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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중량까지 공개”…식약처, 외식 데이터 투명성 시험대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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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메뉴의 중량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치킨 중량표시제가 15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면서 외식 산업 전반의 데이터 투명성이 한 단계 더 강화되는 흐름으로 보인다. 그동안 가격과 브랜드 중심으로만 소비가 이뤄졌던 치킨 시장에 중량 데이터가 결합되면서, 향후 배달앱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그램당 가격 비교’ 같은 새로운 소비 패턴이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물가·품질 논란이 잦았던 치킨 시장을 정비하는 첫 관문이자, 외식 조리식품 전반으로 정보 공개 의무가 확장될지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행 법령상 모든 식육과 식육을 원료로 한 조리식품은 원칙적으로 중량 표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치킨 업계를 중심으로 ‘치킨이 작아졌다’는 중량 감소 논란이 거세지면서, 정부가 소비자 요구가 가장 큰 치킨부터 단계적으로 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치킨부터 시작하지만 제도 설계는 다른 육류 기반 조리식품에도 확장 가능한 구조라는 점에서, 외식 정보 인프라를 차례로 정비하는 장기 로드맵의 출발점으로 해석된다.

법적 근거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다. 이 규칙은 식품접객업자가 손님이 보기 쉬운 위치에 가격표를 붙이거나 게시하도록 정하고, 불고기와 갈비 등 식육류 가격은 100그램당 가격으로 표시하도록 규정한다. 조리식품일 경우 조리 전 중량 기준을 쓰도록 하는 점도 명시돼 있다. 닭고기는 소고기와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축산물위생관리법상 식육으로 분류돼 왔지만, 제도 시행 초기에는 주로 생고기를 굽는 형태의 메뉴에 적용돼 치킨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식약처가 이번에 치킨도 닭고기 조리식품으로 보고 중량 표시 대상에 포함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제도 적용 범위가 현실 소비 행태에 맞게 확장되는 셈이다.

 

표시 방식도 일정한 기준을 갖춘다. 닭고기로 만든 모든 치킨 메뉴가 원칙적으로 표시 대상이며, 매장과 배달앱 메뉴에는 최소 중량을 ○○○그램처럼 명시하거나, 닭 한 마리 단위 유통 관행을 고려해 ○○○그램에서 ○○○그램 사이 범위로 제시할 수 있다. 다리나 날개, 봉 등 부분육 메뉴는 4개, 8개와 같은 개수 단위로 판매되더라도 최소 중량 몇 그램인지 숫자를 공개해야 한다. 다만 조각 단위 중심으로 판매돼 그램 단위 측정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경우에는 개수 기준만 표기하는 방식도 허용된다. 반면 튀김 옷 등으로 가공돼 납품되는 치킨너겟이나 콜팝과 같은 제품은 이번 의무화 범위에서 제외된다.

 

중요한 변화는 메뉴판에 닭의 호수만 적는 관행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9호, 10호 같은 내부 유통 용어만 적혀 있어 일반 소비자가 실제 중량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식약처는 소비자가 호수와 그에 해당하는 법정 그램 수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앞으로는 호수와 함께 최소 또는 범위 형태의 그램 수까지 동시에 표기하도록 했다. 이는 실질적인 비교 기준을 제공해 플랫폼 상에서 ‘같은 가격, 다른 중량’에 대한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기도 하다.

 

이번 1차 시행 대상은 10대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와 가맹점이다. BHC, BBQ, 교촌치킨, 처갓집양념치킨, 굽네치킨, 페리카나, 네네치킨, 멕시카나, 지코바양념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등이다. 정부는 2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모든 치킨전문점에 일괄 적용하는 대신 10대 가맹본부 소속 약 1만 2560개 가맹점부터 의무화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대규모 가맹본부는 매뉴얼 개발과 포장재 변경, POS 시스템 개편, 배달앱 연동 등 디지털 작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들 브랜드는 매장 내 메뉴판과 가격표 주변에 중량 정보를 병기해야 하고, 배달앱에서는 매장 정보와 메뉴 상세 페이지에 중량을 표시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동일한 형태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돼, 플랫폼 기반 가격비교 서비스나 개인별 소비 데이터 분석 서비스가 중량 정보를 추가 변수로 활용할 여지가 커질 전망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나 식품 영양 앱에서 칼로리·나트륨 데이터와 함께 ‘1회 섭취 중량’을 자동 계산해 주듯, 외식 플랫폼에서도 치킨 중량과 가격 데이터를 결합해 건강 관리나 가계부 앱과 연동하는 서비스가 등장할 여지도 언급된다.

 

일각에서는 족발과 삼계탕 등 다른 육류 조리식품에는 왜 같은 규칙이 아직 적용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족발과 보쌈, 삼계탕 역시 육류를 원료로 한 대표적 외식 메뉴인데, 중량을 둘러싼 소비자 체감 논란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치킨 중량표시제 정착 상황을 지켜본 뒤, 소비자 요구와 업계 부담을 함께 고려해 다른 조리식품으로 대상을 확대할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단기간에 전 품목으로 의무를 넓히기보다, 소비자와 업계가 수용 가능한 범위를 세밀하게 조정해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신중론이 깔려 있다.

 

디지털 전환 측면에서는 외식 데이터의 구조화라는 점도 눈에 띈다. 지금까지 외식 플랫폼에 쌓인 데이터는 가격, 평점, 배달시간 등이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메뉴별 최소 중량이라는 정량 데이터가 결합된다. 향후 다른 육류 조리식품으로 중량 표시제가 확장될 경우,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이 ‘가격 대비 양’, ‘1인당 적정 중량’ 같은 지표를 활용해 소비자 맞춤형 메뉴 추천을 강화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다만 중량 정보가 지나치게 가격 경쟁만 부추겨, 품질과 조리 기술에 대한 가치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업계에서는 제도 도입 초기 혼선과 비용 부담을 경계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신뢰 회복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온다. 프랜차이즈 본부 입장에서는 포장 박스와 광고물 교체, IT 시스템 수정 등 초기 투자 부담이 적지 않지만, 향후 다른 육류 메뉴나 사이드 메뉴로 정보 공개 요구가 확대될 수 있어 중장기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배달앱과의 데이터 연동 방식, 광고 노출 기준 변경 등 플랫폼 사업자와의 협의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킨 중량표시제를 물가 안정 대책이자 소비자 보호 조치로 보면서, 향후 정량 정보 공개가 외식 품질과 건강 관리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다만 족발과 삼계탕, 보쌈 등 다른 조리식품으로의 확대 여부, 소규모 자영업자에 대한 단계적 적용 방식, 중량 편차 허용 범위 등 세부 설계가 향후 논쟁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외식 산업계는 이번 제도가 시장에 안착해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할지, 아니면 규제 부담만 키우는 조치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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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치킨중량표시제#프랜차이즈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