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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신비의 호수, 빛의 산책”…제주 서귀포의 가을이 바꾼 여행의 의미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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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떠남이었지만, 이번에는 계절을 꼭 껴안는 일이었다. 낯익은 듯 낯선, 제주 서귀포의 가을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바다와 산, 빛과 맛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머무는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온전한 감정의 리셋이 됐다.

 

요즘 서귀포는 가을빛에 물든 자연,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간에서 새로운 여행 감각을 일깨운다. 하예동 바닷가 마녀의 언덕 카페에선 시원한 오션뷰와 커피 향이 파도 소리처럼 퍼졌고, 아침이면 처음 보는 이들도 창가에 천천히 앉아 거대한 바다 앞에 작은 하루를 내려놓았다.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을 찾는 이들은 은빛 억새와 드문드문 붉게 물든 단풍 사이, 고요히 머무르는 신비의 화구호를 바라보며 오래도록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늦가을 저녁이면 안덕면 루나폴에서의 산책이 시작된다. 어둠이 내려앉자 빛과 환상이 어우러진 미디어 예술이 현실과 경계를 허물고,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각자만의 소원을 속삭이는 모습들이 곳곳에 번진다.

백록담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백록담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최근 서귀포 야간관광 수요와 카페, 지역 시장 방문자 수가 전년 대비 꾸준히 증가했다. 여행 동선도 ‘명소 찍기’에서 ‘머무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확장 중이다. 실제로 서울에서 온 30대 여행자 박유진 씨는 “제주에서 시간을 비우는 연습을 다시 배우고 있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일상 회복형 여행’이라 부른다. 김현주 여행 심리연구가는 “지금의 여행은 볼거리보다 머무름, 속도보다 감정에 집중한다”며 “특별하지 않아도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SNS에서는 “마녀의 언덕에서 해지는 시간, 잊을 수 없었다”, “루나폴은 정말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 “다정이네 김밥은 기다린 보람 있었다” 같은 공감이 쏟아진다. 서귀포의 밤을 산책했다는 누구나, “잠깐 멈추는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표현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제주 서귀포는 단지 한 번의 여행지가 아니라, 계절을 따라 삶을 다시 짓는 기호가 돼가고 있다.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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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귀포#백록담#루나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