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명령 거부권 조속히 명문화해야"…국방부 자문위, 군인복무기본법 개정 촉구
군 내 위법 명령을 둘러싼 충돌 가능성을 두고 국방부 자문기구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군인에게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권한을 명확히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방부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 산하 헌법가치 정착 분과위원회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국방관련 헌법가치 정착 방안 세미나를 열고 군인복무기본법 개정 필요성을 집중 거론했다. 이 위원회는 국방부가 내란극복·미래국방 설계를 목표로 운영하고 있는 자문 기구다.

분과위 자문위원인 강성현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세미나 발제에서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 개정을 통해 위법 명령 거부권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현 교수는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에 직무상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문구를 명시하고,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위법 명령 거부권을 담은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은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그러나 세부 기준과 절차를 둘러싼 논의는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자문위 차원에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며 입법 촉구에 나선 셈이다.
강성현 교수는 법 조문에 포함돼야 할 '명백히 위법한 경우'의 기준도 세세히 제안했다. 그는 일반적인 법적 소양을 갖춘 군인이라면 위법임을 인식할 수 있을 것, 명령의 내용이 헌법과 법률 조문과 직접적으로 충돌할 것, 명령 이행 시 중대한 법익 침해가 발생할 것 등의 설명을 법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장에서 장병들이 법적 판단 기준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또한 강 교수는 위법 명령을 거부한 군인에 대한 신고 의무 조항 신설도 요구했다. 그는 군인이 명령을 거부한 경우 상급자나 군인권보호관, 국방부가 지정한 수사기관 등에 지체 없이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군인복무기본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거부 행위가 은폐되거나 지휘계통 내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제도적 통로를 확보하자는 주장이다.
위법 명령 판단과 장병 보호를 위한 별도 장치도 제시됐다. 강 교수는 위법명령 긴급심사위원회를 설치하고, 24시간 긴급법률자문 핫라인을 운영해 군인이 신속히 법률 상담과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위법한 명령을 거부한 군인에 대해선 명령 발령자와의 물리적 분리와 법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복성 인사나 징계에서 장병을 보호할 방패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12·3 사태를 언급하며 제도 정비의 시급성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12·3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법과 제도를 동시에 정비해 군인이 실제로 위헌 명령을 거부할 수 있고, 거부 시 보호받을 수 있는 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서는 위법 명령 거부권 도입이 군 지휘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기존 우려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김종일 오산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거부권 조항 신설로 불복종 사례가 발생해 군의 지휘 체계 및 군사력 약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거부권 행사를 명백히 위법인 경우로 한정해 남용 소지를 배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 문구와 적용 기준을 정교하게 설계하면 지휘권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헌법가치 정착 분과위원회는 군인복무기본법 개정 문제를 시작으로 문민통제 제도, 군사법 제도 등 군 전반에서 헌법가치를 구현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분과위는 관련 논의를 바탕으로 필요한 법령 제·개정 권고안을 순차적으로 마련해 국방부와 국회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자문위 논의를 토대로 위법 명령 거부권과 관련한 제도 개선 방향을 검토할 전망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역시 계류 중인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향후 회기에서 거부권 명문화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