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교 도움 기대해 선물했다"…윤영호, 김건희·여야 인사 상대 금품 진술 파문

권하영 기자
입력

여야를 둘러싼 금품·로비 의혹과 통일교의 정치권 접촉 논란이 맞물리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영호가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선물을 전달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 여권 인사와 더불어민주당 측에도 조직적 접근을 시도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하면서 정치권이 긴장하는 분위기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우인성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업무상 횡령 등 혐의 사건 공판에서 피고인 신문 과정에 나서 자신의 금품 제공 경위를 상세히 밝혔다. 그는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지시에 따라 김건희 여사에게 샤넬 가방과 그라프 목걸이를 전달하려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개인 이득 목적은 부인했다.

윤 전 본부장은 "김 여사에게 샤넬 가방과 그라프 목걸이를 전달하려 한 것은 맞다"고 한 뒤 "한학자 총재의 지시를 이행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적인 이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며 "영부인과 원만한 관계로 통일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고 강조했다. 자신에게 적용된 업무상 횡령 혐의와 관련해서도 통일교 교단 자금을 빼돌린 것이 아니라 교단 발전을 위한 목적이었다며 횡령이 성립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통일교 교단 행사였던 한반도 평화서밋을 앞두고 여야를 모두 상대로 접촉을 시도했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고 말하고, "평화서밋 행사를 앞두고 현 정부의 장관급 네 분에게 어프로치했고, 그 중 두 명은 한학자 총재에게도 왔다 갔다"고 말했다. 평화서밋 행사에서는 통일교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의 면담을 주선한 것으로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그는 또 수사 단계에서 특검에 민주당 측 지원 정황을 진술했다고 밝혔다. 윤 전 본부장은 "국회의원 리스트도 말씀드렸다"고 말한 뒤 "면담할 때 수사보고서에 충분히 말했다. 한쪽에 치우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통일교 한 간부가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측에 접근하려 했었다는 내용의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언급도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금품 제공 진술도 재판 과정에서 다시 거론됐다. 윤 전 본부장은 특검팀과 면담하며 당시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 2명에게 각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고, 이 내용이 수사보고서에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들이 경기도 가평군 통일교 본산인 천전궁을 방문해 한학자 총재를 만난 뒤 돈을 받아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식 피의자 신문이 아닌 비공식 면담 과정에서 나온 언급이라 수사보고서 형태로만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의 이 같은 진술과 관련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검 측은 "수사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밝히며 개별 진술의 사실관계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은 통일교의 접촉 시도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선 직전까지 이어진 정치·종교 결탁 의혹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최측근이자 세계본부장으로, 교단 소유 자금 집행을 총괄하는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2022년 건진법사로 불리는 전 모 씨를 매개로 김건희 여사에게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등을 여러 차례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는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개발사업 지원, 통일교의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 교단 주요 현안을 성사시키려는 목적에서 금품을 제공했다는 진술도 확보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토대로 오는 10일 변론을 종결하고 결심 공판을 열기로 했다. 당초 재판부는 이날 결심 공판을 진행할 방침이었으나, 검찰이 제출한 새로운 녹취서를 검토해야 한다는 윤 전 본부장 측 변호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정을 한 차례 연기했다. 결심 공판에서는 검찰의 구형과 피고인 측 최후진술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사건은 통일교와 정치권의 접촉 양태, 영부인과의 관계 설정 방식 등 민감한 쟁점을 포괄하고 있어 향후 판단에 따라 여야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법원은 변론 절차를 마무리한 뒤 관련 증거와 진술의 신빙성을 검토해 선고 일정을 정할 계획이며, 정치권은 재판 결과와 특검 수사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하영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윤영호#김건희#통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