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치매노인 학대 포착한 홈캠…돌봄기술, 감시로만 쓸건가

이소민 기자
입력

치매를 앓던 80대 노모를 수개월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50대 아들의 폭행 장면이 집 안 홈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가정용 영상기기가 학대 행위의 핵심 증거로 쓰이면서, 고령사회에서 디지털 돌봄 기술을 어디까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단순 감시에 머문 홈카메라가 사전 예방과 공적 돌봄 연계 기능을 갖추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보고 있다.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자택에서 자신의 어머니 B씨의 뺨을 여러 차례 때리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다음 날인 14일 오전 11시경 A씨는 어머니 상태가 이상하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이 집 안에서 숨져 있는 B씨를 발견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자택 내부에 설치된 홈카메라 한 달치 영상이 확보됐고, 반복적인 폭행과 학대 정황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홈카메라에 기록된 영상에는 A씨가 모친의 뺨을 때리거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10여 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여 부양해왔지만 식사와 약을 잘 챙기지 않는다며 화가 나 폭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용인동부경찰서는 노인복지법 위반과 존속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과 사망 간 인과관계를 부검으로 확인하겠지만, 폭행 시점과 사망 시점 간격이 크지 않고 홈카메라 영상에서 학대가 반복된 정황이 나온 만큼 사망 원인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확보한 영상을 토대로 학대 기간과 범위를 추가로 조사하고, 구속영장 신청도 예고한 상태다.

 

IT·바이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가정 내 돌봄 환경에 투입된 디지털 기기가 왜 실시간 보호나 개입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짚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현재 보급된 홈카메라는 보안과 육아, 반려동물 관찰 등 목적으로 사용되며, 영상 저장과 원격 확인 기능에 치우쳐 있다. AI 기반 동작 인식과 이상행동 탐지 기능을 일부 탑재한 제품이 등장했지만, 실제로 노인 학대나 치매 환자의 위험 행동을 자동 인지해 지역 돌봄센터나 가족, 의료기관과 즉시 연계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치매 돌봄 분야에서는 카메라 영상에 더해 심박, 움직임, 배회 패턴 등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 센서, 이를 분석하는 AI 알고리즘을 결합한 정밀 모니터링 기술이 개발되는 중이다. 예를 들어 침대 센서로 야간 침상 이탈을 감지하거나, 가속도 센서로 넘어짐과 폭력적 움직임을 구분해 경보를 보내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가정용 기기 상당수는 사용자의 사생활 우려와 비용 부담, 제도 부재 탓에 단순 영상 저장 기능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원격 모니터링과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경쟁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웨어러블 센서와 카메라, AI를 결합해 낙상뿐 아니라 폭력 패턴까지 탐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학습데이터로는 실제 가정환경에서 수집된 움직임 데이터와 모션 캡처 기반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병행 활용되며, 이상행동 감지 정확도를 기존 규칙 기반 시스템보다 크게 높였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치매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ICT 기반 돌봄 서비스가 시범 단계에 머물러 있고, 가정 내 영상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에 대한 법적·윤리적 논의도 정교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개인정보 보호와 가족 간 사생활 침해 우려가 얽혀 있어, 실시간 모니터링 데이터를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통합 돌봄센터에 자동 연계하는 구조를 설계하기 쉽지 않다. 특히 영상 속 가족 구성원을 어디까지 의료·복지 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 수사기관과의 연계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

 

전문가들은 치매와 노인 장기요양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디지털 돌봄 기술을 단순 감시 도구가 아닌 사회안전망의 일부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폭언·폭행과 같은 학대 상황에서 특이 음성 패턴과 신체 움직임, 환자의 반응을 종합 분석해 위험 점수를 산출하고,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지자체, 방문요양기관, 가족에게 단계적으로 경보를 보내는 구조도 거론된다. AI가 오탐지를 줄이기 위해 학습 데이트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보장할지도 핵심 쟁점이다.

 

규제 당국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원격 모니터링 솔루션이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에 해당할 경우,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동시에 노인복지법과 장기요양보험 제도,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현재처럼 가족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홈카메라 영상에 사후적으로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학대 예방과 조기 개입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친화 기술 분야 연구자는 치매 환자 돌봄에 쓰이는 디지털 기기가 피해 입증 도구에서 한 단계 나아가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는 감지 기술이자 공공 돌봄 시스템과 연결되는 관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계는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결합한 학대·이상행동 탐지 기술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제도와 윤리 논의가 따라가지 못하면 현장 도입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결국 산업계와 정부, 지역 돌봄체계가 함께 디지털 돌봄 기술의 역할과 책임 범위를 재설계할 수 있을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령사회 대응 방향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이소민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홈카메라#치매돌봄#디지털헬스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