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사고 막을 전담부서 신설…개보위, 예방전환 가속
개인정보 유출이 산업 전반의 리스크로 부상하면서 개인정보 보호 패러다임이 사후 규제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전담 부서를 새로 꾸리고 조사 인력을 증원하며 조직 개편에 나선 것은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확산 속에서 데이터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국내 데이터 규제 환경의 전환점이자, 글로벌 수준에 맞춘 감독 역량 강화의 신호로 보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국무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예방 기능 전담 조직인 예방조정심의관과 사전실태점검과를 신설하고, 전체 17명의 인력을 확충했다고 23일 밝혔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건수와 규모가 커지는 가운데, 그동안 정체돼 있던 조사·분쟁 조정 인력도 약 4년 만에 늘렸다.

예방조정심의관은 조사조정국 산하 고위공무원 나급 직위로 설치됐다. 역할은 예방 중심 개인정보 보호체계로의 전환을 총괄하고, 각 부서에 흩어져 있던 사전 위험관리 기능을 조정하는 것이다. 빅테크 플랫폼, 의료·금융·통신 등 대량 데이터가 오가는 분야를 중심으로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제도·점검 방향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성격에 가깝다.
사전실태점검과는 개인정보 침해 위험이 높은 분야에서 실제 사고가 발생하기 전 처리 실태를 들여다보는 전담 부서다. 온라인 플랫폼,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영역을 우선 대상으로 삼고, 인공지능, 자동화 마케팅, 위치정보 활용 서비스 등에서 새로 나타나는 침해 유형의 취약점을 조기에 확인해 개선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AI 모델 학습 과정에서의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익명화 부실, 프로파일링에 따른 차별 문제 등 신유형 리스크를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대규모 유출이 한 번 발생하면 복구 비용뿐 아니라 금융·통신 장애, 2차 범죄 등 사회·경제적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규제 자원을 사후 처벌보다 예방 점검에 더 배분할 필요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예방 전담 조직을 통해 대규모 사고로 이어지기 전 단계에서 위험 징후를 포착하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조사관 6명과 분쟁조정 수요 대응 인력 1명을 포함한 총 7명의 인력을 추가 확보해 조사·분쟁 대응 기능도 보강한다. 그간 조사 인력은 4년째 31명 수준에 머물러, 다건의 유출 신고와 복잡한 IT·바이오 융합 서비스 사건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처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위원회는 이 같은 수요와 현장 대응의 한계를 반영해 증원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번 증원으로 개인정보 침해 사고에 대한 현장 조사가 더 빠르고 세밀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 착수부터 처분까지의 소요 기간이 줄어들면, 기업 입장에서도 문제 진단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 앞당겨질 수 있다. 분쟁조정 분야에서는 피해 구제 절차를 간소화하고, 다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 분쟁 사건의 처리 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온라인을 통한 대국민 소통 기능도 강화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대변인실 직속으로 디지털소통팀을 신설하고, 디지털 홍보 전담 인력 2명을 배치한다. SNS, 온라인 브리핑, 카드뉴스 등 디지털 채널을 통해 국내외 개인정보 이슈에 신속히 입장을 내고, 대규모 유출 사고 발생 시 사실관계와 대응 조치를 빠르게 공유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보 비대칭을 줄여 2차 피해를 막고, 규제 방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 산업계 혼선을 줄이려는 목적도 담겨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유럽연합의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과 AI 법안 도입, 미국의 주별 프라이버시법 확산 등 데이터 규제가 촘촘해지는 가운데, 한국도 감독기관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디지털 무역과 클라우드·헬스케어 서비스 수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번 조직 개편은 국내에서도 선제 점검과 상시 조사 체계를 정착시키려는 흐름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이번 조직과 정원 보강을 계기로 개인정보 보호 체계가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옮겨가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송 위원장은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예방·조사·조정 기능과 디지털 기반 소통 역량을 강화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보호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새로 구축되는 예방 전담 조직과 강화된 조사 역량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그리고 규제와 혁신의 균형이 어떤 방식으로 맞춰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