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수요 급랭”...테슬라·현대차, 판매 역성장→배터리 전략 수정
11월 미국 전기차 시장이 보조금 소멸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은 가운데, 내년 수요 역시 역성장을 피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삼성증권은 11월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42% 감소한 8만4천대에 그쳤다며,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부진과 신차 전략 수정이 중첩되면서 전기차 생태계 전반의 조정 국면이 심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기 수요 위축이 아닌 구조적 둔화의 서막일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1~2년간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전략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증권 조현렬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9월을 끝으로 미국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종료된 이후 10월에 이어 11월까지 수요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9월까지 보조금 수취를 위한 선수요가 집중된 후유증이 현실의 수치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0~11월 전기차 판매 실적은 9월 대비 약 50% 급락한 수준으로 집계됐으며, 조 연구원은 현재의 수요 수준이 향후 몇 개월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제조사별로 보면 테슬라가 3만5천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24% 감소했으며, 미국 전통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GM은 각각 5천715대, 5천708대를 파는 데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52%, 64%의 뼈아픈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보조금 소멸이 단지 신생 전기차 브랜드가 아니라 기존 내연기관 강자의 전기차 전환 전략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금리와 충전 인프라 불균형, 중고차 가치 불확실성 등 복합 요인이 전기차 수요를 제약하는 가운데, 보조금 축소가 촉매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 완성차 업체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기아는 배터리 전기차 판매가 급락했음에도 플러그인하이브리드 판매 증가가 방어막 역할을 하면서, 전체 전기차 계열 판매가 전년 대비 29% 감소한 5천393대에 그쳐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으로 평가됐다. 현대차는 3천946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47% 감소했다. 혼다는 849대 판매에 그치며 89%라는 극단적인 역성장을 기록해, 미국 전기차 시장 내 일본 브랜드의 존재감이 극도로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전통 강자와 신흥 강자를 가리지 않는 수요 위축은, 특정 브랜드의 일시적 부진이 아니라 전기차 수요 구조 자체의 재조정을 의미하는 신호로 읽힌다.
수요 급랭은 신차 개발 일정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 연구원은 2026년을 목표로 잡았던 주요 전기차 신차 스케줄의 폐기나 지연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 사례로 GM의 전기차 신차 라인업이 거론됐다. GM은 당초 2026년에 6개 신차 출시를 계획했으나 이 계획을 전량 폐기했으며, 2025년 말 출시 예정이던 1개 차종만 출시 일정을 2026년으로 미루는 수준으로 수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아 역시 전기차 전략 차종으로 주목받던 EV4의 출시를 무기한 연기해, 공격적이던 글로벌 전기차 확대 계획을 한걸음 물러서는 모양새가 됐다.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 수정은 곧 배터리 수요 구조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 수요 위축과 신차 일정 재조정 속에서 완성차와 배터리업체 간 합작 공장들은 생산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는 국면에 들어섰다. 조 연구원은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용 배터리 대신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로의 전환을 검토하거나 실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공장을 설립한 스텔란티스가 전형적인 사례로 지목됐다. 스텔란티스는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수요 둔화를 인식하며, 합작 공장 생산 물량 일부를 ESS용으로 재배치하는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평가된다.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전환 전략은 전기차 침체 국면에서 배터리 업체의 가동률을 방어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화라는 중장기 수요를 선점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매년 높아지는 미국 전력 시장에서 ESS 수요는 정책과 무관하게 장기 성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조 연구원은 내년에는 스텔란티스를 시작으로 더 많은 완성차 업체가 합작 공장의 일부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중심에서 에너지 인프라 중심으로 배터리 수요의 축이 일부 이동하는 흐름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향후 미국 전기차 시장의 회복 경로는 정책 재설계와 이자율 환경, 인프라 투자 속도에 의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보조금 축소가 수요의 일시적 공백을 만든 상태에서 금리 인하와 충전 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수요 회복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완성차 업체는 단기적으로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전기차 투자 속도를 조정하고, 배터리 업체는 ESS와 전기차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을 강화할 전망이다. 미국 11월 판매 부진은 하나의 분기 통계를 넘어, 전 세계 전기차 산업이 성장 일변도에서 전략적 균형 추구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