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통합돌봄 키는 재택간호센터…법 시행 앞두고 분주
재택간호 기반 통합돌봄 체계 구축이 초고령사회 대응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내년 3월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의료·요양·돌봄을 집 안까지 끌어오는 재택간호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처럼 방문간호를 허브로 삼아 24시간 대응, ICT 기반 모니터링, 재입원율 감소 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통합돌봄을 단순 복지 확대가 아닌 보건의료 시스템 재설계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간호협회는 10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간호·요양·돌봄 통합체계 구축을 위한 방문간호 국제 심포지움을 열고 한국형 통합돌봄 모델의 방향을 논의했다. 한국은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을 내년 3월 앞두고 있어 제도 시행 전 현장 기반 모델을 서둘러 정교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발제에 나선 다무라 야요히 일본방문간호재단 이사장은 일본이 2000년 개호보험 도입 이후 구축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을 소개하며 재택의료와 재택간호 중심 발전 전략의 의미를 짚었다. 일본의 방문간호 스테이션은 의료행위와 재활, 일상생활 지원을 포괄 제공하는 지역 돌봄 허브로 설계돼 있으며, 24시간 긴급 대응과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환자 관리로 중증환자 재택치료와 임종 지원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재택 기반 통합서비스를 제도화한 일본 사례는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본격 진입하기 전까지 어떤 인력·재원·정보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참고 모델로 평가된다.
국내 상황은 아직 분절 구조가 뚜렷하다.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지원정책개발센터장은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지자체 개별 사업으로 나뉜 방문 서비스 체계가 신청 기준과 이용 창구까지 제각각인 현실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비스 제공 주체와 재정 주머니가 달라 이용자가 스스로 경로를 찾아야 하는 구조여서 실제 현장에서는 사각지대와 중복 서비스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 센터장은 이용자 중심 맞춤형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하며, 서비스 통합을 행정 효율성 논리가 아니라 국민 접근성 향상 전략으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통합돌봄 성과 지표도 단순 공급량이 아닌 재입원율과 응급실 이용 감소, 가족 부양 부담 경감 등 소비자 중심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학계에서는 통합돌봄 체계의 실제 구현 도구로 재택간호센터 모델을 제시했다. 황라일 신한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현재 소규모로 분절 운영되는 방문간호 기관들이 각자도생하는 구조로는 인력 활용과 서비스 품질 관리 모두 한계가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가 제안한 재택간호센터는 방문간호, 방문요양, 재택의료, 지역사회 복지자원을 하나의 창구에서 연계하는 원스톱 체계다. 이용자는 복잡한 신청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일 거점에서 필요 서비스를 연동해 받을 수 있고, 센터는 간호사를 중심으로 의료·요양·복지 자원을 조정하는 기능을 맡는다. 황 교수는 이러한 모델이 초고령사회에서 통합돌봄 완성을 위한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토론에서는 일본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모방하기보다 법체계와 인력 구조, 재원 조달 측면에서 한국형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좌장을 맡은 정형선 국민의료복지연구원 원장은 일본이 한국보다 약 20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만큼 그간 축적된 시행착오와 제도 보완 과정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방문간호 스테이션을 중심으로 한 지역포괄케어 체계가 개호보험 재정과 의료보험 재정,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어떻게 조합해 운영되는지 검토해 한국의 재원 구조에 맞는 조합 방식을 찾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소비자 단체는 서비스 품질과 비용 구조를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통합돌봄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표준화된 서비스 질 관리와 간호 전문성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용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복잡한 절차와 불투명한 비용 구조를 단순화하지 않으면 제도 도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방문간호를 실제 수행하는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정부 차원 지원이 뒤따라야 지속 가능한 재택간호센터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법·제도 측면에서는 간호사 중심 연계·조정 기능의 법적 근거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임은지 법무법인 승인 변호사는 기존 파편화된 방문 서비스의 비효율을 넘어 의료, 요양, 돌봄을 하나로 묶는 돌봄통합지원법 시대를 실질적으로 열기 위해서는 간호사에게 서비스 연계와 조정 역할을 명시적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상태를 상시 관찰하고 의료적 판단과 돌봄 필요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직역이 간호사인 만큼, 이들이 통합 케어 플랜을 조정하는 허브가 돼야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큰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 모델 설계와 재정·인력 제약을 현실 과제로 제시했다. 이수빈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사무관은 방문간호 기능 강화와 다직종 연계를 핵심으로 하는 정부의 지역 기반 통합 돌봄 구상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제한된 예산과 조직 여건 속에서 재택간호 통합센터 모형을 얼마나 빨리 구체화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과 동시에 현장의 혼란을 줄이려면 시범사업을 통한 모델 검증과 거점 센터 지정 기준, 지자체 역할 분담 등을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대한간호협회는 재택간호센터를 한국 돌봄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인프라로 규정했다. 신경림 간호협회장은 재택간호센터 구축을 단순한 제도 신설이 아니라 의료와 요양, 지역복지가 분절된 구조를 통합하는 혁신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간호 인프라를 공공 기반 시설처럼 책임지고 구축하지 않으면 통합돌봄은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간호사 없이는 통합돌봄 완성이 어렵다는 메시지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이 인력 양성과 제도 설계를 동시에 서둘러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재택간호센터를 중심으로 한 통합돌봄 모델이 실제 지역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재정, 인력과 제도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초고령사회 한국형 돌봄 체계의 성패를 가를 분기점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