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법부가 내란세력 방패막이 자처”…법사위, 내란전담재판부·법왜곡죄 강행 의결

오태희 기자
입력

정치권의 전면 충돌 속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법왜곡죄 신설안 등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처리했다. 고위 법조인에 대한 수사 권한을 확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까지 한꺼번에 밀어붙이면서, 야당과의 정면 대치가 향후 본회의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법사위는 3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12·3 계엄 사태와 관련한 내란 사건을 전담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과 형법 개정안, 공수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표결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다 회의장을 이석했고, 범여권 단독 표결로 법안이 통과됐다.

특별법 정식 명칭은 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대한 특별법안이다. 이 법안은 1심과 항소심 모두에 2개 이상의 내란전담재판부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또 내란 관련 영장 사건만을 담당하는 내란전담영장판사 제도를 새로 두도록 했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와 영장전담법관을 추천할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 법무부 장관,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인사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추천위원회는 구성 후 2주 안에 전담재판부와 영장 전담을 맡을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 가운데 최종 임명하도록 했다.

 

구속 기간도 늘어난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구속 기간을 최대 6개월로 제한하고 있지만, 특별법은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 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내란범에 대한 사면, 복권, 감형 등을 제한하는 조항도 포함돼, 재판 이후 형 집행과 정치적 사면 절차까지 강하게 묶는 구조가 마련됐다.

 

법사위는 형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했다. 개정안에는 판사·검사 등 수사기관 종사자가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법을 왜곡하거나 사실관계를 현저히 잘못 판단해 법을 왜곡 적용한 경우 처벌하는 법왜곡죄가 신설됐다. 처벌 수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규정됐다.

 

간첩죄 적용 범위도 확대된다. 기존 형법은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만 처벌 대상으로 했으나, 개정안은 대상 국가나 단체를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혔다. 이에 따라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해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 누설, 전달, 중개하거나 그 행위를 방조한 경우 간첩죄가 적용된다. 여당 측은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명시적 적대관계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기밀 해외 유출을 차단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공수처법 개정안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등이 저지른 모든 범죄를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보다 훨씬 넓은 범위로 사법·검찰 고위직을 직접 수사 대상으로 삼는 셈이라, 사법개혁과 권력기관 견제라는 명분과 함께 사법부에 대한 압박이라는 논란도 맞물릴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심사 과정부터 강하게 반발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법왜곡죄 신설 등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청했지만, 조정위 의석 구도가 범여권에 유리한 만큼 저지에 실패했다.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3명, 조국혁신당 1명, 국민의힘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조정위에서 위원 6명 중 4명 이상이 찬성하면 즉시 상임위 의결이 가능한 구조여서, 야당의 지연 전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안건조정위 논의 과정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겨냥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나 의원은 법안이 판사 교체를 노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가 내란 관련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맞받았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법원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례를 언급하며 "사법부가 내란세력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있다. 국회는 더이상 이를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특정 사건 판결을 정면 비판하며 입법을 통한 견제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여야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둘러싸고 사법부 독립과 정치적 책임 사이에서 첨예하게 갈렸다. 민주당과 범여권은 12·3 계엄 사태와 관련된 내란 사건을 공정하고 집중적으로 심리하기 위한 장치라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특정 사건과 판사를 겨냥한 입법이라며 위헌 소지가 크다고 반발했다. 법왜곡죄와 공수처 수사범위 확대를 두고도, 여당은 사법권력에 대한 견제라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판·검사를 겨누는 정치 수사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날 법사위 의결로 12·3 계엄 사태를 둘러싼 공방이 본회의와 헌법재판소, 나아가 차기 총선 정국까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내란범 사면 제한과 장기 구속 가능 조항 등은 향후 정권 교체 이후 사면권 행사와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법사위를 통과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형법 개정안, 공수처법 개정안을 이달 중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표결 저지와 함께 위헌 소송 제기 등을 검토하며 강경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여, 국회는 내란 수사와 사법개혁 이슈를 둘러싸고 한동안 거센 충돌을 이어갈 전망이다.

오태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내란전담재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