 체중 감량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비만 치료 시 근육량 유지와 증가를 함께 노리는 신개념 후보 HM17321도 추진하며 체중 수치뿐 아니라 체성분 개선까지 겨냥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국내 다른 제약사들도 GLP-1 축을 중심으로 비만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휴온스는 삭센다를 저분자 합성 펩타이드로 구현한 HUC2-676에 대해 국내 1상 시험을 승인받았다. 주사제 형태의 펩타이드 대신 합성 기반으로 전환하면 생산 효율과 제형 다양화 측면에서 장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세마글루티드를 정제로 개발하는 정부 과제에도 참여해 주사용 GLP-1을 경구 제형으로 바꾸는 시도를 병행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신약 개발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비만과 당뇨를 동시에 겨냥한 먹는 GLP-1 후보 ID110521156을 개발 중이다. 경구 GLP-1 약물은 주사에 대한 환자 거부감을 낮추고 복약 편의성을 높일 수 있어 글로벌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영역이다. 디앤디파마텍이 개발하는 먹는 비만치료제는 전임상에서 약 101시간의 긴 반감기를 보여 투약 간격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관찰됐다.

 

종근당은 경구용 GLP-1 물질 CKD-514의 비임상 연구 결과를 미국비만학회에서 공개하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장기 작용과 체중 감량 효과, 안전성을 균형 있게 설계해 위고비와 마운자로 이후 세대 시장을 겨냥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제형 차별화도 눈에 띈다. 대웅제약과 대웅테라퓨틱스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을 활용한 마이크로니들 패치 DWRX5003의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피부에 부착하면 미세바늘이 녹으면서 약물을 진피층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주 1회 부착만으로 주사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늘에 대한 공포와 주사 통증을 줄이고 자가 투여 편의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환자 수용성이 높을 수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GLP-1 계열 비만치료제가 당뇨 영역을 넘어 심혈관 질환, 지방간질환 등 대사 질환 전반으로 적응증을 넓히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만 치료를 만성질환 관리의 핵심 축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며 건강보험 제도 편입 논의도 활발하다. 국내에서는 아직 비만치료제 급여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고도비만 환자의 의료비 부담과 생산성 손실을 감안할 때 중장기적으로 급여 확대 논의가 재점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GLP-1 계열 약물의 장기 사용에 따른 부작용 관리, 미용 목적 과다 사용, 온라인·비의료 채널을 통한 오남용 우려 등 규제와 윤리 이슈도 크다. 당국은 허가 심사 단계에서 체중 감량 효과뿐 아니라 심혈관 안전성, 췌장과 갑상선 관련 이상반응 등 중장기 안전성 데이터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처방 기준 정비, 의사의 모니터링 의무 강화,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복약 순응도 관리 등 제도 보완 논의도 불가피해 보인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에페글레나타이드의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며 통합적인 라이프사이클 관리 전략을 통해 국내 개발 최초 GLP-1 신약의 가치를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국산 GLP-1 비만치료제가 실제 시장에 안착해 글로벌 제품과 본격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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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에페글레나타이드#glp-1비만치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