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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물과 차가운 바람 사이”…겨울 속초에서 찾는 느린 휴식의 시간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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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를 보러 속초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여름 피서지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천천히 쉬어가는 겨울의 일상이 됐다. 파도 소리와 온천의 수증기가 뒤섞이는 이 도시는, 계절의 온도를 바꾸기보다 내 하루의 속도를 바꾸게 만든다.

 

요즘 여행 커뮤니티에는 설악산 자락의 온천과 동해를 한 번에 즐겼다는 속초 인증이 자주 올라온다. 눈이 소복이 쌓인 산을 배경으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노천탕 사진, 겨울 바다를 뒤로하고 서 있는 케이블카 탑승 인증샷, 꽈배기와 떡볶이를 한 상 차려 놓은 분식집 후기까지, 겨울 속초는 어느새 “조용히 쉬었다 오기 좋은 곳”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가족 단위 여행자뿐 아니라 혼자 짧게 다녀오는 ‘1박 2일 리셋 여행지’로도 자주 언급된다.

출처=한국관광공사 영랑호
출처=한국관광공사 영랑호

이런 변화는 선택하는 여행의 결이 달라졌다는 신호처럼 읽힌다. 예전에는 볼거리와 놀이시설이 가득한 성수기 휴양지에 사람들이 몰렸다면, 지금은 계절이 한층 느껴지는 공간에서 몸을 덥히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 지점에서 속초의 겨울은 동해의 푸른 바다와 설악산의 설경, 그리고 소박한 한 끼가 어우러지는, 속도와 온도가 낮은 여행을 제안한다.

 

설악산 자락에 자리한 한화리조트 설악 워터피아는 이런 겨울 여행의 출발점이 되곤 한다. 사계절 내내 온천수를 이용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 날이 차가워질수록 찾는 발걸음이 오히려 더 늘어난다. 실내 풀장과 슬라이드는 아이들에게는 놀이 시간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몸을 풀며 수다를 나누는 작은 휴식 공간이 된다. 무엇보다 인기를 끄는 곳은 야외 노천탕이다. 눈 쌓인 설악산 능선을 바라보며 뜨거운 물에 몸을 맡기면, 얼굴로는 차가운 겨울 공기가 스치고, 어깨 아래로는 온천의 열기가 번져 간다. 방문객들은 “수증기 너머로 산이 열리는 순간, 바쁜 일상이 잠시 정지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표현한다.

 

실제로 기자가 상상해 본 겨울의 워터피아 노천탕 풍경은 유난히 대비가 선명하다. 물안개는 자꾸 위로 솟구치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나뭇가지에는 눈이 얹혀 있다. 머리카락 끝에 맺힌 물방울이 찬 공기에 금세 식는데도, 발끝은 뜨거운 물에 잠겨 움직일 생각이 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만큼 겨울 온천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긴장을 먼저 풀어 준다.

 

설악 케이블카는 또 다른 방향에서 겨울 속초를 기억하게 한다. 권금성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 오르면, 유리창 밖으로 설악산의 겨울이 서서히 펼쳐진다.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설 때쯤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말수를 줄이고 바깥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바람이 만들어낸 설원의 무늬와 암벽 사이사이를 타고 흐르는 흰 눈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그림 같다. 정상에 다다르면 멀리 동해 바다가 가늘게 빛을 뿜고, 날이 맑은 날에는 그 파노라마가 아득할 만큼 펼쳐진다. 한 여행객은 “찬 바람을 맞으며 산과 바다를 한 번에 바라보는 순간,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렇듯 대자연의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속초 시내로 내려와서는 작은 분식집 한 곳이 또 다른 온기를 건넨다. 속초 중앙동의 코끼리분식은 꽈배기와 떡볶이로 잘 알려진 곳이다. 길게 줄지어 걸린 꽈배기가 기름기 없이 바삭하게 빛나고, 갓 튀겨낸 반죽에서 은은한 향이 퍼진다. 그 옆에서는 새빨간 양념을 두른 떡볶이가 자글자글 끓고 있다. 추운 길을 걸어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 공간은 그 어떤 레스토랑보다 든든한 피난처가 된다. 누구는 꽈배기를 한 입 베어 물며 “겨울이면 이상하게 이런 달콤한 기름 냄새가 더 그리워진다”고 느끼고, 또 다른 누구는 매콤달콤한 떡볶이 한 그릇에 “이만하면 오늘 하루는 잘 버텼다는 안도감이 생긴다”고 표현한다.

 

여행지에서 분식집을 찾는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대충 때우는 한 끼’가 아니다. 짧은 시간 머무는 도시에서 가장 일상적인 음식을 고르는 행위는, 관광지가 아닌 그곳의 생활 온도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과 닿아 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내는 분식집 한 곳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속초를 떠올릴 때 설악산과 바다뿐 아니라 “그때 먹었던 따끈한 떡볶이”를 함께 떠올리며 도시 전체를 더 다정하게 기억한다.

 

조용히 걷고 싶은 오후에는 영랑호가 어울린다. 속초시 장사동에 자리한 이 호수는 설악산의 웅장한 모습이 수면에 고스란히 비치는 곳이다. 겨울이 되면 호수 둘레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더욱 고요해진다. 얼어붙지는 않았지만 한층 차분해진 물 위로 설악의 설경이 그림처럼 드리워지고, 곳곳에 서 있는 나무들은 잎 대신 겨울 빛을 머금은 채 서 있다. 사람들은 말없이 호숫가를 거닐며, 물결이 아닌 자신의 생각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겨울 햇살이 낮게 내려앉는 오후, 영랑호의 수면 위에는 작은 반짝임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멀리서 보면 잔잔한 호수일 뿐인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미세한 물결이 햇빛을 받아 부서지고 있다. 이 풍경 앞에서 한 시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는데도, 돌아오는 길에 마음 한쪽이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여행지에서 굳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시간을 스스로 허락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여행 방식을 ‘온도 낮춘 휴식 여행’이라 부른다. 많은 것을 보고 소비하기보다는, 익숙한 자연과 소박한 음식, 짧은 산책을 통해 자신의 리듬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같은 겨울 속에서도 차갑게만 느껴지던 계절이, 뜨거운 물과 따뜻한 분식, 고요한 호수 산책과 만나며 새로운 표정을 드러낸다. 겨울 속초가 주는 매력은 화려한 축제가 아니라, 그 계절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도 몸과 마음이 얼지 않도록 데워 주는 온기에 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겨울엔 나가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속초 사진 보니 당장 코트 챙기고 싶다”, “스키장 대신 온천과 호숫가 산책이 더 끌리는 나이인가 보다” 같은 말들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여름의 북적임보다 겨울의 한산함이 좋다고 말하며, “여유 있게 산책하고 천천히 밥 먹을 수 있는 도시”로 속초를 기억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겨울 여행 기준은 조금씩 옮겨간다. 따뜻한 실내만을 찾던 계절에서,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물, 포근한 음식과 고요한 풍경이 공존하는 공간을 찾아 나서는 흐름으로 바뀌는 중이다.

 

속초의 겨울은 거창한 계획을 요구하지 않는다. 설악의 기운을 품은 온천에서 몸을 데우고, 케이블카에서 산과 바다를 한눈에 담고, 분식집에서 소박한 한 끼를 나누고, 영랑호를 따라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채워진다. 어쩌면 이런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야말로 우리가 지친 일상에서 조금씩 방향을 돌려 나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지금 겨울 속초에서 머무는 시간은, 누구나 한 번쯤 필요했던 “나만의 속도로 쉬어 가는 연습”일지 모른다.

이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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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한화리조트설악워터피아#영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