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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정치적 입장문도 분석”…텍스트 비평 자동화 확산 주목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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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입장문과 논평이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으로 해부되는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자연어처리 기술은 발언의 논리 구조, 감정 강도, 사실 여부 패턴을 정량화해 보여주며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석 방식을 바꾸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정치 연설·성명서에 대한 AI 기반 텍스트 비평 도구가 확산되면서 언론과 학계는 ‘정치 담론의 데이터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 스타트업과 연구기관은 정치인의 성명서, 토론 발언, 인터뷰 전문을 수집해 문장 구조와 어휘 선택, 공격·방어 구문 비율을 자동 분석하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각 문장을 주어·서술어·근거 제시 여부로 분해하고, 논리적 연결어 사용 패턴을 학습시켜 얼마나 일관된 인과관계를 제시하는지 수치로 환산한다. 기존에는 전문가가 수동으로 읽고 해석하던 작업이었으나, AI는 수천 건 발언을 동시에 비교해 특정 인물이 위기 국면에서 어떤 언어 전략을 반복하는지도 추적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발전한 대규모 언어모델은 단순 감성분석을 넘어 ‘논리적 비약 가능성이 큰 구절’, ‘사실 주장과 가치 판단이 뒤섞인 문장’을 예측해 표시하는 기능까지 구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정선거나 국가안보 같은 민감 이슈가 등장하는 경우, 과거 판례·공식 통계·선거 관리 규정과의 괴리를 자동 참조해 근거 빈약 가능성을 경고하는 식이다. 인간 분석가가 놓치기 쉬운 반복 과장 표현이나 수사적 왜곡 패턴도 벡터 공간 상에서 특징값으로 추출해 시각화한다.  

 

이 기술은 미디어 분석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방송 토론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시사 대담에서 진행자와 패널 발언을 실시간으로 스크립트화한 뒤, 어느 시점에 감정 강도가 상승했는지, 누구의 발언이 팩트 기반인지, 누가 인신공격형 수사를 많이 쓰는지 그래프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시험 중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논쟁의 열기와 별개로 실제 논리 구조와 데이터 활용 정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정치 엔터테인먼트’와 ‘정책 토론’의 경계를 가르는 도구로도 거론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정치 텍스트 분석에 AI를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의회 연설과 선거 공약집을 분석해 후보별 ‘과장 지수’, ‘모호한 약속 비율’을 수치화한 리포트가 유권자 정보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유럽 연구기관들은 극단주의 발언 탐지 모델을 통해 인종·성별·이념 혐오 표현을 조기 포착하고, SNS 확산 경로까지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에서도 국회 회의록, 선거 토론 자료, 정당 정책자료집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정치 발언을 AI로 평가하는 과정에서 편향과 규제 이슈도 불거지고 있다. 학습 데이터 자체가 특정 이념 성향에 치우치면 알고리즘이 한쪽 진영 발언만 더 ‘공격적’ 혹은 ‘비논리적’으로 분류할 위험이 존재한다. 또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사이에서 어디까지 자동 판정 결과를 공개할지, 선거 기간에 플랫폼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제도 설계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국가는 정치 광고와 관련된 알고리즘 활용을 별도 규제로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국내 정책 논의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언론 현장에서는 AI 분석 결과를 그대로 기사화하기보다는, 사람 기자의 맥락 해설을 보완하는 보조 도구로 쓰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발언의 논리적 구조와 수사학적 특성을 수치화한 뒤, 전문가의 질적 평가와 결합해 보다 입체적인 정치 텍스트 비평을 하려는 방향이다. 한 미디어 학계 관계자는 정치 발언 분석에 대해 “AI가 문장의 논리와 정서를 계량화해 줄 수는 있지만, 책임과 윤리 판단은 여전히 인간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며 “기술과 해석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정치 커뮤니케이션 신뢰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러한 텍스트 분석 AI가 실제 선거와 정책 홍보 환경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 주시하고 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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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텍스트분석#자연어처리#정치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