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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이 만난 가상 대한제국…IP 전시로 확장된 디지털유산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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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IP와 문화유산이 결합한 디지털 기반 체험 전시가 오프라인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데브시스터즈와 국가유산청이 공동 기획한 쿠키런 사라진 국가유산을 찾아서 특별전은 만약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았다면 대한제국과 서울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지 묻는 상상력을 디지털 아트와 게임 세계관으로 구현했다. 업계에서는 인기 게임 IP를 활용한 이번 시도가 문화유산과 디지털 콘텐츠의 융합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전시는 제2회 국가유산의 날을 기념해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 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데브시스터즈의 대표 IP인 쿠키런이 있다. 마녀의 오븐에서 탈출한 용감한 쿠키와 동료들이 대한제국의 미완의 꿈을 되찾는 서사로 전시 전체를 엮었다. 곽희원 국가유산청 학예연구사는 국가유산을 보다 친숙하게 전달하기 위해 대중성이 높은 게임 IP와의 협업을 선택했다며, 역사 교육과 문화 체험을 동시에 도모하는 방향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시장 곳곳에서는 게임 캐릭터 오디오가 도슨트 역할을 대신하며 이용 연령대를 넓힌다.

첫 번째 공간에서는 황제국을 선포한 대한제국의 상징 유물들이 쿠키 캐릭터와 함께 배치된다. 고종 황제 즉위식을 재현한 구역에는 황색 비단으로 제본된 대례의궤를 비롯해 황색 가마와 깃발이 전시돼 황제국 체제의 시각적 상징성을 강조한다. 관람 동선은 경운궁 현판을 지나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당시 궁 전체를 집어삼킨 화재를 일러스트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전통 공예기술과 게임 IP의 결합도 더해졌다. 국가무형유산 선자장이 제작한 바람궁수 쿠키의 선자는 데브시스터즈 이은지 CIPO가 직접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됐다. 이 작품은 덕수궁 대화재를 되돌린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해 수호자 캐릭터가 부채를 흔들어 불을 끈다는 설정을 시각화했다. 디지털 캐릭터가 전통 공예품 디자인의 모티프로 사용된 사례라는 점에서 IP 활용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시의 핵심은 세 점의 대형 상상화 시리즈다. 첫 번째 작품 덕수궁 다시 피어난 황제의 꿈은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았다면 남아 있었을 덕수궁의 원형과 확장된 궁역을 한 화면에 담았다. 중층 중화전과 바로크식 정원, 원수부 등 당시 대한제국이 지향했던 근대 황제국의 공간 구성을 황금빛 프레임 안에 재구성했다. 곽 학예연구사는 황제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황금색 공필화 기법을 차용했고, 화면 곳곳에 생활하는 쿠키 캐릭터를 배치해 관람 재미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상상화 칭경예식 새 시대를 열다는 실제로는 열리지 못한 대규모 국가 의전을 다섯 폭 병풍 형식으로 재해석했다. 돈덕전에서 계획됐던 외국 공사단 접견, 연회, 열병식 등을 쿠키 캐릭터들이 수행하는 장면으로 그렸고, 한국 전통 회화와 서양식 표현 방식을 결합해 당시 대한제국의 국제 교류 의지를 시각적으로 제시했다. 실제 유물과 건축, 의식 절차를 바탕으로 세밀한 고증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기록성과 상상력을 동시에 추구한 셈이다.

 

세 번째 작품 꺼지지 않을 희망의 빛은 20여 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대형 도시 상상 지도다. 대한제국 시기의 한성을 기반으로 하되,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이룬 가상 서울의 모습을 오늘날 도시 풍경과 중첩해 표현했다. 데브시스터즈 조길현 대표는 서울 사대문과 사소문, 경복궁과 덕수궁, 창경궁, 종묘 등 핵심 유적은 물론 현재는 사라진 건축물까지 조사해 그림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도성 안은 대한제국의 수도로, 도성 밖은 현대 서울의 모습으로 구성해 시간적 겹침을 강조했다.

 

이 상상 지도에는 500종이 넘는 쿠키 캐릭터가 각자의 성격에 맞는 장소에 배치됐다. 반포 한강공원에서 라면을 먹는 캐릭터, 올림픽공원에서 공연을 여는 캐릭터, 성수동과 강남, 홍대를 활보하는 캐릭터 등 게임 세계관과 실제 도시 지형이 맞물린 구성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가로 27미터 규모의 LED 미디어월에 낮과 밤 버전으로 구현돼, 고해상도 대형 디스플레이와 게임 아트를 결합한 도시 미디어아트 형태로 재탄생했다. 야간 서울의 빛을 별도 버전으로 제작한 만큼, 디지털 콘텐츠 제작비와 작업 공수가 상당했지만 도시 이미지를 새로 제시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디지털 IP가 현실 세계 문화유산 복원 작업과도 연결된 사례를 포함한다. 말미에 배치된 대한국새 복원 프로젝트는 데브시스터즈가 제작을 지원하고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김영희 옥장이 참여했다.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제작된 원본 대한국새는 일제에 반출됐다가 한국전쟁 중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이번 전시에서 고증 과정을 거친 복원본이 처음 공개됐다. 조 대표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새가 사라진 상황 자체가 아쉽다며, 민간 기업이 복원과 기증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문화유산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미디어 활용은 자연유산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천연나무 쿠키가 600년 수령을 지닌 정이품송을 회복시키는 과정을 그린 미디어아트는 바닥과 벽면을 동시에 활용해 사계절 변화와 생명력 회복을 영상으로 구현했다. 관람객은 주변을 둘러싼 디스플레이 속에서 나무가 다시 자라나는 장면을 체험하며 자연유산 보존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전시를 게임 IP 기반 디지털 콘텐츠가 국가 유산 정책과 만난 사례로 본다. 인기 캐릭터와 미디어월, 오디오 도슨트 등 인터랙티브 요소를 활용해 문화유산 접근성을 높였고, 상상 속 대한제국이라는 가상 역사 시나리오를 통해 청소년층에게 근현대사 관심을 환기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다. 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오디오 도슨트와 모바일 리플렛, 전시 도록도 별도 비용 없이 제공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협업 모델이 향후 메타버스, 게임 엔진, XR 기술 등과 결합되면 국가유산의 디지털 트윈 구축과 가상 전시 플랫폼으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고 본다. 동시에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하기 위한 고증 과정과 공공기관의 검증 체계가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결국 디지털 기술의 속도만큼이나 공공성 확보와 교육적 균형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게임과 IP 기반 디지털 전시가 실제 문화유산 정책과 어떻게 접점을 넓혀 갈지 주시하고 있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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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시스터즈#국가유산청#쿠키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