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은 NSC·원자력은 외교부”…정부, 한미 실무협의 채널 분담 가시화
원자력과 조선, 핵추진잠수함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협상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분야별 실무협의체를 조속히 띄우겠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이행 의지를 가늠할 첫 시험대가 마련됐다는 관측도 함께 나왔다.
외교부에 따르면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1일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회담을 갖고, 한미 정상 간에 채택된 공동 팩트시트 이행을 위한 분야별 실무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외교부는 2일 이 같은 회담 결과를 전했다.

한미 합의 내용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원자력, 조선,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 이른바 전략 기술·산업 분야 협력이다. 정부는 이 분야 이행을 담당할 실무협의체 구성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가 같은 날 배포한 자료에는 실무협의체 조속 가동 언급이 빠져 있고, 원자력 협력과 핵추진잠수함 관련 표현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조선업 협력과 한미동맹 현대화가 전면에 배치되면서, 양측이 강조점을 달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발표가 다르다는 질문에 대해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 보도자료에도 한미정상회담 합의 이행 논의를 첫 번째로 언급하고 있다"며, 양측이 우선순위에서 충돌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또 "우리는 우리 국민의 관심 사항인 원자력과 핵추진잠수함 분야를 더 풀어서 설명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한국 국내 여론을 고려해 세부 사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는 향후 일정과 관련해 한미 간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조율하는 데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박 대변인은 "앞으로 구체적 이행 방안을 한미 양측이 협의하고, 우리도 협의에 필요한 준비를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내부에선 우선 미국과의 협의를 담당할 채널과 구조를 확정하는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핵잠수함 건조와 원자력 협력, 조선 협력 등 주요 사안이 여러 부처와 민간 기업까지 포괄하는 만큼, 효율적인 논의를 위한 범정부 체계 정비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윤주 차관은 회담 후 취재진과 만나 "미국 측에서 담당자를 지정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태스크포스 TF를 만들어 미국 측과 매칭해서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이 거울 구조 형태의 실무팀을 구축해 협상을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문제를 담게 될 원자력 협력은 외교부 주도로 조율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 당시에도 외교부 인사가 대표로 임명돼 협상을 이끌었다.
다만 2035년까지 적용되는 기존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을 다시 손볼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정부는 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과 재처리 권한 확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지만, 미국은 현행 협정을 유지한 채 한국이 농축이나 재처리가 필요할 때마다 개별 승인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별도 협상 대표 임명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다.
핵추진잠수함과 조선업 협력은 성격이 다르다. 국방부와 해군,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론 조선업계 등 민간 기업들이 깊게 연관돼 있어 국가안전보장회의 NSC가 조정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핵잠 문제는 국방부, 또 여러 민간 기관이 관련되기 때문에 NSC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모든 관련 부처가 여기 TF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NSC가 컨트롤타워를 맡고, 국방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TF 구성이 가시권에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군은 국방부와 해군,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 등으로 준비팀을 구성해 범정부 TF 출범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내부적으로도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필요한 기술·예산·작전 운용 방안을 검토하며 본격적인 실무 논의에 앞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분위기다.
조선업 협력도 NSC 채널을 중심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한미 정상은 지난 10월 정상회담에서 양국 NSC 간 조선 협력 협의체 출범에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기존 NSC 간 조선 협력 채널이 실무협의체 논의에도 자연스럽게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과 어떤 형태로 협의할지 전반적인 방향성에 공감한 상태"라며 "신속하고 충실하게 실무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실무협의체가 가동되는 시점과 속도, 의제 구성은 향후 한미 관계의 세부 방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한편 야권에서는 핵추진잠수함 도입 과정에서의 기술 이전 범위와 비용 부담, 비확산 체제와의 정합성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권은 한미동맹 심화와 안보 능력 제고 차원에서 협력 확대 필요성을 강조해 온 만큼, 국회 차원의 추가 논쟁도 예고돼 있다.
정부는 조만간 범정부 차원의 내부 준비를 마무리하고, 한미 간 협의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다. 국회 역시 향후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이행 경과를 점검하고, 예산·법률 지원 방안을 논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