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선보완 후도입 요구 거세다”…민주당 1인1표제, 중앙위 의결 앞두고 속도조절론 확산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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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내 권력 구조를 둘러싼 갈등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당원 사이에서 격돌했다. 정청래 대표가 당원주권 확대를 내세워 추진하는 1인1표제를 두고 제도 보완과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5일 중앙위원회 의결을 앞둔 지도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1인1표제를 주제로 한 당 토론회를 열고 제도 도입 방향을 논의했다. 1인1표제는 권리당원과 전국대의원 표의 가치를 동일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당내 의사결정 권한을 당원 전체로 넓힌다는 취지다. 그러나 토론회에선 영남 등 당세 취약 지역의 대표성 약화, 성급한 추진 절차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토론회에는 조승래 사무총장, 박지원 최고위원, 김영배·김우영·윤종군 의원 등이 토론자로 나섰고, 임오경·강득구·문정복·박지혜 의원 등 현역 의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모두발언에서 1인1표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취약 지역 보호를 위한 보완 방안을 함께 소개했다.

 

조 사무총장은 “1인1표제와 관련해 전국정당을 위한 보완책, 대의원·당무위원 등 핵심 당원들의 역할 강화 등을 순차로 진행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며 “열세 지역의 현실을 고려해 지구당 부활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당원주권 확대라는 큰 방향으로 더 전진하되, 미비한 점은 보완을 함께 강구해나가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토론이 본격화되자 1인1표제 추진 속도를 둘러싸고 이견이 뚜렷이 드러났다.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되, 영남 등 취약 지역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지도부가 내세운 선도입 후보완 기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배 의원은 “의사결정 정족수 조항, 지역 균형 보정 계수 도입, 지구당 부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당세가 취약한 곳의 의사결정 권한이나 참여도를 제한하는 것이 1인1표제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1인1표제가 특정 지역의 영향력을 더 위축시키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윤종군 의원도 “1인1표제를 현재 안대로 처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영남 등 전략 지역의 가중치를 포함한 추가 보완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위가 열리는 5일까지 당내 반대와 우려를 반영한 수정안을 도출하자고 제안하면서, “수정안을 만들지 못할 경우 1인1표제를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 논의는 추후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원들의 반발 수위는 더 높았다. 토론회장에선 ‘민주당에 민주가 없다’, ‘정청래 사퇴하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한 당원은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전국대의원 53.09%가 당헌·당규 개정 반대 성향의 후보를 지지했다”며 “1인1표제를 하려면 내년 8월 전당대회 이후에 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당 지도부가 과거 전당대회 결과와 대의원 민심을 무시한 채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 다른 당원은 “이재명 대통령을 방해하려고 내란 종식도 안 하고 대통령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을 우리가 모를 것 같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청래 대표 체제와 친명계 구도, 차기 대선 구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는 시각이 토론장 밖에서도 확산된 분위기다.

 

민주당 지도부는 5일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1인1표제 도입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을 상정하고 최종 의결을 시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당내 반발이 공개적으로 분출하면서 중앙위 표결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초선 의원들 사이에선 속도조절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전날 만찬 회동을 통해 중앙위 의결을 연기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당내 상황에 대해 초선의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1인1표제 도입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지나치게 급속히 추진하는 데 대한 우려를 당 지도부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선 더민초의 의견 수렴 결과 보고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가 받지 않으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당에선 다양한 경로로 당원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초선의원 간담회 결과가 사전 최고위에 보고돼야 한다는 규정이나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논의 내용을 당 지도부가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도부가 형식 논란을 피하면서도 초선들의 문제 제기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한편, 1인1표제를 둘러싼 논쟁은 정청래 대표의 거취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이건태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당 대표 또는 최고위원이 연임에 도전할 경우 일정한 시한 내에 사퇴하도록 하고, 그 시점을 당헌·당규에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당헌·당규는 대부분 당직자에게 상위직 또는 동일직에 도전할 때 명확한 사퇴시한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 대표·최고위원은 동일직 도전 시 사퇴 시점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제안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1인1표제 도입이 정청래 대표의 연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한 견제 장치로 읽힌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당 대표 선출 구조와 권리당원 영향력 재편이라는 제도 변화가 차기 지도부 경쟁 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중앙위를 통한 의결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토론회와 초선 모임에서 드러난 우려를 얼마나 제도 설계에 반영할지에 따라 당내 갈등 수위가 달라질 전망이다. 중앙위는 1인1표제 도입 여부와 보완 방향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며, 당은 이후 전당대회 일정과 맞물린 추가 제도 개편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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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더불어민주당#1인1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