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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뇨 동반 옆구리 통증”…다낭성 신장질환, 조기진단이 관건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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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이 조용히 진행돼 말기 신부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영상의학과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20대 이후 반복되는 옆구리 통증과 혈뇨, 조기 고혈압이 이 질환의 주요 경고 신호로 주목받고 있다. 의료계는 낭종 형성 기전을 표적하는 약물과 유전자 수준의 정밀 진단이 확대되면 희귀 유전성 신장질환 관리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은 양쪽 신장에 여러 개의 낭종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개수와 크기가 증가해 정상 신장 조직을 압박하는 유전 질환이다. 낭종이 커질수록 사구체와 세뇨관이 손상되고, 결국 신장 기능이 떨어져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할 위험이 커진다. 유병률은 인구 1000명당 한 명 수준으로 추정되며, 60세 전후 약 절반에서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필요로 하는 말기 신부전에 이른다.

이 질환은 신장 세포막에 존재하는 폴리시스틴 단백질을 만드는 PKD1, PKD2 유전자의 결함으로 발생한다. 상염색체 우성 유전 형태를 보여 부모 중 한 명에게 변이가 있으면 자녀에게 50퍼센트 확률로 전달된다. 폴리시스틴은 세포 내 칼슘 신호를 조절해 세포 증식과 체액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기능이 떨어지면 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하고 액체가 차는 낭종이 반복적으로 형성된다. 기존 만성 신부전과 달리 구조적 낭종 증가가 질환 진행을 직접 이끄는 점이 특징이다.

 

임상 현장에서는 초음파, CT, MRI 등 영상 기술이 주요 진단 수단으로 활용된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 비교적 간단한 초음파 검사만으로도 신장 내 다수의 낭종을 확인해 진단이 가능하다. 가족력이 불명확하거나 다른 낭성 신질환과 감별이 필요한 경우에는 유전자 검사가 동원된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기반으로 PKD1, PKD2 변이 여부를 확인하면, 임신 및 출산 계획 수립이나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선제적 모니터링에 활용할 수 있다.

 

다낭성 신장질환에서 가장 흔한 초기 임상 신호는 고혈압이다. 신장 기능이 아직 정상이더라도 낭종으로 인한 신장 구조 변화가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 시스템을 자극해 혈압을 끌어올린다. 여기에 낭종이 커지면서 신장 피막과 주변 조직을 압박해 옆구리 통증을 유발하고, 낭종 출혈이나 요로결석이 동반되면 혈뇨가 나타난다. 40대 이후 낭종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 사구체 여과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며, 말기 신부전 진입 속도도 빨라지는 양상이 관찰된다.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 치료 전략의 핵심은 신장 기능 저하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현재 FDA와 국내에서 승인된 톨밥탄은 바소프레신 V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기전으로 낭종 내 세포 증식과 체액 분비를 억제하도록 설계된 약물이다. 세포 내 cAMP 신호를 낮춰 낭종 확장 속도를 줄여 주며, 대규모 임상 연구에서 신장 부피 증가율과 사구체 여과율 감소 속도를 유의하게 늦추는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간기능 이상 등 부작용 모니터링이 필수여서 전문 의료진의 엄격한 추적 관찰이 요구된다.

 

혈압 조절 역시 질환 진행을 늦추는 가장 기본적인 개입으로 평가된다. 신장내과에서는 130에 80 밀리미터 수은주 이하의 혈압을 목표로 제시하며, 레닌-안지오텐신계 억제제를 일차 선택 약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저염식, 충분한 수분 섭취, 체중 관리가 병행되면 바소프레신 분비가 낮아져 낭종 성장 속도를 더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걷기, 실내 자전거 타기 등 중등도 유산소 운동은 혈압 조절과 심혈관 위험 감소에 도움이 되지만, 낭종 파열 위험을 키우는 격렬한 접촉 스포츠는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정밀의학 관점에서 보면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은 유전자 변이에서 임상 증상, 표적 약물까지 이어지는 전형적인 유전성 신장질환 모델로 꼽힌다. 최근에는 환자 개인의 유전자형과 신장 부피, 나이, 사구체 여과율을 통합해 향후 5년, 10년 내 신부전 위험을 예측하는 알고리즘 기반 리스크 분류 연구가 활발하다. 고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해 톨밥탄 같은 표적 치료와 공격적인 혈압 관리를 먼저 적용하려는 시도다.

 

글로벌에서는 낭종 형성 관련 신호 경로를 겨냥한 신규 타깃 약물과 유전자 교정 치료 가능성을 두고 연구가 진행 중이다. mTOR 억제제, 세포 내 칼슘 신호 조절 물질, cAMP 대사 조절 약물 등이 후보군으로 검토됐으나, 아직 톨밥탄을 대체할 수준의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CRISPR 기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해 PKD1, PKD2 변이를 직접 교정하는 동물실험도 보고되고 있지만, 안전성과 표적 전달 기술 한계로 단기간 내 임상 적용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국내에서도 다낭성 신장질환은 희귀질환으로 분류돼 있어 일부 환자에게 검사와 치료 비용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가계 단위 유전자 검사, 장기 추적 영상 검사, 조기 고혈압 관리 등 장기 관리 체계를 제도권에서 얼마나 뒷받침할지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개인정보 보호와 유전정보 활용 규제도 정밀의학 기반 관리 확대의 변수로 거론된다.

 

이신아 이대목동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상염색체 우성 다낭성 신장질환이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질환이지만, 조기 진단과 체계적인 관리로 진행 속도를 늦추고 합병증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반복되는 옆구리 통증과 혈뇨, 젊은 나이의 원인 미상 고혈압 환자에서 영상 검사와 가족력 확인을 일상 진료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유전진단, 표적 약물, 디지털 모니터링을 결합한 정밀 신장질환 관리 플랫폼이 실제 의료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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