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전기차 배터리 재편”…LG에너지솔루션, 벤츠 대형 수주→유럽 점유율 반전 모색
LG에너지솔루션이 메르세데스-벤츠 AG와 약 2조6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완성차 전동화 전략의 중심부로 다시 한 번 포지셔닝하고 있다. 공급 지역은 북미와 유럽으로, 2028년 3월 1일부터 2035년 6월 30일까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며,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 연결 기준 매출 25조6천196억원의 약 8%에 해당하는 규모로 집계됐다. 회사 측은 세부 조건과 제품 스펙 등 구체 정보는 고객사와의 협의에 따라 비공개 원칙을 유지하겠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물량이 메르세데스-벤츠의 중저가 전기차 모델에 탑재될 배터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 9월, 2027년까지 글로벌 시장에 40종이 넘는 신차를 선보이겠다는 전동화 청사진을 제시하며 엔트리급부터 프리미엄급에 이르는 풀 라인업 확대를 공언한 만큼, 고성능 하이엔드 중심이던 배터리 수급 전략을 보다 폭넓은 세그먼트로 확장하는 흐름으로 읽힌다는 평가다. 최근 양사가 체결한 3건의 대형 계약이 모두 고성능 하이엔드 모델에 들어가는 원통형 46시리즈 배터리로 추정됐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계약에서 중저가 모델용 배터리 포트폴리오까지 아우르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원통형 46시리즈로 대표되는 하이엔드 고성능 배터리에서 기술 리더십을 축적해왔으며, 동시에 표준형 및 중저가형 전기차 모델을 겨냥해 고전압 중니켈 파우치형 배터리와 리튬인산철 배터리 등 다층적인 제품군을 구축해왔다. 특히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현지 생산 능력을 기반으로, 각 지역의 배터리 공급망 재편과 규제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한 점이 이번 수주의 중요한 배경 요인으로 거론된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탄소 규제와 현지 생산 인센티브가 동시에 강화되면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원가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을 겸비한 장기 파트너 확보에 더욱 민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 계약을 계기로 유럽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점유율 회복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수년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공격적인 가격 전략과 생산능력 확대를 앞세워 유럽 고객사를 빠르게 확보하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입지는 압박을 받아왔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연속적인 대형 계약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프리미엄 세그먼트뿐 아니라 중저가 전기차군까지 포괄하는 사실상 전략 파트너 지위를 굳힌다면, 유럽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의 경쟁 구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양사의 협력 관계는 이미 여러 차례의 대형 계약으로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0월 메르세데스-벤츠와 북미 및 기타 지역에서 총 50.5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9월에는 미국과 유럽 지역을 대상으로 각각 75GWh, 32GWh 규모의 추가 계약을 맺었다. 당시 역시 세부 사양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원통형 46시리즈 중심의 공급으로 해석했다. 이번 계약은 그 연장선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전동화 라인업 전반을 아우르는 파트너십의 한 축을 완성하는 단계로 평가된다.
계약에 앞서 지난달 13일,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이 서울 여의도 LG윈타워를 방문해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LG그룹 주요 계열사 경영진과 미래 전장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상징적 장면으로 해석된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이 자리에서 LG와 메르세데스-벤츠가 혁신과 품질,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비전을 공유하고 있으며, 양사의 강점을 결합해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세울 차량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발언과 일련의 대형 계약이 단발성 수주를 넘어, 전기차 플랫폼과 배터리 기술, 전장 부품을 아우르는 장기 동맹의 밑그림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관건은 제품 포트폴리오 운영과 수익성 관리다. 중저가 전기차 세그먼트는 판매량 확대에 유리하지만 가격 압박이 심해 원가 구조 관리와 기술 효율성이 중요하다고 지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이 고전압 중니켈 파우치형과 리튬인산철 배터리, 그리고 원통형 46시리즈를 적절히 배치해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 콘셉트별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셀 원가와 공정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장기 수익성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이 단기 매출 확대를 넘어, 유럽과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메르세데스-벤츠가 공동으로 중국 배터리 업체 견제에 나서는 구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