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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AC6 겨냥 CKD513…종근당, 퇴행성뇌질환 정조준 주목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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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뇌질환 치료 패러다임을 노리는 국산 신약 후보가 비임상 단계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쌓고 있다. 종근당이 개발 중인 HDAC6 선택적 저해제 CKD513이 타우병증 동물모델에서 축삭 수송 회복과 인지 기능 개선을 동시에 입증하며 차세대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 전략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비임상 성과와 국가신약개발사업 연계를 향후 글로벌 기술이전과 임상 가속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종근당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2025 미국 신경과학학회에서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 후보물질 CKD513 비임상 연구 결과를 포스터 형태로 공개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발표는 타우 단백질 비정상 축적을 특징으로 하는 타우병증 동물모델에서 얻은 유효성 데이터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CKD513은 세포 속 미세소관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축삭 내 물질 수송을 방해하는 효소 HDAC6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물질이다. 미세소관은 신경세포의 구조와 수송을 지탱하는 미세한 골격 단백질로, 여기가 안정돼야 신경세포가 정상적으로 신호를 전달한다. 종근당은 CKD513이 미세소관 안정성과 축삭 수송을 되살려 신경세포 기능을 직접 회복시키는 새로운 기전의 후보물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기존 HDAC6 저해제들이 뇌혈관장벽을 충분히 통과하지 못해 효과 발현에 한계를 보여온 것과 달리, CKD513은 뇌 내 약물 투과도를 크게 높인 것이 특징으로 소개됐다. 종근당은 이 물질을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타우병증, 말초 신경이 서서히 망가지는 유전성 신경병 샤르코마리투스 등을 표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타우병증은 뇌 신경세포 안에서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과인산화되고 응집되면서 축적되는 질환군을 뜻한다. 이렇게 비틀리고 엉긴 타우가 축적되면 축삭 수송이 망가지고 시냅스 기능이 떨어져 결국 인지 저하로 이어진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포함한 여러 퇴행성 신경질환의 근본 병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어, 타우 병리를 직접 겨냥한 치료제 개발 경쟁이 세계적으로 치열한 상황이다.

 

종근당에 따르면 비임상 시험에서 CKD513은 HDAC6에 대한 높은 선택성을 보여 다른 히스톤 탈아세틸화효소에 대한 비특이적 억제를 줄이면서도, 뇌 안으로 들어가는 투과성이 우수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타우 단백질이 과도하게 발현된 세포모델과 동물모델에서 깨진 축삭 수송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는 결과도 관찰됐다.

 

행동평가에서는 타우병증 동물에서 손상됐던 인지 기능과 기억력이 개선됐고, 장기기억 형성의 생리적 기초로 꼽히는 장기강화 현상 LTP 측정에서도 신경세포 기능이 대조군에 가깝게 회복된 것으로 보고됐다. 종근당은 이런 데이터가 단순 증상 완화가 아니라 신경세포 구조와 기능을 동시에 겨냥하는 기전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퇴행성 신경질환 영역에서는 아직까지 병의 진행 자체를 근본적으로 늦추거나 역전시키는 치료제가 제한적이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대부분이 아밀로이드 단백질 제거에 집중해온 것과 달리, CKD513은 미세소관과 축삭 수송 회복에 방점을 찍은 HDAC6 타깃 전략으로 차별화를 노린다. 이런 접근은 타우병증과 CMT 같은 축삭 기반 질환 전반에 확대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타우와 미세소관, HDAC6를 둘러싼 신약 경쟁이 본격화돼 있다. 미국과 유럽 몇몇 바이오텍이 HDAC6 저해제를 중심으로 임상에 진입했지만, 뇌 침투성과 독성, 유효성에서 뚜렷한 성과를 제시하지 못해 개발 전략 재조정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종근당이 뇌 투과도를 강화한 CKD513을 앞세워 차별성을 입증할 경우,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틈새를 공략할 여지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제와 개발 측면에서 CKD513은 최근 국가신약개발사업단 KDDF 국책과제로 뽑히며 전임상 연구비를 지원받게 됐다. KDDF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범부처 국가 신약개발 프로그램으로,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초반 단계까지 단계별로 자금을 지원한다. CKD513은 이 지원을 기반으로 독성시험과 약동학 평가 등 전임상 패키지를 정교화해 내년 말 임상 1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제는 장기간 투약과 고령 환자군 중심이라는 특성상 안전성 검증이 특히 엄격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미국 식품의약국은 최근 몇 년간 알츠하이머 항체치료제에 대해 조건부 허가와 사후 데이터 요구를 병행하는 등 리스크 관리 강도를 높여왔다. HDAC6 저해제도 장기 투약 시 말초조직 영향과 면역 관련 부작용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이어서, CKD513 역시 초기 임상에서 안전성 신호 관리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종근당 관계자는 HDAC6 억제 플랫폼 기술의 가능성을 거론하며 타우병증과 샤르코마리투스 모델에서 관찰된 신경세포 기능 개선 효과를 바탕으로 신경계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학계 안팎에서는 CKD513이 임상 단계에서도 뇌 침투성과 기능 개선 효과를 재현할 경우, 국산 퇴행성 신경질환 치료제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CKD513 비임상 성과와 KDDF 국책과제 선정을 계기로 종근당의 뇌질환 파이프라인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자본, 규제가 교차하는 퇴행성 신경질환 시장에서 신약 후보가 실제 치료 옵션으로 자리 잡으려면 장기 임상 데이터와 글로벌 파트너십이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결국 신경계 신약 개발에서도 과학적 혁신과 임상 현실성, 제도적 뒷받침 간 균형이 새로운 성장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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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근당#ckd513#hdac6저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