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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억제로 재발 32퍼센트↓…연세의료진, HR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전략 제시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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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수용체와 HER2가 모두 양성인 조기 유방암 환자에서 난소기능 억제 치료를 병행하면 재발 위험을 3분의 1 가까이 줄일 수 있다는 장기 추적 결과가 제시됐다. 유방암은 국내 여성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특히 젊은 연령대에서 호르몬 수용체와 HER2 인자를 동시에 가진 유형이 적지 않아 치료 전략 고도화 필요성이 커져 왔다. 업계와 의료계는 HER2 양성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 데이터 분석 결과라는 점에서 향후 진료 지침 개정 논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외과 안성귀, 배숭준 교수팀은 전체 유방암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하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 양성 환자군에서 난소기능 억제제 병행 효과를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는 HER2 양성 조기 유방암 수술 후 보조요법으로 사용하는 표적치료제 트라스트주맙의 효과를 입증했던 다국가 3상 임상시험 HERA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후향 분석이다.  

연구팀은 약 40여 개국, 5100여 명이 참여한 HERA 임상 참가자 가운데 호르몬 수용체와 HER2가 모두 양성인 965명의 자료를 추려 분석했다. 이 가운데 501명은 타목시펜 단독 항호르몬 치료를 받았고, 464명은 타목시펜 또는 아로마타아제 억제제 기반 항호르몬제에 더해 난소기능 억제제를 병행한 그룹으로 분류했다.  

 

유방암 약물 치료는 종양 표면과 내부에 존재하는 수용체 상태에 따라 구분된다. 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 음성 환자군에서는 타목시펜이나 아로마타아제 억제제 같은 항호르몬제가 표준이며, 폐경 전 여성에서는 난소기능 억제제를 추가하면 여성호르몬 분비를 보다 강하게 낮춰 재발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호르몬 수용체와 HER2가 모두 양성인 집단에서는 지금까지 HER2 표적 치료와 항호르몬 치료가 병행돼 왔지만, 여기에 난소 기능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전략의 장기 효과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했다.  

 

연구팀 분석 결과, 난소기능 억제제 병행은 장기 예후에서 뚜렷한 차이를 만들었다. 치료 후 10년 동안 암이 다시 발견되지 않고 생존한 비율을 뜻하는 10년 무질병 생존율은 항호르몬제와 난소기능 억제제를 함께 사용한 그룹에서 70.9퍼센트, 항호르몬제 단독 그룹에서 59.6퍼센트로 나타났다. 전체생존율에서도 동시 치료 그룹은 84.7퍼센트, 단독 치료 그룹은 74.0퍼센트로 격차를 보였다.  

 

연구팀은 연령, 종양 크기, 림프절 전이 여부 등 다양한 임상 변수의 영향을 동시에 반영하는 다변량 분석도 수행했다. 그 결과 난소기능 억제제 사용 여부가 독립적인 예후 인자로 확인됐으며, 항호르몬제와 난소기능 억제 치료를 병행한 그룹에서 무질병 생존 측면 재발 위험이 항호르몬제 단독 그룹 대비 32퍼센트 낮게 나타났다. 전체생존율 측면에서도 사망 위험이 38퍼센트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병기 2 이상이거나 조직학적 등급이 가장 공격적인 고등급 종양일수록 난소기능 억제 병행에 따른 이득이 더 두드러졌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재발 위험이 본래 높고 분열 속도가 빠른 종양에서 여성호르몬 차단 강도를 높이는 전략이 종양 성장 신호를 크게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번 연구의 기반이 된 HERA 시험은 HER2 양성 조기 유방암 환자에서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이후 트라스트주맙을 보조요법으로 투여해 재발을 줄이는지를 평가한 대표적인 3상 임상이다. 다국가, 대규모, 장기 추적 디자인 덕분에 HER2 양성 환자군의 실제 임상 경과를 반영하는 고품질 데이터베이스로 평가돼 왔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에서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하위 집단을 추출해 난소기능 억제 병행 효과를 탐색했다.  

 

국제적으로는 HER2 음성, 특히 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 음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난소기능 억제 전략 연구가 다수 보고됐지만, 호르몬 수용체와 HER2가 모두 양성인 환자에 대한 근거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HER2 양성 집단은 표적치료제 도입으로 기본 예후가 개선된 반면, 치료 옵션이 복잡해져 최적 조합에 대한 합의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결과는 HER2 양성 환자에서도 호르몬 의존성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전략이 유효할 수 있음을 대규모 코호트로 보여준 셈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에서 HER2 양성,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난소기능 억제 병행 여부는 향후 국내 진료 지침 구성에 중요한 변수로 부각될 수 있다.  

 

다만 후향 분석 특성상 무작위 배정 전향 임상시험처럼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고, 난소기능 억제제의 부작용과 삶의 질 저하 가능성, 가임력 보존 이슈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은 남아 있다. 난소기능 억제는 조기 폐경과 유사한 상태를 유도해 골밀도 감소, 혈관운동 증상, 심혈관계 위험 변화 등 장기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어, 연령과 질환 위험도를 반영한 세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성귀 교수는 주요 유방암 임상시험이 HER2 음성 환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왔던 한계를 짚으며, 호르몬 수용체와 HER2 모두 양성인 조기 유방암 환자에 초점을 맞춘 이번 분석의 임상적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HER2 양성 환자군에서도 난소기능 억제제 사용이 생존율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음을 대규모 임상시험 코호트로 확인했다며, 향후 젊은 유방암 환자 진료 지침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종합 암 네트워크가 발간하는 미국 종합 암 네트워크 저널 최신호에 호르몬 수용체 및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 난소기능 억제 치료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난소기능 억제 병행 전략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어느 수준까지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향후 추가 전향 연구와 가이드라인 개정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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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강남세브란스병원#난소기능억제제#her2양성유방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