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모야모야병 장기생존 늘었다”…국내 첫 16년 역학 분석
소아 모야모야병의 장기 추적 역학 데이터가 처음으로 제시됐다. 희귀난치성 뇌혈관질환인 소아 모야모야병에서 유병률은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신규 발생은 정체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치명적 합병증인 출혈성 뇌졸중과 사망률은 뚜렷한 감소세를 보여, 수술 중심의 치료 전략이 장기 생존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향후 정밀 역학 기반의 치료 가이드라인과 다기관 임상 네트워크 구축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 김승기 소아신경외과 교수, 김상완 의생명연구원 연구교수, 서울의대 이중엽 교수, 삼성서울병원 이종석 교수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청구 데이터를 활용해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8세 미만 국내 소아 모야모야병 환자 4323명을 후향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전국 단위로 발생률, 유병률, 수술 치료 비율과 수술법, 장기 예후를 통합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에 따르면 소아 모야모야병의 인구 10만명당 발생률은 2010년 이후 약 2명 수준으로 유지되며 더 이상 뚜렷한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유병률은 2006년 10만명당 9.3명에서 2021년 24.8명으로 2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내 소아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였음을 감안하면, 실제 질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기보다 진단 이후 생존 기간이 길어지면서 환자 집단이 누적된 결과로 해석된다.
모야모야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주요 혈관이 특별한 원인 없이 점차 좁아지는 만성 진행성 뇌혈관질환이다.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면 혈관이 막히는 허혈성 뇌졸중이나, 보상적으로 발달한 비정상 혈관이 터지는 출혈성 뇌졸중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소아는 성장 과정에서 뇌 혈류에 대한 요구량이 크기 때문에 뇌졸중 발생 시 인지 장애, 운동 마비 등 평생 후유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연구팀 분석에서 예후 지표는 전반적으로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사망률은 2007년 1000인년당 3.6명 수준에서, 이후 대부분 연도에 1000인년당 1명 안팎으로 낮아진 뒤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1000인년당 지표는 환자 1000명을 1년 관찰했을 때 발생하는 사건 수를 뜻하는 역학 통계 단위로, 장기간 추세 비교에 활용된다.
전체 뇌졸중과 허혈성 뇌졸중 발생률도 지속적인 감소세가 관찰됐다. 특히 치명적 합병증으로 꼽히는 출혈성 뇌졸중은 1000인년당 2006년 3.3건에서 2021년 2.0건으로 약 40퍼센트 줄었다. 연구팀은 이 수치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감소이며, 국내 진단·수술·재활 시스템 전반의 질적 향상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조기 진단 체계 확립과 표준화된 수술 전략이 출혈성 합병증 예방에 기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수술 치료 패턴에서도 변화가 뚜렷했다. 분석 기간 동안 소아 모야모야병 환자의 대부분은 간접문합술을 적용받았다. 간접문합술은 두피나 근육의 혈관을 분리해 뇌 표면에 접촉시키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혈관이 자라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직접 혈관을 연결하는 직접문합술보다 수술 난도가 낮고 소아 두개골과 혈관 구조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표준 치료로 자리잡았다. 연구에서 전체 수술률은 해마다 증가해 2018년 이후에는 전체 환자의 약 88퍼센트가 수술적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결과는 소아 희귀 뇌혈관질환 관리에서 수술 접근성이 장기 예후를 좌우한다는 국제 연구들과도 궤를 같이한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조기 수술을 받은 소아 모야모야병 환자에서 뇌졸중 재발률과 인지 기능 저하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보고돼 왔다. 한국의 전국 단위 건강보험 데이터 분석은 이러한 해외 단일 기관 중심 연구보다 실제 임상 현실을 더 폭넓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모야모야병이 동아시아 인구에서 상대적으로 흔한 질환으로 보고된다. 일본, 한국, 중국에서 환자 보고가 집중돼 있으며, 특히 일본은 국가 등록 사업을 통해 유병률과 유전적 요인을 추적 중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에서도 보험 청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상시 감시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향후 동아시아 간 비교 연구로 확장될 여지도 크다.
희귀질환 관리 측면에서 공공보험 데이터 활용은 정책 설계의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발생률과 유병률 추이가 명확해지면, 수술 인력과 소아 집중 치료 병상, 재활 인프라를 장기 계획에 맞춰 배분할 수 있다. 또 연령대별, 지역별 의료 접근성 격차를 파악해 권역별 전문센터 재배치나 원격 협진 시스템 도입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소아 모야모야병이 일차 의료에서 뇌졸중 전조 증상을 간과하기 쉬운 질환인 만큼, 보험 데이터를 활용한 위험군 탐지와 조기 의뢰 체계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보험 청구 기반 연구 특성상 영상 소견, 유전자 정보, 세부 임상 증상 등 정밀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한계도 있다. 실제 수술 시점, 정확한 병기, 수술 후 인지 발달 양상까지 반영하려면 전국 다기관 임상 레지스트리 구축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 규정과 연구 데이터 활용 규정을 조화시키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김승기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전국 소아 모야모야병의 발생 양상과 예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점에 의미를 두면서, 축적된 역학 자료를 바탕으로 다기관 임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내 진료 환경에 맞는 표준 치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소아 희귀 뇌혈관질환 관리가 수술 기술뿐 아니라 데이터 인프라, 보험 제도, 장기 추적 시스템을 아우르는 종합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예후 개선 흐름이 실제 현장 표준으로 정착할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