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74억달러 투자”…고려아연, 미국 테네시에 비철 제련소 건설로 광물동맹 첫 시험대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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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초대형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한미 간 전략 광물 동맹 구상이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번 투자를 국가 안보와 제조업 기반 재건을 동시에 겨냥한 사례로 평가하며 자국 내 공급망 재편의 핵심 계기로 삼으려는 분위기다. 한국 기업의 대규모 설비 투자와 미국의 보조금·지분 참여가 맞물리면서 향후 정책과 산업 지형 변화에 시선이 쏠린다.

 

한국시간 15일 고려아연은 이사회에서 미국 테네시주 클라크스빌 인근에 미국 제련소 U.S. Smelter를 건설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예상 투자액은 약 74억3,200만달러, 원화로 약 11조원 수준으로, 단일 비철 제련 프로젝트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을 근거로 약 3,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할 계획이며, 국방부도 지분 참여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기로 했다.

출처: 고려아연
출처: 고려아연

새로 들어설 시설은 연간 약 54만t의 필수 자재를 생산하는 통합 제련소로 설계됐다. 고려아연은 테네시주 니어스타 제련소 부지를 재구축해 핵심 광물 11종을 포함한 13종 금속과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황산을 생산할 구상이다. 생산 대상에는 갈륨, 게르마늄, 인듐, 안티몬, 구리, 은, 금, 아연 등이 포함된다. 이런 소재는 방어 시스템, 반도체, 인공지능, 퀀텀 컴퓨팅, 자동차, 데이터센터, 전력망 등 첨단 산업 전반을 뒷받침하는 기반 자원이다.

 

미국 측은 이번 결정을 단순한 외국인 투자 유치가 아닌 전략 산업 재편의 분기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소셜미디어 성명에서 고려아연 투자를 미국의 큰 승리라고 규정하며 국가 안보 강화, 산업 기반 재건, 공급망 다변화를 동시에 겨냥한 계약이라고 평가했다. 러트닉 장관은 특히 2026년부터 미국이 고려아연의 확대된 글로벌 생산 물량에 우선 접근권을 확보하게 된다고 못 박으며, 전략 광물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조했다.

 

백악관도 이번 프로젝트를 제조업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쿠쉬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의 아연 제련소는 없었다며 수십 년간 이어진 제조업 기반 약화를 상기했다. 미국이 그동안 해외, 특히 중국과 일부 국가에 크게 의존해온 광물 공급 구조를 자국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흐름 속에서, 고려아연 제련소는 공급망 재편 전략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는 분위기다.

 

입법부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워싱턴에서 열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세미나에서 연방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 민주당 간사 아미 베라 의원은 동맹국과의 광물 안보 파트너십 확대 필요성을 재차 언급했다. 베라 의원은 한국과 일본이 보유한 금융 수단과 몽골 등 제3국과의 공동 진출을 예로 들며 다양한 광물 자원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논의 흐름을 고려하면 테네시 제련소는 미국이 추진해온 광물 동맹 전략을 실증할 첫 시험대 성격이 강하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도 이번 프로젝트는 글로벌 위상 제고의 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부와 합작 구조를 택하고, 향후 약 3년에 걸친 건설 이후 단계적 상업 가동을 계획하면서 회사의 생산 거점을 아시아에서 북미까지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해서다. 연간 54만t 규모의 통합 제련 능력을 바탕으로 핵심 금속 13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할 경우, 북미 고객사와의 장기 공급 계약, 기술 신뢰도 제고, 탄소·환경 규제 대응 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한국 내에서는 부정적 시각도 공존한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측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을 거론하며 해외 대형 투자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의 합작 구조, 전략 광물에 대한 우선 공급권 부여 등이 국내 산업 경쟁력과 기술 통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우려가 맞물리면서, 산업 전략과 기업 지배 구조가 충돌하는 새로운 갈등 양상이 전개될 여지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의 태도는 적극적이다. 러트닉 장관은 여기서 만들고, 공급망을 확보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미국을 산업·기술 리더로 유지하는 것이 승리라고 강조하면서 정치적 성과를 부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 표현에서는 이번 투자가 산업 정책을 넘어 차기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상징성까지 띠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고려아연 테네시 제련소가 계획대로 완공돼 상업 가동에 들어설 경우, 한미 양국은 전략 광물과 첨단 제조업을 매개로 한 새로운 경제 안보 동맹 모델을 실제 생산 현장에서 시험하게 될 전망이다. 향후 정책 방향과 시장의 평가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도, 미중 갈등 구도, 국내외 지배 구조 논쟁 등 복합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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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하워드러트닉#테네시제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