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본법과 누리호4차성공…10대뉴스로 본 과학기술 대전환
우주 발사체와 인공지능부터 치매와 플라스틱까지, 2025년 한 해 한국 과학기술의 방향을 가늠할 핵심 키워드가 한자리에 정리됐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기술 뉴스는 우주·AI·반도체·바이오·환경 등 국가 전략기술 전 분야를 아우르며, 정책 전환과 연구개발 성과가 동시에 분기점을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이번 선정 결과가 향후 예산 편성과 인력 양성, 산업 전략의 우선순위를 읽을 수 있는 지표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29일 2025년 올해의 10대 과학기술 뉴스를 발표했다. 과총은 연구개발 성과 부문에 대한 분과심사, 두 차례의 선정위원회 심의, 과학기술인과 일반 국민이 참여한 대국민 투표 결과를 종합해 최종 10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투표에는 8369명이 참여해 과학기술계 안팎의 관심이 반영됐다.

10대 뉴스는 과학기술 이슈 4건과 연구개발 성과 6건으로 구성됐다. 이슈 부문에는 누리호 4차 발사 성공과 뉴스페이스 시대 개막, AI기본법 통과와 AI 3대 강국 도약 시동, 과학기술과 AI 정책을 총괄할 과기부총리 체제의 17년 만 부활,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과 이공계 인재 육성 체계 전면 개편이 포함됐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은 한국형 발사체 기술의 성숙도와 민간 참여 확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뉴 스페이스로 불리는 민간 주도 우주경제 시대 진입을 위해서는 발사체 신뢰성과 반복 운영 능력이 핵심인데, 4차 발사 성공은 해당 기술이 실용 단계에 근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향후 위성 군집 발사, 초고속 통신망 구축, 지구 관측 데이터 산업 등 파생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가 기대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AI기본법 통과는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 범위가 의료, 금융, 제조, 공공서비스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규범과 산업진흥 틀을 동시에 정비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법 제정으로 데이터 활용, 알고리즘 투명성, 책임소재, 안전성 관리 등의 기본 원칙이 제시되면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제도 기반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다만 세부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에 따라 실제 산업 영향이 달라질 수 있어, 업계는 후속 규정과 인증 체계 마련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과학기술과 AI 정책을 총괄할 과기부총리 체제 부활과 국가과학자 제도 신설은 거버넌스 차원의 변화다. 과기부총리 제도는 에너지, 디지털, 바이오, 우주 등 부처 간에 걸친 과학기술 정책을 조정하고, AI 전략과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통합 관장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국가과학자 제도의 경우 최고 수준 연구자를 국가 단위로 지원해 장기·도전형 과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구조로 개편되며, 이공계 인재 양성 체계도 이에 맞춰 강화되는 흐름이다.
연구개발 성과 부문에서는 반도체, 백신, 신경과학, 로봇, 환경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성과가 이름을 올렸다. 2차원 반도체 상용화를 앞당길 신공정 기술은 나노 단위로 얇은 반도체 소재를 균일하게 형성하고 결함을 줄이는 공정 혁신으로, 차세대 저전력 고성능 반도체 구현의 관문으로 평가된다. 기존 실리콘 기반 공정에서 발생하던 열·누설전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고집적 칩 설계와 인공지능 연산 칩 분야에서 응용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계에 보고된 mRNA 백신 작동 원리 규명 역시 주목받았다. mRNA가 체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하고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분자 수준 경로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향후 감염병뿐 아니라 암 백신,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설계에 활용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개발 기간 단축과 부작용 예측 정확도 향상에도 기여할 여지가 있어,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 및 기술 이전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노화로 인한 치매 유발 단백질의 제어 기전 최초 규명은 고령사회 보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이 큰 연구로 꼽힌다. 특정 단백질이 축적되고 뇌 신경망을 파괴하는 과정을 세포·분자 수준에서 추적하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경로를 찾은 점이 핵심이다. 이를 기반으로 표적 치료제 후보 발굴과 조기 진단 바이오마커 개발이 동시에 진전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소금쟁이의 물 위 이동 원리를 모사한 초소형 로봇 구현은 로봇공학과 생체모방 공학의 융합 사례다. 표면장력과 다리 구조를 정밀 제어해 수면 위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메커니즘을 기계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재난 현장 수색, 수질 모니터링, 생태 조사 등에서 활용될 수 있는 경량 로봇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세계 최고 성능으로 평가된 PET 플라스틱 생물학적 분해효소 개발은 환경 분야에서 의미가 크다. PET 고분자 사슬을 빠르게 절단할 수 있는 효소를 설계해 분해 속도와 효율을 높였다는 점에서, 기존 물리·화학적 재활용 방식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된다. 대량 공정 적용과 비용 구조 개선이 향후 과제로 남아 있지만, 석유 기반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기술 수요도 함께 커질 여지가 있다.
척수손상 회복을 방해하는 신경전달물질을 규명해 새로운 치료제 가능성을 제시한 성과도 포함됐다. 손상 부위에서 특정 신경전달물질이 재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해당 경로를 차단하거나 조절하는 약물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재활치료와 세포치료, 전기자극 치료 등 기존 접근법과 병행할 수 있는 병용 전략 연구로 확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총은 2005년부터 매년 10대 과학기술 뉴스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연구개발 성과 부문에 대해 이학, 공학, 보건 분과로 나뉜 분과심사 제도를 도입해 후보군을 심층 검토하고 있으며, 과총 학술진흥위원회 소속 위원 16명이 심사에 참여했다. 전문가 심의와 대국민 투표를 병행해 과학기술계 내부 평가와 국민 관심도를 모두 반영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다.
올해 결과는 과학기술이 한국 사회에서 국가 전략과 미래 산업의 중심축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누리호 4차 발사, AI기본법, 과기부총리 체제, 국가과학자 제도 등은 제도와 인프라 측면의 대전환을 의미하고, 2차원 반도체 공정, mRNA 백신, 치매와 척수손상 기전, 초소형 로봇, 플라스틱 분해 효소 등은 구체적 기술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실질 성과로 평가된다.
과총은 10대 과학기술 뉴스가 한 해의 과학기술 흐름을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계 안팎에서는 이 지표가 앞으로 국가 연구개발 투자 방향과 산업 현장의 혁신 전략, 그리고 국민이 체감하는 과학기술의 가치가 어떻게 조응할지를 가늠하는 기준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선정된 기술과 정책 이슈가 실제 시장과 제도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 주시하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